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프롤로그
나는 스페인 북부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도시에서 요리를 공부했다. 얼마 전 케이블 모 방송에서 백종원과 여러 연예인들이 함께 장사를 하는 프로그램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요리학교에서의 첫날을 아직 기억한다. “자, 이제 손가락을 한번 썰어 볼까요?” 프랑스인 특유의 능글맞은 뉘앙스로 살짝 어눌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선생님이었다. 당신이 외국의 요리학교든, 미슐랭 레스토랑이든, 짜장면 집이든 요리사로서 주방에 들어간 첫날은 아주 높은 확률로 “하루 종일 양파만 썰다 왔네.”라는 말을 뱉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열다섯 남짓의 우리는 두 시간 내내 여섯 박스의 양파를 까고, Juliana(야채를 써는 스타일 중 하나)로 얇게 채 썰어내야 했다. 우리의 서툰 칼질로 인해 주방은 금세 양파가 뿜어내는 알싸한 분자로 가득 찼고, 감당하기 힘든 눈물 콧물과 함께 정확히 3명이 손을 ‘썰었다’. 우여곡절 끝에 준비된 양파는 이후 몇 개의 커다란 냄비에 나뉘어 약간의 올리브 오일과 함께 약불에 올려진다. 우리는 수업을 들으면서 양파가 눌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큰 주걱으로 휘저었다. 약불 위에서 양파가 천천히 즙을 뱉어내고, 그 즙이 증발하기 시작하는 동안 양파는 원래의 단단함을 잃는 동시에 투명하게 바뀐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양파의 매운 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부드럽고 순한 옅은 달콤함을 가진 모습으로 재탄생된다. 이렇게 색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익힌 양파는 스페인 전역, 특히 북부에서 예외 없이 사용되는 가장 기초적인 요리의 재료가 된다. 나는 문득, 어쩌면 요리는 양파를 ‘천천히’ 볶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후 3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석사과정의 마지막 코스로 바르셀로나의 한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거쳤다. 카탈루냐 특유의 여러 가지 식재료의 조합을 기본으로 테크닉을 통한 복합미를 강조하는 식당이었다. 2주에 한 번씩 우리 숙련된 요리사들은 여섯 박스의 양파를 손가락이 비칠 듯이 아주 얇게 썰어 부케 가르니에(파슬리, 월계수 등 여러 향신료들을 묶은 작은 다발)와 계피, 오렌지껍질과 함께 꺼질 듯 말 듯한 약불에 3일을 익혔다. 그렇다. 양파 하나를 볶는데 장장 3일이 걸렸다. 실로 엄청난 양의 양파를 그렇게 볶고 나면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볶는 동안 혹시 누가 훔쳐갔나?” 싶을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양파가 몰래 품고 있던 잠재력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 강렬한 단맛과 응축된 감칠맛으로 승화되고 다채로운 향신료의 풍미를 향수처럼 뿜어낸다. 그렇게 완성시킨 양파를 우리는 La joya(보물)라고 불렀다. 나는 문득, 어쩌면 요리는 양파를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볶음으로써 완성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간은 금이라, 우리는 너무 바쁜 사회다. 최대한 빨리 돈 벌어서, 최대한 빨리 대박 내서, 최대한 빨리 은퇴해야 한다. 빨라서 좋은 것이 통장에 꽂히는 돈이기만 하면 더없이 좋으련만, 그것이 지식과 경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를 우리는 바란다. 분야를 막론하고 “쉽게 배우는”, “1주일 완성”의 이름을 단 책들이 언제나 진열대의 전면에 포진한다. 음식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활어회처럼 날로 먹어도 괜찮은 음식이라면 다행이련만, 시간을 들여 먹어야 하는 것들도 날로 먹으려 든다. 이제 막 사후경직이 풀려 숙성이 시작도 안 된 돼지고기가 “초신선”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김치의 나라에서 잘 익은 김치 맛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절인 배추에 고춧가루 양념을 묻혀 생김치로 먹는 게 보통이다. 김치라기보다 개념적으로 샐러드에 가깝다. 시간이 돈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숙성은 언감생심이다. 그렇게 오늘의 식사는 미식에 채 닿지 못하고, 위장에 잔류한다. 양파 따위를 볶는데 3일이 걸리는 요리를 배우며 세월을 보낸 나 같은 인간은 도대체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가야 하오리까.
어딘가 숨어있던 반항심을 한 토막 굽이굽이 꺼내 ‘어렵게 배우는 컨템퍼러리 가정식’이라 이름 지어본다. 계절에 알맞게 출현하는 제철 식재료를 주인공으로 삼아, 단순한 레시피 소개가 아닌 요리의 원리와 맛의 조화를 바탕으로 매주 하나씩 요리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한국의 식재료와 조리법들을 기본으로 하되 이미 국제성을 획득한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 요리들도 활용함으로써 전통적 한식 밥상의 형태를 넘어 다채로운 가정식을 소개하고 싶다. 반항심에 제목으로 어울리지도 않는 ‘어렵게’라는 단어를 부러 썼음에도 조금 더 솔직하자면 어렵게 쓰고 싶은 마음도, 능력도 부족하다. 다만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나가고, 어렵게 얻은 것은 어렵게 나간다.”라는 개인적 소신의 표현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막상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쌓여가는 토막 요리 지식들과 개인의 창의성이 합쳐지면 언젠가는 필자의 능력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멋진 요리가 독자분들의 손에서 탄생하리라 확신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본다. 나의 렌즈는 요리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세상에 모든 것들을 음식과 연관 지어 본다. 유튜브나 쇼츠 대신 금 같은 시간을 들여 일부러 장황한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외국에서 비싼 돈 들여 배운 요리지식이나 화려한 미식 경험 따위가 전혀 아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세끼의 식사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 시간이 우리 삶에게 주는 의미,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행복을 넘어 요리가 더 나은 사회와 세상을 반드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보물(La joya)을 만들기 위해 3일 동안 양파를 젓던 그때 그 마음으로 매주 찾아뵐 수 있기를 희망하며.
ps. 왜 ‘모던’이 아니라 ‘컨템퍼러리’인가?
- 클래식(고전)과 모던(현대)은 시간의 축에 흐름에 따라 흐르며 모던은 언제나 고전을 향해 간다. 이미 형태, 개념적 대표성을 획득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뚜렷한 스타일을 보인다.
- 컨템퍼러리(동시대)는 모던의 축과 함께하지만 기존의 구체화된 스타일을 넘나들며 다양한 변화와 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가진다.
- 가끔 컨템퍼러리 컨셉을 표방하는 식당을 본다. 우리는 ‘요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강조된 진보적 컨셉’이라고 정의한다.
- 반항심의 일환으로 쓰인 ‘어렵게 배우는’이라는 수식어와 더 잘 어울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