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할 만한 인물은 많지만 그중 우선순위는 엄마이다. 존경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나는 그 사람처럼 살거나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전제된 것이다. 엄마는 힘든 결혼 생활을 유지했고 우리 남매를 키우기 위해 본인의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텐데 엄마의 약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어도 가정이 굳건하리라는 믿음은 아이를 엇나가게 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은 후 나는 엄마 같은 부모는 될 수 없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첫 아이를 5년 만에 임신한 것은 난임 치료를 권유받고 나서였다. 순리대로 되지 않는다면 아이 없이 살아도 괜찮다, 남편과 대화를 나눈 후 선물처럼 아이가 왔다. 둘째도 쉽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세 번의 유산이 있었고 그 사이에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 안에서 생명이 자라는 임신 기간은 경이로웠지만 출산의 감격은 예상과 달랐다. 오랜 진통 끝에 아이를 낳은 순간 시원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시작은 이제부터였지만 끔찍한 진통이 거짓말같이 사라진 것에 안도할 뿐이었다. 초록색 담요에 싸여 팅팅 부은 얼굴로 찡그리고 악을 쓰고 있는 아기는 생각보다 예쁘지 않아 당황했다.
여자는 기본적으로 트랜스포머라 생각했다. 아이를 가진 것을 안 순간부터 성스러운 감정이 분수처럼 쏟아지며 아이에게 완벽한 보호막을 쳐 줄 몸과 마음이 갖춰진다고. 나의 모성은 나의 젖양과 흡사했다. 엄마가 말하던 사레들릴 만큼 흐르던 젖을 갖지 못한 나는 수유 간격마다 양을 늘리려 즙을 짜듯 유축기를 돌리면서도 아이가 제대로 배를 채우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잠들거나 눈 맞추며 옹알이를 할 때는 사랑스러웠지만 영문을 알 수 없게 몇 시간씩 울어 팔이 떨어질 듯 안고 달랠 때는 미칠 것 같았다. 그때의 감정은 사랑보다는 세상에 나오는 것에 대해 자기 결정권이 없었던 아이에 대해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자의 책임감에 가까웠다.
아이도 나도 사람꼴을 갖추지 못했던 치열했던 육아의 시기를 한 고비 넘기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돌아보니 간절하게 아이를 원했던 마음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모성으로 고군분투하며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진 과정이었다. 아이들은 이제 자신이 알아서 해 보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내가 만든 음식이 아이에게 지치지 않고 운동장을 뛰어다닐 튼튼한 심장과 다리, 햇볕 아래 그을릴지라도 빛나는 피부가 되어 주면 좋겠다. 읽어주는 책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어 호기심에 불을 지피기를 바란다.
다만 주말 저녁 일주일을 마감하며 맥주나 와인 한 잔을 기울이는 시간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아이 전집을 사기 위해 나의 도서 구입 비용을 줄일 생각도 없다.
나중에 딸이 엄마처럼 살겠다거나 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나 아들이 엄마 같은 배우자를 만나겠다는 말을 한다고 상상하면.(오, 제발 그러지 말기를)
살다 보면 경계를 넘거나 침범당하는 일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 아이들이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인으로서 자기 몫을 다하기를 바란다. 만약 작은 욕심을 부려 본다면 나보다는 멀리 시선을 두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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