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우 Aug 17. 2023

폭염과 호우 사이

중간 점검

저녁을 먹고 치운 후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집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 후덥지근함을 각오했지만 대기는 한결 느슨해져 있었다. 바닥은 촉촉하게 젖어 있고 제법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분리수거장으로 가는 길 가장자리 화단에는 널따란 잎들이 돌돌 말린 물방울을 떨어뜨릴 듯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호우경보 안내 문자를 받은 것도 같은데 비가 짧게 내리고 그친 모양이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폭염특보', '폭염경보'로 시작되는 안전 재난 문자를 받는 중이다. 30도가 넘어가면 덥기는 마찬가지라 33도니 36도니 찍혀 있는 숫자에도 무감각해졌다. 어차피 한 철인데 에라 모르겠다 에어컨을 노상 켜 놓고 있지만 선선한 자연 바람에는 비할 데가 아니다.


한낮에 밖에 서 있으면 뜨거운 햇빛과 공기에 포위되어 얼마 안 가 무장해제된 상태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툴툴대고 있지만 2주 넘게 길게 내린 비로 맑은 하늘이 그립다고 불평을 늘어놓던 것이 바로 지난달이다.

올해는 유독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날씨가 여름이 제대로 여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가며 '이 정도만 돼도 살겠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올여름에도 몇 번 그 소리를 뱉긴 한 것 같다. 짧게는 반나절이고 기껏해야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더운 기운을 뿜어냈지만 잠시 기온이 내려갔을 때 피부에 와닿는 공기는 탄산수 같았다.


적당한 순간은 금세 지나가고 나머지 시간들은 항상 넘치거나 부족하다.

벌써 2023년의 삼분의 이를 흘려보내며 '딱 좋다' 싶었던 날들이 얼마나 되나 가늠해 본다. 새해에 운동이나 영어 공부 계획을 세우며 거창한 출발을 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들이 있다. 어떤 것은 애면글면 끈을 놓지 않고 있고 어떤 것은 추억처럼 흐릿해져 버렸다.


성공한 이들의 어법을 빌리자면 아직 넉 달이 남아있다. 그 밀도 높은 시간들을 대하자니 돈이 다 빠져나간 통장을 쥐고 월급날을 기다리는 심정이다. 경험상 적당한 온도와 습도는 나에게 늘 야박하니 해와 비를 피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저녁 산책길. 덥지만 하늘은 예쁘고.


*이미지 출처: pixabay, 개인 소장 이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