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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a Feb 04. 2021

애태우지 않기로 했다

연인 사이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나는 아닌 걸 알면서도 놓지 못했다.


사랑의 농도가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온도가 달라서였을까 대답 없는 애정을 갈구하다 끝나는 관계도 있었다.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사이에는 늘 존재하는 일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고 그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 놓아야 할 때를 놓치곤 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속에서 들려준 마지막을 맺는 문장은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문장이 모든 러브스토리, 특히 나의 러브스토리의 마지막 문장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뒤에 '하지만'이라는 접속부사를 생각하지는 못했다. 신데렐라도 '왕자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났지만 분명 왕자와 다툼이 있었을 것이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비인데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사랑하면 행복하고 행복하면 사랑하며 살 줄 알았지만 인생은 순탄치 않고 동화 속과는 다르게 별 시답잖은 일들이 발목을 잡고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한 진흙탕 속에서 나는 끌려 들어가는 사람이 아닌 끌고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연인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 내가 먼저 만남을 잡고, 늘 내가 먼저 해야 유지되는 관계는 내가 바쁘거나 내가 마음이 상하면 그대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단 한 번도 바란 적은 없지만 일방적인 관계는 나의 외로움을 증폭시켰다. 나에겐 소중한 인연들이라 쉽게 끊어지는 것이 마음이 아파 '그 사람은 원래 그렇다.'라는 합리화를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저 나는 그 사람에게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나 혼자만 애탔던 그 관계는 내가 식음으로써 끝나게 된다. 그럴 때면 인간관계의 회의감과 상실감이 커지고 나는 인복이 없다며 나를 자책했다.


사람이 좋아서 뭐든 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표했던 나일뿐인데 상처 받는 것도 내 몫이라니 견딜 수가 없었다. 혼자만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은 인간이었다. 사람과의 유대관계를 쌓으면서, 부대끼며 사는 것이 좋은 나는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나의 상처로 인해 내가 외톨이가 되는 것은 더욱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뒤집어보면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수도 있고, 불편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마음이란 것이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아서 환경에 따라, 성향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천차만별이라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속좁고 소심한 사람으로 치부되며 다시 좋아질 수도 있는 관계가 최악의 관계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애타지 않기로 했다. 연인을 사랑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마음이지만 식을 수도 있는 상대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사랑의 온도는 일반적이지 않아 식었다가도 끓어오르고 끓어오르다가도 식는다. 그러다가 완전히 식어서 다시는 끓을 수 없으면 끝이 나는데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이별은 마음이 난도질당한 듯 겪고 싶지 않은 아픔이지만 애타기만 했던 지난날들보다 회복 속도는 조금 빨랐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하게 생각을 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데 내가 그들의 성향을 100% 파악할 순 없지 않은가? 나 자신도 가끔 헷갈릴 때가 많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냥 내가 보고 싶은 날에 보고 싶은 사람을 보기로 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거나 내가 먼저 보자고 하는 것은 내가 그것에 초점을 두고 생각했기에 단순히 '누가 먼저'라는 부분에 대해 생각을 하고 섭섭해하고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초점을 다른 곳에 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을 때 그들을 만나고 만나서 웃고 떠들고 헤어지면 끝. 다시 그들이 보고 싶어 질 때까지 나는 내 할 일을 하거나 다른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것이었다.


어떤 관계에서 애타기 시작하면 상대의 모든 것에 집중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의 인스타 사진 하나에도, 카카오톡 하나에도, 일상적인 말투에도 모든 세포가 그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예민해지고 별일 아닌 일도 크게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애태우지 않았고 나는 홀가분해졌으며 오히려 인간관계가 더 수월해졌다.  우리가 애태운다 한들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당신들이(나 역시도) 애태우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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