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90세가 되는 어머님은 요양병원에 계신다. 몇 년 전에 계단에서 쓰러져 뇌를 다친 후 병원과 집을 오가며 생활하시던 중 작년 10월에 다시 쓰러지신 어머님은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회복이 되어 지금은 요양병원에 몇 개월째 계신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어머님이 계신 요양병원에 갔다.
어머님은 50년 전 남편이 초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를 하다가, 30년 전 우리 결혼 초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며칠 전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이셨다.
떠오르는 기억을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가 내가 결혼한 후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 기억을 떠올리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며 슬픔을 가득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그 때의 일이 기억이 나세요?’
‘너도 시집와서 어색하고 적응하느라 힘들었을텐데, 밥상을 차릴 때면 내가 아무 말 없이 반찬을 가져가기도 하고 가스 불 아끼라고 음식을 데우지도 못하게 했었지’
‘요즘 너한테 모질게 하고 힘들게 했던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내가 그 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셨다.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 때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는 어머님이 이해되지 않아 어머님에게 당돌할 정도로 대들거나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 어머님도 속상하셨을거예요’라는 말을 들으며 어머님이 ‘이해해주어 고맙다’고 하셨다.
결혼 초에 남편이 시아버님과 같은 일을 해서 시부모이 살고 계신 2층에서 살게 되었다. 시부모님, 시할아버지, 손위 시누이, 남편과 나 이렇게 여섯 명이 한 집에 살면서 친정과 다른 가정의 문화와 관계에 적응하는데 참 어렵고 힘들었다.
결혼 전에는 모든 집들이 우리 친정 부모님처럼 웃어른을 먼저 챙기고 친구들도 자유롭게 오가며 먹을 것이 없어도 나누며 사는 줄 알았는데 결혼 후 친정과 너무 다른 가족 문화를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친정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나, 동생들 넷, 이렇게 9명이 함께 살았다. 밥을 먹을 때는 같이 먹고 반찬이 많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맛있는 반찬은 조부모님에게 먼저 드시라고 하고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반찬을 나누어 주며 밥을 먹었다.
시댁은 6명이 있는데 시아버지와 남편이 함께 식사를 하고 나면 시누이가 먹고, 다른 한 상은 시할아버지가 계신 방으로 가져다 드려야 했다. 이 분들의 식사가 끝나고 난 후 시어머니와 나는 남은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이러다 보니 밥상을 세 번, 네 번 챙겨야 했고 시어머니와 나는 따뜻한 밥을 먹을 때가 없었는데 시어머님은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나는 속상하기도 하고 불편한 마음이 있어도 처음이라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밥상을 여러 번 차려야 하는 번거러움과 며느리라는 이유로 따뜻한 밥을 먹지 못하는 상황도 힘들었지만 내가 더 힘들게 느꼈던 것은 시할아버지에게 맛있는 반찬을 드리지 못하게 하는 시어머님을 이해하지 못해 힘들었다.
시할아버지가 계시는 방에 밥상을 들고 가려면 시어머님이 주방에 들어와 내가 차려 놓은 반찬을 훑어보고 맛있게 드실 것 같은 반찬은 빼낸 후 밥상을 가져가도록 하셨다. 이럴 때면 나는 그 밥상을 들고 할아버지에게 가는 것이 민망해서
‘할아버지는 입맛 없으니까 반찬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맛있는 반찬 없이 뭐하고 드시라고 이러세요. 저는 이상을 못 들고 가겠으니 어머님이 직접 들고 가세요.’
라는 말로 어머님께 반항을 했지만 어머님의 그런 행동은 변하지 않고 지속되면서 어머님과 나는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님과 내가 밥상 때문에 갈등하는 것을 알게 된 시아버님께서 어머님을 주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내가 드리고 싶은 대로 할아버지에게 준비한대로 음식을 드릴 수 있었다.
친정에서는 9명의 식구가 한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할 뿐 아니라 맛있는 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부터 챙기도록 배웠기에 나는 할아버지의 반찬을 빼내는 어머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내 행동이 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좋은 사람이고 어머니는 나쁜 사람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흘러가고 자연스럽게 어머님이 주방에 들어오면서 어머님의 반찬을 빼내고 시할아버지 모습을 보면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어머님의 시할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행동이 무엇 때문에 그런지 궁금해서 물었다.
한 동안 말이 없으시던 어머니가
공무원에 합격했던 시아버지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공직생활을 할 수 없게 되고 난 후 시아버지는 다른 전문직 시험준비를 하느라고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5남매를 키워야 했던 시어머님은 시할아버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시할아버지는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낭비하는 생활을 했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시할아버지를 미워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시어머니의 마음과 행동이 이해가 되어 함께 울었다.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시어머니를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했던 나의 말과 행동이 시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면서 어머니를 비난하는 대신에 시어머니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하면서 시어머니의 행동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님을 코로나로 인해 자주 뵐 수 없지만 한 번씩 뵈러 가면 반가워하고 갈수록 어린아이 같은 어머님이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다. 이런 어머님의 기억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고 우리 곁에 오래 계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