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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Sep 09. 2021

아가, 아야하면 울어도 돼.

엄마가 있어 아프지 않아요

 엄마는 동물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예방접종을 하였다.

수첩에 빽빽이 일정이 잡혀있고 그 일정을 행여 잊을까 봐 알람을 하는 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먼저 온 친구들이 주사를 맞는 것을 보면 난리가 아니다. 울고 소리 지르고 심지어 간호사 선생님을 물어버리는 친구도 있다. 주사를 맞기 전에도 난리, 맞으면서도 난리, 맞고 난 후에도 진정이 되지 않는지 정말 난리이다.  


사실 나도 주사 맞는 것이 아프고 싫다.

그런데 걱정 어린 눈으로

"사랑아, 벙원(엄마는 나에게는 병원을  벙원이라고 말함)에 가서 아야해야 하는데......." 

하며 나를 안고 동물병원을 들어서는 엄마를 생각하면 난리 치는 친구들처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걱정은 주사를 맞는 나보다 더 심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고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 참는다.


중성화 수술을 하는 날!

주사보다 훨씬 더 아프고 힘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앞으로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엄마와 아빠는 수술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엄마는 걱정을 하면서도 내가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 눈치이다. 사실은 나도 많이 아플까 봐 겁도 나고 무섭다.



아가 강아지의 예방접종은 참 중요하다.

예방접종과 관련된 질환들은 대부분 접종을 하면 예방이 가능하지만 접종을 하지 않은 경우 강아지에게 매우 치명적인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강아지 몸속에 항체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건강한 성견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사랑이가 아프겠지만 예방접종일은 꼭 지켜서 주사를 맞았다.


문제는 아직 어린 사랑이가 주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주삿바늘의 아픔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웬만큼 나이 든 강아지들은 동물병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테지만 사랑이는 경험이 없으니 알지 못하고 내가 아무리 말로 마음을 전해 보지만 속수무책이다. 그저 사랑이가 아픔을 잘 견디기만 바랄 뿐이다. 


어머나!

우리 사랑이는 용감하다. 아니 아픔을 모르는 건가? 눈 하나 깜짝 않고 찍소리 하나 없이 주사를 잘 맞았다.

주위의 다른 강아지들은 난리 난리 생난리를 치던데 우리 사랑이는 동물병원 원장님도 놀랄 만큼 얌전하게 주사를 맞았다.


중성화 수술도 건강한 성견을 위한 결정이지만 아직 아가인 사랑이의 아픔이 걱정이 되었다.

주사맞기와 수술의 아픔은 그 차이가 엄청날 것이 분명하지만 사랑이의 용기와 인내를 믿어보기로 하였다. 그래도 많이 아플 텐데 사랑이가 잘 참아낼까, 잘 견뎌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역시 우리 사랑이!

수술을 마치고 나온 사랑이는 다소 힘이 없어 보였으나 보채지도 않고 아파하는 기색도 없었다. 집으로 데리고 와서 시간 맞춰 약 먹이고 넥 카라를 하니 수술한 부위를 핥지도 않고 잘 지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일주일 후 실밥을 풀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팠을 텐데 보채지도 않고 잘 먹고 잘 지내어주어 고맙고 예뻤다. 자라면서 사랑이는 벙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게 되었지만 변함없이 늘 착하고 용감하게 주사를 맞았다. 엄마인 나로서는 울지 않으니 마음이 덜 아프고, 동물병원 원장님도 성가신 난리가 없으니 좋아하셨다. 


" 아프지 않을 리가 없는데 우리 사랑이는 왜 이리 잘 참을까? "

문득 아파도 울지 않는 사랑이가 안쓰러웠다. 아프다고 울어도 되고 다른 친구들처럼 생떼를 부려도 되는데 사랑이는 그저 엄마가 걱정할 까 봐 아픔을 참았던 것 같다. 


"사랑아, 벙원에 가면 주사 맞을 텐데, 아야할 텐데 우리 사랑이 울지 않고 잘할 수 있지?"

병원에 데리고 가며 걱정스레 하던 말을 사랑이의 착한 마음은 그대로 받아들여 아프지 않은 척 행동으로 나타난 것 같다. 울지 않는 사랑이에게 동물병원 원장님과 엄마의 수다스러운 칭찬은 더욱 사랑이를 착하고 용감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 것 같다. 아님 너무 겁에 질려 울지도 못한 걸까?  미안하고 마음이 아려왔다.


"아가, 아야하면 울어도 돼."



"사랑아, 이번에 벙원 가는 건 사랑이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위험하게 아야할 까 봐 지금 수술을 해야 한대. 그래서 주사 맞는 것보다 많이 아야할거야. 엄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잘하고 와." 

중성화 수술을 하러 벙원에 가기 전부터 엄마는 나를 달래고 또 달래며 안심시켜주었다. 엄마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고 나도 주사 맞을 때보다 겁나고 무서웠다.


엄마의 걱정을 뒤로한 채 혼자 수술실이라는 곳엘 들어갔고 잠깐의 긴장 후 잠이 들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고 아픈 것도 몰랐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낯선 곳에 아픈 채로 혼자 있으니 더욱 엄마품이 그리웠다.


"사랑아, 많이 아야했지? 우리 사랑이 진짜 용감하다. 얼른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빠빠머그자. 우리 사랑이 큰일 했네. 진짜 이쁘다. "

엄마는 나를 안아 들고 폭풍 칭찬에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엄마가 안아주니 아픈 줄도 모르겠다.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프긴 하지만 내가 아파하면 엄마가 나보다 훨씬 더 아파하는 것이 싫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엄마가 안아주고 예뻐해 주면 아프던 것도 금세 잊어버린다. 마취가 풀릴 때쯤 수술 부위가 아프긴 했지만 참을만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잘 지내고 나는 다시 신나게 뛰어놀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이제 벙원에 갈 때마다 이전에 하던 말에 한마디를 더한다.

"사랑아, 벙원에 가서 아야해야 하는데......." 

"아가, 아야하면 울어도 돼."


그 후로도 나는 엄마가 옆에 있어 15년 동안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았다.

난 엄마만 있으면 이 세상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사랑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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