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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마니 Oct 31. 2022

이 가을, 속초여행기

- 속초로 가는 길 -

지난주 금요일에 휴가를 쓰고 2박 3일 일정으로 속초를 다녀왔다. 명분은 설악산 단풍구경이었는데, 설악산은 어두운 구름에 가려진 채로 단풍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초로 가는 길 내내 국도를 드라이브하면서 알록 달록 단풍으로 물든 산과 파란 가을 하늘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가을여행이 주는 그 쓸쓸하면서도 찬란한 풍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속초로 가는 길, 중간에 점심시간이 되어 가평 즈음에서 식사를 했다. 예전에도 한번 들렀던 곳인데,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절로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서 다시 찾았다.

원조장작불곰탕(장작불곰탕 11,000원)   


장작불곰탕 한 사발을 뚝딱해치우고, 지나가는 길에 "감자밭"에 잠시 들렀다. 춘천 부근에 갈 때면 자주 들르곤 했는데, 감자와 똑 닮은 모양새를 한 이 감자빵은 겉은 쫄깃쫄깃하고 속은 포슬포슬 고소한 게 언제 먹어도 맛있다. 새로 나온 미트파이 감자빵도 먹었는데, 감자와 고기의 조합이 나름 괜찮았다.

카페 감자밭(감자빵 3,300원, 미트파이 감자빵 3,800원)


춘천을 지나 다시 속초로 향하는 길, 여전히 하늘은 맑았다. 일기예보에서 속초날씨가 흐림과 때때로 비로 되어 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속초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에는 구름이 점점 많아졌고, 애석하게도 일기예보가 맞았다. 그래도 속초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쨍한 하늘과 울긋불긋 단풍들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풍경들의 연속이었다.

속초에 다다를때즘 흐려진 하늘


속초에 도착해서 미시령옛길로 들어섰다. 꼬불꼬불해서 운전하기는 불편한 길인데, 울산바위를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는 뷰를 보면 고생스러움을 잊을 수 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울산바위의 위용에 할 말을 잃고 연신 바라보다가 중간에 전망대가 있어 잠시 차를 세웠다. 흐린 날씨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까이서 울산바위를 본 것은 처음이라 한참 동안이나 울산바위를 바라봤다. 울산바위를 한참 바라보다 눈을 돌리니 단풍이 또 어찌나 아름답게 들었는지! 날씨가 또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울산바위와 단풍을 감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행 다음날부터는 울산바위가 구름에 가려져서 볼 수조차 없었다. 울산바위 하나만 제대로 봐도 속초여행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시령옛길에서 바라본 울산바위와 설악산 단풍


속초관광수산시장에 들러 간단히 먹을 것을 샀다. 속초에 오면 항상 먹는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시장에서 파는 막걸리 빵이다. 특별할 것 없는 막걸리빵이지만,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여기 막걸리빵이 제일 맛있다. 줄을 서서 막걸리빵을 사고, 근처 매장에서 오징어순대와 황태무침을 산 후에 양손 무겁게 숙소로 돌아왔다.

막걸리빵 5,000원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오늘도 흐림이다. 단풍여행이 구름여행이 되어가는구나! 날씨는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아침은 맛있는 것을 꼭 먹어야겠다. 속초 오기 전부터 찾아놓은 '속초생대구'로 향했다. 수요미식회에도 나온 맛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사람이 매장에 꽉 차 있었다. 조금 대기를 한 후 매장으로 들어가 생대구탕 2인분을 주문했다. 잠시 후 뽀얀 대구탕과 반찬들이 세팅되었다. 직원분이 청어알을 밥과 함께 김에 싸서 먹으라고 알려주셨는데, 처음에는 빨간 청어알이 너무 낯설었지만 한입 먹고 나니 이게 또 심각한 밥도둑이다. 짭쪼름하면서 매콤해서 밥과 너무 잘 어울리고, 김과 싸서 먹으니까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올 판이다. (하지만 내 입맛은 집을 나간 적이 없다...) 청어알 맛에 빠져서 밥 반 그릇을 해치웠을 때쯤 대구탕이 끓기 시작했다. 시원한 국물에 부드러운 대구살, 향긋한 미나리가 정말 환상의 조합이다. 전날 술을 먹어서 그런지 몇 배로 더 맛있게 느껴졌다. 대구탕 국물에 소주 한잔이 생각났지만, 꾹 참았다. 애주가에게 대구탕 국물은 너무 위험하다.

속초생대구(생대구탕 23,000원/1인분) *대기가 많은 경우, 테이블링 앱에서 미리 예약 가능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저녁거리를 미리 살 겸 '오징어난전'으로 향했다. 바닷가 주변에 널려있는 양미리들과 수조에 살아있는 오징어들, 숯불에 굽고 있는 양미리의 고소한 냄새, 삼삼오오 모여 낮술을 즐기시는 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나도 저기 어디 앉아서 구운 양미리와 오징어회에 소주 한잔하고 싶었지만, 배가 불러 포기하고 저녁에 먹을 오징어회를 포장했다.

오징어난전 풍경(오징어회는 한마리 15,000원)


오징어난전을 나와서 근처 속초해수욕장으로 갔다. 속초는 산과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속초해수욕장에 가서 새로 생긴 '속초아이' 관람차도 구경하고, 바다가 보이는 까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흐른 하늘이라 그랬는지 바다가 유독 차갑고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주말을 맞아 해수욕장을 찾은 많은 가족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날씨와 상관없이 그저 즐겁기만 한 어린아이들, 추운 날씨에도 바다에 발을 담그고야 마는 젊은이들, 그리고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부모님들. 흐린 가을 하늘에 비까지 흩뿌리는 날씨였지만, 여행이 주는 행복은 모두의 얼굴에 남아있었다.

속초해수욕장(속초아이, 웨일라잇 까페)


저녁을 먹기 전에 숙소 근처에 있는 수제맥주집에 들렀다. 우리 부부는 맥주를 좋아해서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의 수제맥주집을 찾아가는 편이다. 지난번에 속초에 왔을 때는 크래프트루트(CRAFTROOT)라는 곳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몽트비어(Mont Beer)에 다녀왔다. 주말에만 판매한다는 텍사스 바베큐 플레터에 하와이안 IPA와 페일에일을 마셨다. 플레터는 잘 나오는 편이었고, 둘이 먹기 적당했다. 맥주를 좋아하지만 전문가는 아니기에 개인적인 평가를 하자면, 탄산이 너무 강해서 에일 본연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다양한 맥주라인을 갖추고 있고, 맥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책자를 보면서 맥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몽트비어(텍사스 바베큐 1인 플레터 30,000원, 하와이안 IPA와 페일에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 오늘도 역시나 흐리구나! 여행 내내 맑은 하늘 한번 안 보여주다니! 맑은 날에 속초에 또 와야 되는 이유가 생겼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인제에 들러 황태구이 정식을 먹었다. 안 먹었으면 섭섭했을 정도로 맛있었다. 시원한 황탯국과 적당하게 양념된 황태구이, 오징어젓갈과 나물 밑반찬 등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맛있는 황태구이와 함께 2박 3일 단풍여행을 마무리했다.

용바위식당(황태구이 정식 13,000원/1인)


이번 가을여행을 하면서 순간순간 행복하다는 감정을 자주 느꼈는데, 그런 순간들이 모이니까 그날 하루가 전체적으로 행복한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한 순간들은 때때로 찾아왔다. 최근에 오은영 박사님이 행복은 도달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라는 내용의 강연을 하신 것을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행복은 사실 순간이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물론 긴 여운을 갖는 큰 행복들도 지만, 살다 보면 작고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는 일이 더 많다. 행복한 순간들을 온전히 느끼면서 그런 순간들을 자주 만들다 보면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행복한 순간을 자주 경험하는 방법, 그것이 나에게는 여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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