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정길 Aug 21. 2020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아이들의 슬램덩크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 출전기

보통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 경기가 끝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이 만화를 읽기 전까지는. 중학교 시절 우연히 읽은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은 이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다큐멘터리나 스포츠 영화에서 가끔 나올만한 이 대사는 『슬램덩크』 속 농구부 안 감독이 풋내기 초보 농구선수 강백호에게 해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강백호는 주장인 채치수에게 묻는다.   

   

“설마, 우리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전국대회 2회전, 전 대회 우승팀과의 24점 차 뒤처진 경기 상황에서 벌어진 이 장면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핵심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그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한 시골의 무명 농구부는 기적 같은 역전 승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마치 승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듯 다음 경기에서 2회전의 치열했던 경기로 인해 패배했다는 짧은 글과 함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역전승이 가져다주는 짜릿함은 순간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열정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슬램덩크 속 안 감독의 명언

아무리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열정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만화책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승리의 결과보다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기에 모두가 공감하며 읽지 않았을까? 만화로 그린 상상 속 허구의 이야기지만 꼭 주변에도 있을 것 같은 이런 이야기가 내게도 일어났다.     


무등산 바로 아래에 자리한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4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중 3년 동안 학교스포츠클럽 지역대회를 우승하고 전국대회에 진출했었다. 마지막 해는 농구 종목의 전국대회였다. 『슬램덩크』 속 농구 이야기처럼 말이다. 만화와 같이 치열했던 지역대회 예선을 뚫고 전국대회가 열리는 경북 상주로 가는 차 안의 분위기는 북산고가 탔던 기차 안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전국대회 출발 날 새벽


그해 학교스포츠클럽 전국대회는 결승 토너먼트가 폐지되었다. 지나친 경쟁의식을 재고하고 참가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정정당당한 승부의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경쟁의 가치도 중요하다 생각했지만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이기든 지든 4경기를 하는 일정이 되어 버렸다. 4개의 팀으로 이루어진 한 그룹에서 3경기를 치루고 옆 그룹의 동일한 순위를 거둔 팀과 추가 경기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우리는 모든 경기의 승리를 목표로 삼고 결전의 장소로 출발했다.     


목표였지만 실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전국은 넓다지만 그래도 지역 1등 팀이었고 아이들도 부단히 노력해 왔었다. 자신 있었고 이룰 거 같았다. 그러나 설렘과 기대가 과했을까? 과한 기대는 실망을 낳는다고 했더랬다.     


1승 2패 C그룹 3등, 우리가 받은 전국대회 그룹별 리그전 성적이었다. 갈고닦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전국의 높은 벽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출발 전 다짐했던 목표는 제일 먼저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다행히 바뀐 규정이 마지막 남은 불꽃을 태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는데 이전과는 다르길 바랐다.     


그러나 마지막 경기도 이전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상대팀에 질질 끌려가더니 전반전이 끝나고 11점 차이가 되었다. 학교스포츠클럽 전국대회는 아마추어 경기라 시간이 짧고 보통 50점 내외로 점수를 득점한다. 전반전을 11점 차이로 뒤지고 있다는 것은 또다시 패배에 가까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패배의 두려움이 엄습했는지 벤치에 앉아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거친 숨만 내뿜는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얘들아 최선을 다했다면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나의 바람이 통해서였을까? 아이들은 전반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기기 위한 모습이 아니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2점, 6점, 10점을 따라잡더니 경기 종료 직전 동점이 되었다. 만화처럼 기적의 역전승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다.     


제12회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경북 상주)


경기 종료 후 구석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경기에 져서 억울함에 우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그냥 너무 아쉽더랬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했던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열정이 만든 눈물일 것이다. 결과는 순간이지만 과정은 영원하듯, 그날의 경기는 역전을 못했어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만화에서처럼 과정을 통해 느끼고 배웠기에 가슴속에 남아있는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있다. 경기는 종료 휘슬이 아니라, 포기하는 그 순간 끝이 나는 것을. 또한 노력하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가 망쳐버린 내 수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