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기 혹은 들여다 보기
남매의 다툼이 시작되나 싶은데 약 올리는 누나의 말에 뭐라 하려던 둘째가 엄마의 ""쓰읍!" 소리에 이를 악물고
그. 런. 가. 보. 다!
음절마다 끊어 외친다.
아이들 싸움이야 늘상 그렇지만 별 것도 아닌 일로 시작되는 경우(어른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가 많아 차단기 내지는 퓨즈로 제안한 것이 '그런가 보다'였다. 그런가 보다 이해하고 넘어가라 달랬더니 아들은 화가 나기 시작하면 주문을 외우듯이 그 말을 하는데 보고 있자니 실소가 나왔다. 딸도 때로는 한숨을 쉬며 체념하듯 "그런가 보다."새침하게 말한다.
아쉽게도 우리집 아이들은 자제력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를 떠올리기 전에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보다 말하고 돌아서자마자 2차전을 시작하기도 한다.
아이들한테 저 말을 되뇌다 습관처럼 혼자 중얼거릴 때가 있다. 도로 위에서 무개념 운전자가 휑하니 가버리면 '비상등 한 번 켜지 못할 바쁜 사정이 있나 보다', 인터넷 게시글에 상식 있는 성인이라면 쓰지 못할 혐오의 댓글들을 볼 때 '평소에 못 받는 주목 한 번 끌어보려 저러겠지' 하며 욱하는 또 다른 나를 주문으로 잠재운다.
한 발 물러서서 거리를 두고 없을지도 모를 저간의 사정을 상상하노라면 어지간하면 감정이 달아오르지 않는다. 화를 내고 주고받았으면 불쾌한 에피소드로 남아 불편했을 일들이 돌아서면 금세 잊힌다. 이렇게 말하면 도라도 닦은 거 같지만 다혈질에 성질 급한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한다.
하지만 요새 뉴스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기사들을 보면 자기 수양의 주문으로도 넘어가지지 않는 일들이 많다. 마냥 방관자처럼 물러서 있기에는 마음이 빚진 듯 무겁고 무기력해진다.
미약하더라도 보탤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쓴다. 가장 약한 사람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중얼거린다.
부디 그러지 말기를
앞으로 그런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