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서울까지, 폭염에도 불구하 집회에 참석했다는 후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이 많은 사람만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민을 살짝(?) 이야기했더니...
그 민원 학부모들이 학생이었을 때도 교사였던 사람으로서의 복잡한 심정을...
다들 깜짝 놀랐다고,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연수 첫날의 고단함에도 잠이 오지 않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많은 생각들로 결국 밤새 잠들지 못했답니다.
학창 시절에도 선생님의 힘든 모습을 보면 교사인 엄마 생각이 나서 늘 손들어 자신이 돕겠다 나섰던, 혼자 복도 청소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학부모 시험감독에도 손들었던 딸.
방학식 하는 날 저녁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고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본 딸의 문자... 그리고 찾아본 기사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그 선생님도 누군가의 소중하고 귀한 딸일 테니... 그 슬픔 어떠하실지...
초임 시절 뭘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알아서 할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도움을 청하는 건데 알아서 하라니... 에 상처받고 좌절했었던 기억.ㅠㅠ
상상 초월의 학부모 민원들... 황당하고 억울하고 속상함이란...
그 어린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나는 어떤 동료인가... 돌아보았습니다.
늘 그렇지만 어른의 모습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 타인의 선택에 관해 내 기준으로 판단해버리거나 누군가의 탓이라며 거침없이 비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쉽게 누군가를 판단해서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
나는 어떻게 했나...
나는 무엇을 했나...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선을 타인이 아닌 내게로...
서로를 탓하고 비난하고 있는 너무도 안타까운 지금. 우리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도록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들을 잘 정리해 심플하게 담아 보고 싶었는데 주절주절 길어졌고, 자꾸만 움츠러드는 나를 펴는 것... 도 나의 몫일 겁니다.
“선배님을 보면 희망이 생겨야 하는데... 10년 후의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이... 희망이 안 보이는 게 너무 마음 아파요.”
37년 차 중학교 과학 교사인 나를 보며 후배가 한 말입니다. 주당 22시간 수업에 중 1 담임에, 학부모역량개발부장을 맡고 있는 나는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선배입니다.
“저 연세쯤 되면 담임도 안 하고 수업이나 업무도 좀 적어질 거라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하루종일 수업에 업무에 상상도 못 하게 팡팡 터지는 사건들로 숨 돌릴 틈도 없는 선배님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저게 내 미래라 생각하니 저 또한 안타깝고...”
지난 한 학기 동안 정말 힘든 일이 많았지만 후배의 저 말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어요.
희망을 주지 못하는 선배.....
83학번인 나는 2년째 우리 학교 최고령 담임입니다. 바로 다음은 10년 차이가 나는 후배.
대학 시절 늘 붙어 다니던 여섯 명의 친구들 중 넷은 명퇴를 하고 한 명은 교장, 그리고 평교사인 나.
다들 묻습니다. 왜 아직 학교에 있느냐고?
감사하게도 나는 수업이 좋습니다. 아직까지는....
과학은 여전히 어렵지만 수업 준비를 하는 것도 재미있고, 준비한 것을 아이들과 나누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의 칭찬 중 가장 많은 것도 과학에 흥미가 생겼다, 과학이 재미있어졌다는 것이고요.
지난 스승의 날 우리 4반 소녀들이 준 선물입니다.
아이들이 그려준 나의 캐리커쳐들은 작업실을 멋지게 꾸며주는 인테리어 소품이 되었답니다.
중1 소녀들은 싸우기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치지만 최고령 담임을 생각하는 마음이 커서 담임을 많이 예뻐하고 위해준답니다. 이런 문자를 나누기도 합니다.
(소녀들이 소개하는 것을 허락해 줌.)
"너네 담임쌤은 엄마 때 쌤이셔."
"쌤, 우리 엄마가 쌤한테 배웠대요. 진짜 대에~~ 박."
이런 말을 듣는, 모자의 담임을 하고 모녀의 담임을 하는 나를 이토록 예뻐해 주고 많이 사랑해 주는 소녀들.
참으로 옛날 사람인 내가 중1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과연 아이들 앞에 서도 되나... 를 매일 고민하는 나를... 아직도 교사로 살게 해주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 아침 운동하고 인증숏을 찍어 보내라는 말을 들어주는 기특한 소녀도 있지요.
이 아이들도 자라서 학부모가 되겠지요? 어떤 학부모가 될까요? 좋은 어른이 되어 주리라 믿어 봅니다.
아이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학부모님들과도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
물론 제대로 소통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너무 안타까워 이런 것을 만들어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지요.
가정과 학교는 아이를 위해 잘 소통하여야 하기에.... 모두에게 조금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학교는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행복해야 하는 공간이라 생각하기에
내가 좋아하는 한복을 입고 출근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며 헤어롤을 말고 있는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 나의 기준과 가치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헤어롤을 말고 한복을 입은 모습이 37년 차 교사인 지금의 내 모습입니다.
이렇게 과학교사로서,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온 시간인데....
내게 견디기 힘들 정도로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억울하기까지 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을 만날 때 느끼는 너무도 큰 아픔은 이들이 학생이었을 때도 나는 교사였다는 거....
우리가 가르치고 우리 이웃의 아이들이 자라 학부모가 되었다는 거....
지금 내가 담임을 하고, 나와 과학 수업을 하는, 내가 희망이라 생각하는 이 아이들은 어떤 학부모가 될까.... 를 생각해 봅니다.
좋은 어른이 되기를 믿어야겠지요.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 그리고 교육할 수 있는 권리인 교권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그 길을 찾는 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중1 소녀가 직접 만들어 준, 우리가 함께 손잡고 있는 학교를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숙제라 생각합니다. 우린 이 숙제를 잘 풀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