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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완 Nov 03. 2020

비 내리는 날이 나는 좋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여 있다. 비가 올려나 라는 생각하며 비를 기다린다. 

  먹구름이 끼여 비가 내리겠지 싶었는데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대고 땅에 있는 먼지들이 회오리처럼 날아다니다가 먹구름을 날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먹구름이 낀 날은 대부분 비를 내려주기 때문에 먹구름도 반갑고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좋다.     

  집에 있을 때 비가 내리면 베란다에서 아파트 주차장과 놀이터, 경기장 등 주변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기도 하고, 조용하게 비가 내리는 날은 편안하고 느긋함으로 뒹글 거리며 TV를 본다. 때로는 부침개 생각에 냉장고 속에 조금씩 남아있는 야채를 꺼내 야채전을 부치거나 어떨 때는 김치를 꺼내 잘게 썰고 계란과 밀가루를 섞어 부침개를 붙인다.

  특별히 맛있지 않아도 좋다.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풍겨 방에 있는 가족들을 식탁 앞에 모으는 능력이 있는 것이 부침개 냄새이다.     

  조용히 내리는 비는 집안에 있을 때는 비가 내리는 줄 모르고 밖에 나갔다가 

“어! 비가 내리네”

다시 집에 들어와 우산을 들고나갈 때도 있다.     


  운전할 때 투두둑 투두둑 차 앞 유리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소리도 반갑다. 와이퍼가 좌우로 움직이며 내는 뽀드득뽀드득 소리도 좋다.     

  비 내리는 날 카페를 지나다 보면 커피 향이 나를 유혹한다. 가끔씩 카페에 들러 밖이 잘 보이는 창가에 않아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거나 지인들과 수다를 떨면서 바라볼 때도 있다.     

  창밖에 내리는 비가 땅에 부딪쳐 튕기거나 나뭇잎에 떨어져 또르르 굴러내리는 모습도 나름 신기하고 흐르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 졸졸졸 소리를 듣는 것도 좋은데 지렁이가 나와 기어가는 모습은 몸을 움츠리게 하거나 내 발걸음을 나도 모르게 빠르게 한다. 

  운동할 때 내리는 비는 얼굴, 팔과 목에 한 두 방울 떨어질 때 느껴지는 시원함이 참 좋아 비를 맞아도 뛰지 않고 그 비를 맞으며 걸을 때가 있다. 그러다 비가 굵어지고 많이 내리면 하던 운동을 중단하고 집에 들어오면서도 아쉽지가 않다.     

  때로는 창문을 흔들며 내리는 굵은 비는 유리창에 부딪히며 집 안까지 들이친다. 그럴 때면 미처 닫지 않은 창문 사이로 들이친 비가 빨래를 젖게 하고 베란다를 적실 때면 베란다 청소를 하며 부지런을 떨기도 한다.      

 조용히 내리는 비는 나를 감성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비는 때로 많은 피해가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굵은 비가 시원하게 많이 내릴 때면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부자가 된 마음으로 행복하다.



  내가 언제부터 비가 좋았을까 생각하며 비와 관련된 경험을 떠올려 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우리 집을 샀는데 골목길 굽이굽이 낭떠러지를 조심스럽게 올라야 하고 그런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는 산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집이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생은 그 집에 사는 것이 친구들에게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들었는데 나는 창피함보다는 넓은 우리 집이 생겼다는 것에 참 좋았다.


  산꼭대기의 집은 경치도 좋고 아랫동네 사람들이 한눈에 보이기도 했는데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다. 아랫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물을 다 쓰고 난 후 잠이 든 한밤중이나 또는 새벽에 잠깐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특히 물 사용량이 많은 무더운 여름에는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집에서 물을 받는 것이 어려워 친정엄마는 밤새 양어깨에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 날라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모시고 함께 살았기에 부모님과 우리 5남매 모두 9 식구가 사용하려면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해 엄마는 밤새 물지게를 져야만 했다.     

  나는 어쩌다 한 번씩 물지게로 물을 길어올 때가 있었는데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지 못하고 절반만 받아 오면서도 물동이의 물을 골목길에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물동이를 지고 엎어지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엄마는 나에게 물 긷는 일을 잘 시키지 않았다. 대신에 바로 밑의 여동생은 어린데도 물을 잘 긷다 보니 엄마가 여동생과 물을 긷는 날이 많았는데 언니로서 미안함이 많았다.



  그런데 비가 내리는 날이면 커다란 고무통을 처마 끝에 가져다 놓는다. 고무통에 물이 가득 채워지면 다른 통으로 교체하면서 신났다. 여러 개의 고무통에 받아 둔 물은 아껴 쓰지 않아도 된다.

 집안 대청소를 하거나 밀린 이불 빨래를 하기도 하고 특히 고무통에 받아 놓은 물은 하루 종일 뜨거운 볕에 데워지면 퇴근하고 오신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목욕시키는데도 마음껏 사용하며 물 걱정을 하지 않아 참 좋았던 기억이 지금도 나는 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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