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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 R May 29. 2024

어느 하원 길 오후

어렵기만 한 성교육

 윈도 XP 배경음악이 어디선가 들려올 것 같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었다.

미세먼지도 없고 남편 허리를 쿡쿡 찔러 북서울꿈의 숲 언덕을 넘어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다녀왔다. 날이 좋아서 그런가 그늘이 없는 곳은 약간 더웠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여유롭고 활기찬 반나절을 보낸 뒤 둘째 하원을 서둘렀다.


들뜬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오히려 늘 밝기만 한 선생님께서 차분한 얼굴이 되었다.

아이를 바로 부르지 않으시고 잠깐 할 말이 있다고 들어오라고 했다.

보통은 “오늘도 재밌게 잘 보냈어요.”라고 환하게 웃으시면서 바로 아이를 불러주시는데 '무슨 일일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희시간에 아이가 장난감을 성기 주변에 닿을 듯 말 듯 놀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이가 다가와 "선생님! 내 건 이것보다 커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첫째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런 말은 Saturday Night Live Show에서나 나올법한 표현이 아닌가! 그 누구도 아닌 '내! 아! 들! 이! 청정지역에서만 키우고 자랐던 내! 아! 들! 이'라고 속으로 외쳤다.

이내 자극적인 헤드라인 기사들이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폈다.

"어머" 나는 외마디 비명 같은 대답뿐, 더 할 말이 없었다. 너무 놀란 얼굴이었을까?

선생님은 약간 진정시키는 말투로  

"다행히 바지를 벗지는 않았어요. 단호하게 이런 곳에서 그런 말하면 안 돼!라고 얘기해서 울먹거렸기도 했고 제가 잘 말했으니 어머님은 더 말씀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하셨다.

그러고는 아이와 만났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셔서 그런지 아이 얼굴이 어둡게 보였다. 하지만 밖에 세워둔 두 발자전거를 보더니 바로 얼굴이 환해져서는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함께 하원을 기다렸던 아이의 친한 아들엄마에게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 에피소드를 나눴더니

"아이들 다 크면서 그런 일 한 번쯤 겪어요." 하며 위로하셨지만 자못 놀란 눈치 긴 했다.

'아 괜히 말했나!'이 놀란 감정을 어딘가에 배설해야만 했다. 입이 가볍다고 표현하기엔 슬프고 성숙한 인간이 아니라 걱정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한다.

분명 남편이 이런 모습을 봤다면 분명 "네가 엄마야?" 호통쳤겠지? 유난히 새파랗던 하늘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해 봤다.

육아휴직 중이고 아이를 방치한 적이 없다. 같이 드라마를 시청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게임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10분 '무한의 계단'이라는 의미 없는 반복 같은 게임을 하곤 했다.

아이는 아빠와도 친했다. 남편으로서는 별로여도 아빠로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부부는 잘못한 것이 없다. 잘못 키우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낙담이 됐고 뭘 어떻게 잘해야 할지 난감했다. 누군가 들으면 도치맘이라고 할지 몰라도 아이는 천진난만하다. 별생각 없이 어디선가 들은 말을 따라 했거나 정말 단순 비교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왜 이렇게 걱정을 하고 괴로운 마음이 되는 걸까? 선생님이나 누군가 이 에피소드를 전해 듣게 된다면 분명 소중하게 지켜온 우리 가정과 아이를 판단할 것만 같아서다.

그동안 내가 마음속으로만 하긴 했지만 다른 아이의 행동에 손가락질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두려운 것은 정확이 '그 지점'이었다.

'아니에요, 얼마나 순진무구한데요. 다 그렇게 커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위로를 듣고 싶었다.

그제야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 봤다.

아이 반에 사고뭉치 두어 명 이름을 알 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했다면

백 퍼센트 그들의 부모를 판단했을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나란 인간은.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슬펐다가 낙담이 됐다가 반성하는 마음이 돼 있었다.

감정의 요동을 알리 없는 둘째는 신나게 동네를 뛰어다니고 자전거를 탔다. 그러다 자전거를 넘어뜨려 레일이 빠졌다.

기운이 없어서인지 웬일로 원망스럽지 않았다. "이거 언젠가는 빠질 것 같더라, 엄마가 바로 고쳐올게" 하고는 단골 자전거가게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가는 길에 퇴근길이라 발걸음이 바빠보이는 아이의 작년 담임선생님을 마주쳤다. 선생님은 날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셨다. 상태가 안 좋아서일까? 그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다 알고 계시겠지?' 생각했다. 어색한 미소로 화답하며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애꿎은 스마트폰만 만지작만지작, 전문가 사장님은 5분도 안돼 뚝딱 자전거를 고쳐주셨다.

유난히도 길었던 하루 일과가 다 끝나고 집에 돌아와 땀에 절은 아이를 남편 손에 맡겼다.

"샤워하면서 꼭 대화해 줘" 간절한 눈빛을 보내니 남편의 표정이 결연해진다.

"응"

사람을 키워내는 하루하루가 쉽지 않게 흘러간다.

놀란 가슴은 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고른 숨을 따라 겨우 진정이 됐다. 아이의 콧방울을 살짝 건드려 보기도 하고 작은 다리를 조물조물하다 가만히

들여다봤다.

'녀석, 미안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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