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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per Jun 29. 2020

나 조종실 구경 좀 시켜줄래?

비행기 속 오해와 진실 (5)

기장이 되었다고 하니 많은 친구들과 비행기를 좋아하는 남자 조카 녀석들은 이제 조종실도 구경시켜주고 그러는거냐며 너스레를 떱니다. 안된다는 대답에 다 알고 있다는 투로 실망하지만 그래도 한마디를 더 합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타면 구경도 시켜주고 그랬다는데 사실인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부 외국 항공사의 경우 지금도 가능하고요. 자~ 그럼 그렇게 개방적(?)이던 조종실이 왜 지금은 ‘출입 불가의 영역’이 되어버렸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8~90년대까지만 해도 비행기 조종실은 무척이나 개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안전운항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기장의 승인을 받아 꼬마 손님부터 비행기를 좋아하는 어른까지 누구든 조종실 구경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옛날에 연예인 OOO이가 탔는데 칵핏(조종실)에 들어와서 몇 시간을 떠들고 가더라’며 무용담(?)을 풀어놓으시는 60대 노기장님들을 지금도 간간히 뵐 수 있지요.


그렇게 열려있던 조종실 문이 굳게 닫히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911 테러입니다.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사건은 알카에다 무장조직이 항공기를 납치하여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 건물을 동시 다발적으로 파괴하고 3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끔찍한 범죄로 기록됩니다. 당시 시뮬레이터 등을 통해 기본적인 조종법을 익힌 범인들은 보안이 허술했던 조종실로 들어가 항공기를 탈취하였고, 엄청난 양의 연료가 탑재되어있던 항공기는 하나의 커다란 폭탄이 되어 테러의 무기로 악용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연방항공청(FAA)과 국제 민간항공기구(ICAO) 등 관련기관에서는 조종실 출입에 대한 보안규정을 강화하기 시작했지요.

우리나라 또한 이때부터 조종사 및 적법한 출입 허가증을 소지한 자 이외에는 조종실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을 제•개정하여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항공사의 오너나 임원들조차도 사전 인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조종실 출입이 불가할 정도로 ‘불가침 성역’이 되어버린 거죠.


하지만,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미국, 영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들은 다시 조종실 문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주 오래전처럼 상시 개방은 아니지만, 항공기가 출발하기 전까지 그리고 착륙 후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는 조종실 문을 개방하는가 하면, 일부 항공사에서는 직접 조종석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작 테러의 피해를 입거나 주요 타깃이었던 국가들은 다시 조종실 문을 개방하고 있는데,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나라들만 여전히 그 문을 꽁꽁 닫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 뭐 언젠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는 날이 오면 우리나라 비행기의 조종실도 활짝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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