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도 주치의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은 강력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안성에 병원이 몇 군데 없었고 죽을 정도로 아파야 병원 문턱을 넘곤 했었다. 당시 한국 농어민 연합회(한농연) 부회장으로 가열찬 활동을 하던 이기범 씨는 조현선 씨한테 의료협동조합을 추진 중이라는 말을 듣고 한농연 회장이었던 박순철 씨와 함께 이 일에 뛰어들었다. “재벌들만 주치의가 있으란 법 있나? 우리 농민들도 힘을 합쳐 우리의 병원을 만들자.”라고 설득하기 시작하여 혼자서 350명을 가입시켰다. 본인이 가입시킨 사람들이 전체 조합원의 10%에 달한 적도 있다. 조합 행사를 하는데 이인동 원장이 접시를 들고 나르던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특권층으로만 생각되던 의사가 스스럼없이 함께하는 장면이 마음속에 깊이 남았고 자신 있게 조합가입을 권유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자신처럼 내성적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입시켰는지 본인이 생각해도 신기하다고 한다. 워낙 한농연 활동을 열심히 해 후에 안성지회 회장에 경기도 지회 부회장까지 지내어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으니 가입을 권유하면 호응이 좋았던 것 같다. 당시 국가에서 하는 검진이 없던 시절 10만원 이상 출자하면 조합에서는 평생건강관리의 개념으로 검진을 매년 해주었었다. 1만원 이상을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었으나 이 분은 거의다 10만원 이상의 출자를 독려했다. 신뢰없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책이 있건 없건 조합 일에 열심이었지만 2012년부터 6년간 5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경영의 책임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침 서안성에 지점을 설립하였는데 자리를 잡기까지는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다.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니지만 연간 1억 5천의 적자가 날 때는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적자를 면해보려고 단체독감접종이라도 할인을 해서 유치를 하자 하면 고지식한 실무자들이 반대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덤핑하는 건 의료협동조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지만 속은 탔다. 치과 임플란트 등 고액의 치료에는 가까운 사람들이 이사장 권한으로 할인 좀 해주면 안되냐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가는 실무자와 조합원 간에 약속을 하는 거라 이사장이건 원장이건 조합원에게 해당되는 할인율 외에는 마음대로 할인을 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본인 돈이라도 보태주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의료인이 아니면 이해가 안가는 일도 많았을 텐데 끝까지 믿고 어려움을 감내해준 고마움에 가슴이 찡하다. 본인은 번듯한 젖소 목장을 가지고 있고 한농연 회장도 지내며 세계 30개국을 가보았지만 일생을 돌아볼 때 제일 뿌듯하고 보람있는 일이 의료협동조합 활동이었다고 하시니 안성의료협동조합은 정말 복이 많은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