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속의 오해와 진실 (6)
최근 이스타항공의 매각 및 구조조정 갈등과 인천 국제공항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문제로 항공업계가 꽤나 시끄럽습니다. 그런 비정상적 상황을 떠나 일반적인 상황을 놓고 볼 때, 조종사는 정규직일까요? 아니면 계약직 비정규직 근로자일까요?
국내 항공사에 근무하는 한국인 조종사들을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만 60세까지는 정규직, 이후 만 65세까지는 촉탁 계약직입니다. 중견기업 이상 정규직 근로자의 정년인 60세를 적용하되, 항공법상 운송용 조종사의 연령제한인 65세를 준용하여, 경험이 많은 베테랑 기장님들을 5년 더 근무하도록 배려하고 있지요. 정년이 길어서 좋겠다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 정년까지 쉽게 일할 수 있다면, 아마 저는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겁니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조종사들은 우스개 소리로 스스로를 3개월 계약직이라고 부릅니다. 조종사 자격이 상실되거나 합법적(?)으로 직권 면직될 수 있는 평가가 매년 네 번이나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먼저,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항공 신체검사가 있습니다. 조종사 신체기준이 과거보다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신체검사 날짜가 다가오면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안하던 조깅과 수영을 시작하고, 다이어트에 돌입하며 영양제를 구매하는 등 한바탕 소란을 떨게 됩니다.
그리고, 매년 한 번씩 노선 심사도 받아야 합니다. 국토부 심사관 또는 사내 위촉심사관이 실제 비행기에 동승하여 기장과 부기장의 비행절차 준수 여부 및 비행 기량 등을 매의 눈으로 점검합니다. 이때 비행 전후로 비행 지식에 대한 구술 및 필기평가도 당연히 포함되는데요, 65세까지 시험지와 답안지를 마주해야 하는 기분을 아실는지요...
마지막으로 전•후반기 각 1회씩 시행되는 정기 시뮬레이터 평가가 바로 조종사들에게 있어 가장 까다로운 관문입니다. 일부 부기장들은 심사 스케줄이 나옴과 동시에 밥맛이 떨어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요. 실제 항공기와 동일한 환경의 시뮬레이터 장비 안에 들어가 엔진 정지, 화재, 랜딩 기어 결함 등 평소에는 경험하기 힘든 비상상황을 수 없이 마주하다 보니, 심사가 끝나면 대부분 반쯤 풀린 눈으로 시뮬레이터 장비를 기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안전운항을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해야 할 훈련과 평가이다 보니 시뮬레이터 훈련•심사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조종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항공사에 입사하면 부기장이 되고, 시간이 쌓여 기장이 되면 어떠한 테스트도 없이 65세라는 정년까지 즐겁게 비행할 줄 알았던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이렇게 끊임없는 훈련과 평가 속에서 semi 비정규직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안전비행을 위한 조종사들의 노력.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만큼 그 길이 여유롭거나 평탄하지는 않음을 말씀드리며, 언제나 안전하고 편안한 비행이 되도록 노력하는 김기장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