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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드 Oct 19. 2022

쉽게 읽는 돈키호테 1-49

산초 판사가 자기 주인 돈키호테와 나눈 진주한 대화에 대하여

* 산초 : 나리, 사람들이 말하길 마법에 걸리면 먹지도, 마시지도, 잠도 안 자고 무얼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리께서는 잘 먹고 잘 자고 화장실 가고 싶다는 욕구도 있고, 물어보면 대답도 잘하시는데 마법에 걸린 게 아닙니다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 거기서 나오세요. 혹시 실패하면 다시 들어가시면 되잖습니까요. 만약에 혹시나 탈출에 실패하시게 되면 저도 나리와 같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요.


* 돈키호테 : 그렇긴 하지. 하지만 산초, 마법도 세월 따라 방식이 바뀌는 거 아니겠나? 게다가 나는 내가 마법에 걸려있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 만약 마법에 안 걸렸는데 이렇게 편안히 우리에 갇혀있는 거라면 내 도움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이니 내가 너무 게을러 보이잖아. 그나저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니 저 사람들에게 우리 문을 열어 달라고 하게. 안 열어주면 여기서 볼일을 볼 것이며 그럼 견딜 수 없는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니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하게. 어차피 나는 마법에 걸려 3백 년 동안은 이 장소를 벗어날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 루쉰이 쓴 [아큐정전]의 아Q와는 다르게 돈키호테의 자기합리화는 긍정적인 매력이 있다. 아Q가 자신의 비침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정신승리법을 사용한다면, 돈키호테는 현실을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잠시 마법이라는 상상의 세계를 차용한다. 내가 처한 상황을 한탄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잠깐 견딜 뿐. 견딤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더 열악한 것들을 상상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랴. 티베트의 정신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갑자기 몸이 너무 아파 자동차에 실려 응급실로 가던 중 길에 있는 빈민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저 사람들보다 처지가 낫다'라며 자기 몸을 타일렀다 한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원망하기보다 더 힘든 상황도 있는데 이만하면 괜찮다라며 내 마음을 도닥이고 견딘 후에 올 좋은 것들을 떠올리는 것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교단 회원은 돈키호테의 광기에 호기심을 느껴 말을 건넸다.


*교단 회원 : 돈키호테 어르신, 무익한 기사소설 때문에 마법에 걸렸다고 믿으셔서 사람들이 우리에 가둘 수밖에 없도록 만드셨는데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오십시오.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왜 하필 황당무계한 기사 소설만 읽으십니까? 무훈이나 기사도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기사 소설 말고도 성서에 나오는 <판관기(사사기)>도 있습니다.


* 돈키호테 : 내 보기에 분별력이 없고 마법에 걸린 자는 바로 당신이오. 현실에 기사 소설이 분명히 존재하듯이 소설 속 이야기들도 진짜요. 기사 소설 속에 나오는 역사적 인물들이 다 가짜라는 거요? 그들은 역사책에도 등장하오. 당신의 말은 하늘에 태양이 없고 얼음은 따뜻하며 땅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소. 


* 교단 회원 : 실제 인물을 차용해서 소설을 만든 거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믿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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