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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a Feb 22. 2021

'나'를 잊는 순간들

학교에서 해마다 가족신문을 만드는 행사가 있었다. 결코 창의적이지 못한 틀에 박힌 가족 신문의 시작은 가훈이었는데 친구들 중에 가훈이 없는 친구들은 매년 가훈을 달리하고는 했다. 그러나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가 만든 명확한 가훈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족신문을 만드는 내내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가훈을 적어낼 수 있었다.


화선지에 붓글씨로 크게 적혀 있던 가훈은 어린 내 양팔을 넓게 뻗은 크기보다 큰 액자에 보관되어 거실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는데 그때의 집 구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훈이 걸려 있었던 위치와 글씨체, 낡은 액자는 어제 본 듯 세세한 부분까지 내 눈앞에 선할 정도이니 나의 어린 시절을 꽤 오래 함께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집 가훈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자'였다.


나는 우리 집 가훈이 참 멋지다고 생각을 해서 일기장을 새로 쓸 때마다 제일 앞장에 가훈을 적어 놓는 것을 잊지 않고 행했다. 남에게 베푸는 것에 아낌이 없으셨던 부모님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가훈이었고, 우리는 그런 부모님을 보며 베풂을 자연스럽게 익히며 자랐다. 배려하고 양보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을 했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이기적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맹렬한 비난을 했다. 지나고 보니 이기적인 것은 나쁜 것이 아녔는데도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고, 예전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경험하면서도 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솔선수범하던 부모님은  우리보다 더 힘들었던 부모님의 오래된 친우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지만 정작 돌아온 건 묵묵부답과 냉대였고, 나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에 배려와 양보를 쏟아냈지만 친구들로부터 돌아온 말은 '착한데 너무 착하기만 해서 싫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의 따돌림이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그 시간은 고작 1%도 안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충격적이었기에 그때의 감정들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린 나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그 찰나의 순간들이 나에게 전한 메시지는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괴로웠을 부모님의 마음이 궁금했지만 어린 나는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나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그 시간을 잘 견뎌냈고 몇십 년을 지켜오던 우리 집 가훈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는 큰 문제를 겪으며 사람에 대한 상처를 받았지만 남보다 나를 생각하기보다는 타인을 배려하되, 나를 배제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무조건적인 배려와 양보, 그리고 착한 마음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나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만만해 보이거나 쉬운 사람으로 인식되어 상처로 난도질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굳이 나쁜 사람이 되어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더 큰 화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간악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오기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말이 있다. 물론 공감하는 말이고 맞는 말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잊는 순간 좋은 사람도, 좋은 관계도 무의미해진다. 그저 나는 배려하고 양보하지만 '나'를 잊는 순간들이 오면 마음을 다 잡고 '나'를 잊지 않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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