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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 R Nov 18. 2022

사립초 1년 후기

초등학교 1학년을 보내고

 벌써 1년

다시 사립초 추첨 시기가 왔다.


 1년 전 딱 이맘 때다. 주변에 사립초를 보내는 지인이 있어 '사립초 보내면 어때? 괜찮아?' 하고 까똑을 보내니 '일단 붙고 나서 말하는 게 어때? 작년 이맘때쯤 말이야 내 주변에 10군데 써도 다 떨어진 사람이 수두룩했거든 고민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아'라며 깔끔하게 흔들리는 내 마음을 정리를 해주었다.


 남편과 상의하여 집 주변의 사립초 중 30분 안에 자차로 갈 수 있는 곳과 기독교인 학교를 교집합 해 총 5곳을 골랐다. 사실 집 앞에 있는 K학교 한 군데만 쓸 생각이었으나 11:1로 광탈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사립 초중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곳이 아니었음에도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결과적으로 4군데는 예비도 되지 못한 채 광탈했고 별로 생각이 없었던 H학교가 한 번에 붙어버렸다. 자차로는 20분 셔틀로는 교통상황에 따라 30분에서 4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단지내 얼집으로 늘 걸어서 5분도 안돼 등하원했었는데 갑자기 일찍 일어나 셔틀만 30분 넘게 탈 아이를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높은 경쟁률 속에 당첨된 마당이니 거리를 핑계로 그만두기는 좀 아쉬웠다.


공포의 학원 뺑뺑이

 아무리 재택근무라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출근을 하고 있었고 근무시간도 점심시간 포함해 9시간이나 된다. 만약 아이가 12시쯤 하교하게 된다면 일에 집중하기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같은 팀에 있는 워킹맘은 초등학생 2학년 아들을 한 명 키우는데 업무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6시 반까지 여러 가지 학원을 보내야만 한다고 했다. 동작구에 사시는 분인데 슬쩍 학원비 얼마나 쓰냐고 물으니 본인은 그 동네에서 많이 보내는 수준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시며 한 달에 평균 150만 원 정도를 쓴다고 하셨다. 그게 그분만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사립초 학비가 오히려 싸다. 덧붙여 난 정보력이 부족하고 그런데는 잼병이라 반드시 사립초에 보내야만 이유가 돼주었다.

무엇보다 학원 뺑뺑이는 죽어도 아이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다.  


들어보지 못한 입학설명회

 워킹맘이라 학교설명회에 직접 갈 수도 시간에 맞춰 라이브 설명회를 참석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당첨되고 나서야 해당 학교에 올라온 홍보영상을 보고 또 봤다.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거나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자주 보았던 1호 친구 엄마들 중에 사립초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두세 분 계셨다. 사람 좋은 분들이라 바쁜 나를 위해 일부러 집으로 방문하셔서 여러 가지 학교의 장단점을 요약해주셨다. 그 정보가 5군데 학교로 좁혀지는데 꽤나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사립초에서 상위권에 들려면 그에 준하는 만큼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알고는 있냐고 질문하셨다.

OMG 전혀...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입학시키기 전 꼭 스스로 물어야 하는 좋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왜 사립초에 보내려고 했는지 그 목적을 더듬어봤다.

상위권에 머물려고 보내는 거야? 놉

안전하게 퇴근시간까지 맡겨주는데라 가는 거잖아? 그러취

학원 안 보내기 위해 보내는 거잖아? 그러취, 초심 잃지 말자 R

좋은 습관 길러주려고 보내는 거 맞지? 그러취

그럼 엄마표로 하면서 중간만 가면 되지 않을까? 응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고 5곳의 입학원서를 쓱쓱 써 내려갔다.


얼떨떨한 합격

그렇게 H학교에 합격했다. 워낙 경쟁률이 세다는 것을 알고 나니 동네 엄마들에게 혹시 합격했냐고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역시 건너 건너 들려오는 소문을 들어보니 함께 고민했었는데 나 혼자만 됐다. 그들도 사람인데 궁금한 거 물어보면 정말 얄미울 거야. 그래서 당첨된 이후엔 카페를 들락거리며 혼자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초록창에 '사립초'라고 치면 나오는 첫 카페에 먼저 가입하고 합격한 사립초의 글들을 며칠 동안 읽고 또 읽었다. 그 카페는 가입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지금까지도 나무 3단계로 겨우 댓글을 남길 수 있는 수준이다. 거짓말 안 하고 일주일에 3~4번 출첵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등업이 까다로워서일까? 이 카페의 최대 장점은 광고글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찐 후기들을 만날 수 있다. 교복의 경우에도 이 카페에서 중고로 직거래하는 사례들을 눈팅해왔는데 나무 3단계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Carrot 마켓에 가서 동네 주민을 통해 직거래를 트게 됐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다 살 구멍이 있다.

중고라 쳐도, 잠깐 1년만 다니다 이직을 했거나 이사로 학교가 멀어져 갑자기 전학 간 케이스의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격대는 있지만 제법 새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마치 유니콘처럼 아파트 단지에 존재하기는 할까 싶었던 학교 선배 어머니 한분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셔틀버스 기다리며 따져보니 17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서 H학교 1학년에 당첨된 아이는 1호를 포함해 단 3명뿐이었다.


경쟁률... 뭐꼬?


초등학교 입학 준비

1호의 경우 7세 1월 한글을 아직 깨치지 못해 마음에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친구가 추천했던 '신기한 뿅 뿅 나라'를 거금 주고 1달 가르쳤다. 방문수업도 비싼 편인데 백만 원 상당하는 교구를 꼭 사야 한다고 해서

뭐에 홀린 듯이 3개월 무이자로 결제했다. 한 달이 흘렀을 때쯤 한글을 통 글자로 배우는 이 시스템이 학습에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아직도 자다가도 이불 킥하는 돈지랄 사건이다. 화가 난다.

  일하느라 정말 바쁜 하루하루였지만 재택근무의 장점을 십분 살려 2월부터 8월까지 7개월간 한글이 야호 EBS를 반복해서 시청하며 교재를 풀었다. 하루에 2시간은 쓴 것 같다. 그때는 아무것도 안 가르치고 오로지 한글만 했다. 다들 한글은 나이가 차면 저절로 깨친다더니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신기한 뿅 뿅 나라로도 안되던 한글을 한 달 만에 읽었다. 단지 받침글자까지 다 깨치는데 든 소요시간이 7개월이었다. 9월부터는 수학 연산 문제집을 시작해 11월부터는 알파벳 익히기와 기적의 파닉스를 병행했다. 그렇게 엉성한 입학 준비를 마쳤다.


지긋지긋한 영어에 대하여...

남편이 외국인이고 나도 오픽 AL를 받을 정도로 잘하는 편이지만 학원을 전혀 안 보낸 아이가 가서 잘 해낼지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남편이 한국말을 잘못해 서로 대화를 영어로 하고 있는 데도 아이가 잘하는 건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입학하고 보니 정말 다행히 올해부터 H학교에 파닉 스반이 생겨서, 굳이 줄 세워 본다면 꼴 등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개의치 않고 보냈다. 아이는 이제 더듬더듬 책을 펼쳐 배운 파닉스를 활용해 읽어본다. (여전히 많이 틀리지만 시도해보고 스스로 책을 펼쳐 읽어보려 한다는데 박수를 친다. )

2학기가 된 후 제법 친해진 고학년 선배맘들과 차 한잔을 하게 됐다.


A: 근데 R 엄마는 좋겠다. 부부가 영어로 얘기하면 아이들도 영어로 얘기해?

B: 아, 네네 한국어와 섞어서 얘기하긴 하지만 1,2호 둘 다 문장을 만들어서 얘기하는 편이에요.

A: "근데 말이야 글쎄, 요새 1학년들 학력 수준이 크더라. 아주 잘하거나 못하거나. 중간이 없는 것 같아.

     올해 파닉 스반 있지. 개교이래 처음 생겼다니까. 아니 어떻게 파닉스를 안 끝내고 사립초를 보내지?"


얘기를 쭉 듣다가 가슴이 뜨끔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 고백했다.


B: "저 사실 1호 파닉 스반에 넣었어요. 제가 한글 가르치는 동안 남편이 가르치기로 했는데 입학할 때까지 안 해서 제가 파닉스 책 사서 가르치다가 보냈는데 파닉 스반이 있다는 걸 알고 제대로 배우라고 일부러 넣었어요"

A:...

   " 뭐... 바쁘면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어색하게 다른 화제로 전환됐다.

내가 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일까? 파닉 스반을 개설해달라고 조른 적은 없고 있길래 옳다구나 넣은 건데 뭔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외국인인 남편에게 그날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한글을 읽는 것을 배우고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것 과 같은 이치로 얼마나 지금 잘해보이냐보다 제대로 기초를 쌓는 게 중요한 거라며 조바심 냈던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러게 나 한글이 야호 할 때 틈틈이 영어 좀 가르쳐주라니까 쯧'이라고 속으로만 되뇌었다.

정말 도움 안 되는 남의 편


혹시나 이 대화글을 읽고 나처럼 불안해할 엄마들에게 위로를 한 가지 던지자면 중간반에 있는 아이들도 중간 수준이 돼서 거기 있는 건 아니다. H학교의 경우 레벨테스트를 실시하지 않아 오롯이 엄마의 판단으로 레벨을 정한다. 그래서 중간 반에 있는 아이들도 골고루 (듣기/말하기/쓰기) 영역이 발달하지 않았거나 파닉스를 제대로 모른 채 들어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파닉스는 책을 많이 읽으며 초등학교 1학년 시간을 보내면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온다.


영유 출신 VS 일유 출신?!

1호는 7세까지 국공립 어린이집만 다녔고, 사실 1호 같은 아이는 사립초에 드물다. 대부분 일반 유치원이나 영어유치원 출신이 많다. 어린이집이나 일유라도 영어학원을 다닌 비중이 꽤 높다. 그리고 아마 나머진 엄마표 수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요샌 잠수네 외에도 아이 보람도 많이 하는 추세더라. 난 그냥 넷플릭스 키즈 콘텐츠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고 아이가 '씽 2 게더'와 '피터 래빗'을 좋아해 반복해서 보여줬다. 다행히 우리 집 아들들은 반복을 지루해하지 않는다.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돌려봤다. 대사도 몇 개 외울 정도 아주 뽕을 뽑았다.


사립초 보낸 가장 큰 장점이자 이유 : 돌봄

 처음 입학한 주에 아이에게 미안해서 현재의 3차가 아닌 1차 하교 버스를 굳이 태워 하교를 시켰다.

그게 처음 사회생활하는 아이에게 예의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잘 지켜보니 1차 버스 태워서 하원 시키는 아이들은 대부분 하교 후 학원에 갔다. 그래서 거기서 또 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사귀더라. 기존에 이미 같은 학원을 다녔을 가능성도 크다. 결국 아이를 위한다고 일찍 하교시켰던 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입학하고 1달간은 아이 얼굴에 어둡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오늘은 어떤 친구 사귀었어? 뭐하고 놀았어?"라고 질문하기가 무섭게

"엄마 애들이 나랑 다 똑같이 학교에서 수업시간을 지냈는데 보니까 반에 이미 친해진 애들이 있더라.

그 친구들은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걸까? 근데 돌봄 가니까 친구들이 많더라" 하며 나름의 고민을 털어놓는 걸 보고 돌봄에 빠짐없이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꽤 사교성이 좋은 아이인데 저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친구 이슈가 꽤 크게 다가왔다는 것일 거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돌봄 교실에 보냈더니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친구들을 사귀고 선배 누나 형들을 알게 되며 빠르게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아이는 1 학기 내내 "베프는 없어?"라고 물으면

"같이 피구 하고 노는 애 따로 있고 알까기 하는 친구 따로 있어. 다 골고루 친해 아직 베프는 없어."

라며 건조하게 대답했다.

 돌봄 교실은 워킹맘의 고민과 역할을 정말 많이 덜어주었다. 동일한 선생님께서 늘 상주하시며 숙제를 더 꼼꼼히 체크하고 채점까지 해서 보내주신다. 받아쓰기도 1학기 때는 내가 봐준 적이 전무하다. 2학기가 되고서야 문장부호가 등장해 집에서 좀 더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2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반에 1호가 깐부라고 부르는 사총사가 결성됐다. 학기초에 했던 고민과 두려움은 다 부질없구나. 아이가 이렇게 잘 해내는데... 얼마 전 아이에게 혹시 집 앞에 있는 공립초 가는 게 어때 라고 가볍게 물은 적이 있다. 역시나 베프가 생겨서인지, 이젠 H학교를 절대 떠날 수 없다고 얘기했다. 마음이 뭉클했다.

솔직히 털어놔서 수업료 때문에 삶이 빠듯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

 

사립초 VS 공립초 : 내 기준 비교

엄마표의 장점

학원을 안 보내니까 아이가 3시 10분까지 이어지는 학교 수업에 오히려 집중을 잘한다. 대부분의 과목에서 선생님들이 자세가 바르고 집중력이 좋다고 칭찬해주셨다.

초1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기에 그런 칭찬에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R 정말 잘하고 있어!


입학설명회를 들어야 하는 이유

H학교는 주 4회 악기를 배운다. 미술/음악 이런 예술계통에 무지한 편이라 악기는 오버 육바라고만 생각했는데 학교에서 정규수업으로 해준다고 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보냈는데 이 수업이 H학교를 보내고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다. 숙제량도 다른 인근 사립초보다 작아 돌봄에서 다하고 올 정도의 양이라 다행이다.

단지 안에 있는 1호의 친한 친구 중 하나는 숙제량이 엄청난 B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심지어 전교생이 그 힘듦을 잘 따라가는 편이라 그 친구는 학원에 참 많이 다닌다. 원래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다 중간에 사립초 준비를 위해 일부러 영어유치원으로 옮견던 케이스인데 꽤 영리한 편이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착한 아이다. 1학기 때는 서로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가 2학기가 되고부터 이 아이 엄마로부터 적극적으로 연락이 자주와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학원을 마치고 오면 놀이터에 또래 친구가 1명도 없다는 것이다.

중간에 어린이집을 옮기기도 했고 학원까지 끝나고 나면 공립초에 다니는 친구들은 저녁을 먹으러 가고 없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립초의 최대 단점이다. 또래 친구, 동네 친구

아이는 그 많은 학습량을 해내야 하고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오직 친구와 놀기 위해 기를 쓰고 다 끝내고 놀이터에 나오면 아무도 없다. 악순환인 것이다.

그나마 1호가 시간이 맞아 (놀이터 죽돌이라 맞을 수밖에 없음) 요새 자주 놀고 있다.

반면, 1호는 태권도 외엔 학원을 하나도 안 다녔으니 동네 또래 친구들이 꽤 많은 편이다. 나가면 항상 놀 친구들이 많다. 단, 처음 보는 친구와도 안면을 쉽게 트는 편이다.  


이렇게 사립초 별로 철학과 학습량과 특색이 전부 다르고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정말 지대하므로 꼭 입학설명회를 듣고 아이의 성향에 잘 맞는 후보학교를 골라두는 편이 좋다.


p.s.

차주에 있을 발표일에 불안에 떨고 있을 예비 학부모님들을 응원합니다.

다 잘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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