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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 R May 10. 2024

사립초에서 혁신초로

나부터 살고 보자.

 셔틀버스로 매일 왕복 1시간, 그러나 1호는 사립초 시스템에 잘 적응해 주었다.

워킹맘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학업에 하나하나 신경 쓰지 못했으나 소문대로 사립초 시스템은 중국어부터 시작해 영어, 국어, 수학 심지어 악기까지 차근차근 잘 챙겨주었다.

 하지만 코로나 기간 약 3년 동안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곪아갔다. 아이는 바람대로 학교를 정말 사랑했지만 이 굴레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내고 싶었다. 우리 집엔 앞날이 창창한 2호도 있다. 앞으로 도합 24년을 학비를 대줘야 할텐데 그때까지 이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 몇 달을 고민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육아휴직계를 과감히 제출하고 아이는 집 앞 혁신초로 전학을 시켰다.

그 학교가 싫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난 여전히 그 학교를 애정하는 마음이 크다.


그렇지만 사립초 학비는 지금 와서 다시 계산기를 뚜드려봐도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니었다. 그건 아이의 학업을 빙자한 내 욕심이었다.  



 새로 지은 우리 단지의 배정 초등학교는 하필 혁신초였다. 그곳은 엄마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컸다.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두 눈에 흙이 들어와도 내 아이는 절대 안 보낸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살았다.

그런 내가 혁신초에 전학계를 제출하기 위해 어느새 교무실에 앉아있었다.



사실 이미 고등학교까지 자녀들의 진학을 마친 지인 분들은 특히 직업이 교사인 분들이 집에 돈이 차고 넘치는 게 아니라면 하루라도 빨리 공립초로 전학시키라는 조언을 자주 하셨다. 중학교에 가면 사립초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 적응을 못한다고...


그게 과연 무슨 뜻일까?


이해는 정확히 되지 않았지만 휴직계를 제출하게 되면서(돈이 없으니까) '과연 이 길이 아이를 위한 길이 맞을까' 치열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사실 옵션이라고 하기엔 우리 가족에게 정말 맞지 않는 옷이었다. 마지막 남은 미련을 휴직계와 함께 던져버리고 결국 큰 아이가 집 앞 혁신초로 첫 등교를 했다.

 

 그날은 하필 보슬비가 내렸다. 마음을 졸이며 종종걸음으로 하교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멀리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교문 앞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무슨 일 있었어?" 물으니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엄마, 수업 시간 동안 하품하는 척하면서 눈물을 찔끔찔끔 짜냈어. 나 다시 전 학교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 지금이라도 취소하면 안 돼?" 하며 울먹거렸다.

 어떻게, 결심한 건데... 그러나 마음이 요동쳤다.



 전학 둘째 날 준비해야 할 짐이 많길래 교실이 있는 3층까지 같이 아이와 함께 들고 올라갔다. 곧 사교성 많은 아이가 왜 전 학교를 그리워했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교실밖에 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매우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이곳에 올라올 때 교문에서 저지 안 당하셨나요? 어떻게 올라오셨죠?" 하고 물으셨고

"아이가 어제 전학하고 준비물이 많아 무거울까 봐 오늘까지는 도와주러 왔어요." 하고 답했다.

"이거 들어봐, 너 혼자 할 수 있지?" 하고 단호히 물으시니 아이는 두려운 눈빛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이것 보세요. 아들이 다 할 수 있다는데 어머니께서 이러시면 아이가 독립을 못합니다." 하셨다.


아무래도 이렇게 해서는 아이 마음을 달래기는커녕, 적응을 못하겠다 싶었다. 어제 아이가 운 것도 있고 그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어

"선생님 잠깐만 얘기할 수 있나요?" 질문하니 단박에

"지금은 등교하는 시간입니다. 엄청 분주한 시간에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셨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겨우 용기를 내

"선생님 정말 잠깐이면 돼요" 했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교실 문 밖으로 나오셨다.

"선생님, 아이에게 전학이 사실 충격적인 일이잖아요. 어제도 좀 울었고 해서 부탁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하니 "어머니, 저는 보육교사가 아니에요. 전 제 역할을 할 거예요. 어제도 준비물이 하나도 없이 등교해서 아이가 마음이 좀 그랬을 겁니다. 그건 제 잘못도 아이 잘못도 아니고 어머니의 몫이죠. " 하셨다.

나는 한마디도 그 앞에서 할 수 없는 죄인이었다. 힘없이 서있는 날 향해 손바닥을 보여주시면서

"앞으로는 이렇게 올라오시지 마시고 상담 신청하고 오세요." 하셨다.

사실 전학 당일이 개학 일이라, 교무실에 모든 분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어떤 앱을 깔아 담임선생님과 소통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지 못했고, 안내문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하나요?" 물으니

"전화로 하면 되죠." 하셨다. 더 이상 질문을 할 용기도 기운도 없었다. 눈물이 곧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1층에 내려오니 보슬비는 소나기가 되어 솨아솨아 내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오느라 우산을 못 챙겨 나왔다. 하릴없이 빈 손을 만지작 거리는데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이 말대로, 지금이라도 전 학교에 연락해서 빌어볼까? 다시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매달려야 하나? 회사에 한 달도 안돼 복직계를 제출하면 웃기겠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그것은 장기적으로 아이에게도 우리 집 재정에도 좋지 않다. 이런 결단을 나린 나약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바보 멍청이처럼 느껴졌다.

나는, 비겁하게 그 무섭고 차가운 선생님을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힘없고 가엾은 아이를 교실에 두고 왔다는 자책감에 하루 종일  사실은 한 달간 숨죽여 울었다. 무엇보다 좀 살겠다며 앞뒤 재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낸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감정의 동요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무렵 가만히 그날 있었던 일을 되짚어봤다. 아이가 아니라 내가 공립초 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사립초는 학비가 비싸다 보니 부모의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공교육에서는 당연해진 교내 출입 금지를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실 그 당시가 서이초 사건 직후라 한참 더 예민할 때였다.

사립초는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가끔 아이 사물함을 대신 정리해 주러 가기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멀다고 바쁘다고 가지 못했던 난 무심한 부모였었다. 그래서 전학 날 따라나섰던 것이 참 자연스러웠던 행위였는데 이곳은 그게 틀린 것이다.

'그래 아이도 나도 완전 문화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한 거야...'


한편 아이가 그동안 학교에서 평이 좋았던 담임 선생님들을 만났던 운이 지금의 이 만남을 더 불행하게 느끼도록 만든 것 같다. 지인들의 위로대로 1호는 아직 만 8세라 그런 건지 하루종일 울었던 내가 무안하게도 개학 후 일주일이 흐르고 난 뒤 '이제 이 학교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 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립초와 달리 동네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교우 관계다. 교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동네 친구라 서로 안면을 튼 사이가 많았고 방과 후에도 놀이터에서 자연스레 만나 놀고, 오며 가며 빠르게 친밀해졌다.

심지어 아파트 커뮤니티 프로그램, 수영장에서도 마주쳤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초품아 구나!


또 다른 큰 수확은 1시간씩 통학버스 차량에 썼던 소중한 시간이다. 이제 아이는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데 쓰거나 자전거를 타는데 쓰고 있다. 등하교도 학원에 가는 것도 뭐든 스스로 하게 됐다. 환경이 바뀌고 나니 더 자립심이 길러진 느낌이다.


 물론 우려했던 대로 반 아이들 모두가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아이들 간 격차도 커 보였다. 사립초는 욕심이 득실득실한 내가 제일 내려놓기 힘들었던 문제였지만 1년을 돌이켜보니 '정말 잘 해냈다!' '잘 이겨냈다', 마음을 어루만져본다.

서울 하늘 어딘가에 있을 다른 욕심 많은 나 같은 엄마를 위해 혁신초 적응기를 남긴다.

 


에필로그

아이는 2번째 학기가 시작된 새 학년 봄학기에 반장 선거에 나가 12표를 받고 당선되었다.

사실 요즘 누구나 다 한번씩 한다는 반장이지만 아이가 잘 적응했다는 상장 같아서 내게 준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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