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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 R Sep 18. 2022

Home sweet home

feat 작은아씨들

요즘, tvN의 새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조연이지만 등장할 때마다 묵직한 대사를 던지는 고모할머니의 생각에 나도 모르게 김고은처럼 "정말 그런 것 같아요"라고 대답할 뻔했다.


당신에게 집은 어떤 존재인가?

좋은 집에  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져
웬만한 일은 집에 오면 다 극복이 되니까
자본주의는 심리게임이거든
있는 사람은 극복할 수 있지만
없는 사람은 못하는 감정이 있어
상실감
잃을 수 있어야 큰돈을 만질 수 있어
더 많은 리스크를 걸 수 있는 사람이 이기는 거니까
난 말이야 모든 걸 잃어도 이런 집만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

tvN 작은아씨들 중에서


결혼하면 돈이 붙는 다더니 짧다면 짧은 결혼 8년차지만 돌이켜보면 맞는 말이다.


돌봐야 할 아이 둘이 생기고 나니, 우리에겐 아늑한 안식처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을 열심히 벌어야 했고 맞벌이를 해야 하니 친정 근처로 철새처럼 옮겨 다녔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쑥쑥 자랐지만 늘 불안정했다. 2년짜리 전세는 내 집이라는 포근함을 주지 못했다. 어차피 떠날 곳이라 이웃에 정이 가지 않았다.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늘 데면데면했다.


 아파트가 지어진 위례신도시는 사당에 있는 회사까지 왕복으로 3시간이나 소요됐다. 아무리 5시 반에 기를 쓰고 칼퇴를 해도, 7시에 도착하니 언제부턴가 친정어머니는 어디서 놀다 온 것이라 지레 의심하고 타박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를 쓰고 기를 써도 7시 전에 도착할 길은 없었고 겨우 친정집에 도착해 잠든 아이를 들처엎고, 저녁을 욱여넣고 지쳐 잠이 들었다.


재계약 시점이 도래하니 착한 임대인은 나름 신경을 써서 2천만원만 올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했던 1호와 다르게 2호는 출산 3개월 만에 과장 승진을 위해 회사 복귀를 했어야 했다. 결국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 역세권에 있는 40년 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전 임차인은 만삭이었던 내게 미소를 지으며 거실에 난방이 고장 났지만 전혀 춥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당시 돈과 시간이 부족했던 난 그 거짓말을 믿고 싶었다. 왜 사이비 종교속아 넘어가는지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아들 한 명을 키우는 전 임차인이 설마 만삭인 내게 거짓말을 할리가 있겠냐며 그곳을 계약했다. 우리는 8월 한여름 그 집으로 이사를 들어갔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나무가 우거졌고 덕분에 모기는 참 매웠다. 아무리 새시를 꽁꽁 닫아도, 10년 전 새로 했다는 새시 사이사이 샛길을 통해 모기는 죽여도 죽여도 또 나왔다. 제법 추울만한 12월 초에까지 살아남은 지독한 모기는 따스한 우리 집으로 피난을 왔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음날 출근을 위해 굳이 에어컨을 켜고 잠이 들었다. 그제야 우리는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역세권에 있는 것치고 비교적 저렴한 전세였던 40년 된 아파트는 탈도 많고 유지보수 비용이 억수로 많이 들었다. 신생아인 아이가 추울까 봐 임대인이 시키는 대로 힘들게 난방을 돌렸다. 그랬더니 난방이 고장 난 거실은 냉골이었어도 부엌만큼은 약간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추운 집에서 신생아가 지내다 보니 겨우 태어난 지 70일에 호흡기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대학병원에 7일간 입원 후 막 퇴원을 했을 무렵이었다. 아침 8시에 누군가 성 이난 것 같은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현관문을 쾅쾅 두들겼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어보니 관리실 직원이었다. 이번 달 이 집 난방비가 150만 원 찍힌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너무 놀라서 거친 농담을 즐겨하는 분인 줄 착각했다. 거실은 여전히 냉골이고 겨우 부엌만 뭔가 따뜻하다라고 느꼈었는데 150만 원이라니! 그래서 아이도 바이러스에 감염돼 큰일 날 뻔했는데...


듣자 하니, 이 아파트는 파이프가 오래돼서 아무도 난방을 켜지 않고 전기장판을 깔아 겨울을 난다고 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겨울을 보내야 하는구나! 그분들이 돌아가자마자 온라인으로 30만 원짜리 장판을 2개 주문하고 아이가 목욕할 때 쓸만한 손난로도 주문했다. 장판을 깔아도, 방이 냉골이니 아침에 일어나면 코가 빨갛게 얼어있었다. 집은 30평인데 우리는 5평짜리 방한칸에 옹기종기 모여 겨울잠 자는 곰들 마냥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 집을 나왔다. 그래도, 4억짜리 전세인데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임대인에게 어찌 이럴 수 있냐고 따지니 늘 그래 왔다는 듯 무심한 답장이 왔다. 이 아파트는 곧 재개발이 될 예정이니 전혀 고칠 생각은 없고 정 불편하면 임차인이 직접 고쳐 써야 한다는 힘 빠지는 내용이었다.


내 돈 내고 이 집에 살고 있지만 임대인에게 권리를 주장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이라니... 아이가 아파도 그저 이 집을 선택한 내 안목을 탓해야만 했다. 첫 3달은 임대인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문자로 항의를 하다가 여러 번 거절을 당한 후 지레 내선에서 포기하고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전세만 전전하다 보면 을이 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당하는 것이 당연해지나 보다.



그나마 그 상황에서 위로가 됐던 것은 신도시에서 이사 오기 직전 당첨된 청약이었다. 회사에서 시련이 닥쳐도, 아파트 수도관이 터져서 집에 물이 넘쳐 밖으로 정신없이 퍼 날랐어야 했을 때도, 입주권은 힘을 내야만 하는 이유가 돼 주었다. 그렇게 달력에 하루하루 빗금을 치며 입주일을 기다렸다.


오지 않을 것 만 같았던 21년 1월은 오고야 말았다.


18년 7월에 당첨됐으니 꼬박 2년 반이 걸렸다. 아이들과 5분 만에 킥보드 타고 단지 내 국공립 어린이집에 갈 때, 언제든 집 밖 놀이터에 가면 또래 친구들과 만나 지칠 때까지 놀 수 있을 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궂은 날씨를 피해 지하주차장을 통해 두 손 가볍게 학원 셔틀을 태울 때 새 아파트에 사는 실감이 났다. 그렇게 네 식구는 매일매일 감사하며 대단지에 사는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다. 남편과 우리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살 수 있게 됐는지 참 감사하지 않냐며 감회에 젖었다. 그동안 임차인으로서 마음 졸이며 이집저집 전전했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임차인의 삶이란 이사한 지 1년 반이 되면 어김없이 부동산에 연락해 조심스레 임대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이사 갈 집을 구해야만 했던 유목민의 삶이었다. 그렇게 고생한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매일에 더 감사할 수 있게 된 것 다. 만약 부모님이 결혼할 때 쉽게 집을 장만해주셨다면 어렵게 장만한 집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 부부는 주거가 안정되고 나서야 겨우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척에 있는 친정 집의 도움을 받느라 아이들은 차안에서 시간을 많이 썼었다. 친정 집에선 아이들만의 공간이 없으니 눈치가 보여 공부를 시킬 수도 없었다. 퇴근하고 나면 사이가 안 좋은 친정부모님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느라 아이들에게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내 집이 아니었기에 개선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친정이라고 하더라도 내 집이 아닐때는 보이지 않는 설움이 있다.


 7세가 된  1호는 그해 1월 한글을 읽지 못해  우리부부의 근심거리였다. 하지만 새집에 이사한 후 아이는 하루 30분 '한글이 야호'를 시청하며 학습지를 풀더니 1달 만에 그간의 걱정이 무색하게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안정된 공간의 중요성이 정말 크게 다가왔다. 지나친 과장일 수도 있으나 주거의 안정성은 아이의 학업성취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집의 절반 이상이 은행 것이라 지출이 크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더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따로 돈 내서 운동을 하러 다니기는 부담스러웠는데 올해 4월 드디어 아파트에 커뮤니티 시설이 오픈했다. 1700세대가 넘는 대단지라 한 가정 당 단돈 만원이면 온 식구가 피트니스와 수영장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다.

 평소에는 다른 입주민이 있을까 봐 조심스러워 사진을 남기지 못하다가 우연히 아무도 없이 텅빈 수영장의 모습을 남겨봤다.

내집 마련을 한뒤 2년마다 드는 이사비용, 부동산 수수료 등 기타 지출이 굳고, 운동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정감이 생겼다. 덤으로 올해 커뮤니티가 오픈한 뒤 남편과 나는 운동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각각 5킬로씩 감량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저렴한 비용으로 수영장에 따로가지 않고도 단지 안에서 수월하게 수영을 배우게 됐다. 집이 생기기 전에는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1년에 두세번쯤은 호캉스를 했었다.

그러나 전세와는 달리 내집은 매년 두번 보유세를 내야하고 은행에 대출과 원리금을 갚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굳이 무리해서 호텔을 가지 않게 됐다. 그렇게 한 달의 대부분을  비가오나 폭염이오나 수영장과 놀이터에서 또는 집앞 공원에서 식구만의 놀이시간을 누리며 살고 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행복한 우리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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