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하루의 저녁이었다.
나는 저녁을 먹은 후 뒷정리를 하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갔다.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지퍼백을 한 손에 들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에 거의 다 달았을 즈음 그 옆에 있는 나무 주변에서 고양이의 '야옹'소리가 들려서 나는 흠칫 놀랐다. 나무 주변에는 풀이 무성했는데 그 안에 고양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워낙 아파트 단지 안에 길 고양이들이 많이 어슬렁 거려서 그런가 보다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을 열자마자 푸더덕 소리와 함께 '야옹' 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크게 그리고 가깝게 들려서 정말로 깜짝 놀랐다. 놀란 마음에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고양이 한 마리가 길 한복판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무 주변에 있는 풀숲에 있다가 튀어올라 길가로 나온 모양이었다. 보통 길 고양이들은 사람이 오면 도망가거나 어디로 숨어버리는데 이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그야말로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며 연신 "야옹~"을 외쳐댔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양이의 몸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고 고양이의 배가 무척이나 홀쭉한 것을 발견했다.
'아, 배가 고프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손에 든 건 음식이 아닌 음식물 쓰레기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양이에게 말을 하게 되었다.
"어쩌지? 이건 음식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라서 너한테 줄 수가 없어. 미안하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조금은 작은 "야옹"소리가 또 들렸다. 고개를 좀 더 들어보니 처음 본 고양이로부터 한 두 발짝 먼 곳에 작은 새끼 고양이가 숨어있다가 몸을 불쑥 내밀고 있었다.
처음 본 고양이의 새끼인 것 같았다. 고양이 두 마리 모두 무척 배가 고파 보였고 큰 고양이는 아마도 자기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고양이를 싫어하지도 않지만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길고양이들에게 음식물을 주시는 주민분들을 보면, '저러다 길 고양이의 개체 수가 너무 많아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도 아닌데 음식과 물을 챙겨주시는 모습에는 참 선한 분들이 많이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길 고양이들에게 내가 직접 음식을 줘 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배가 홀쭉한 고양이를 보니 무척이나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 고양이가 음식 좀 달라는 듯 불쌍한 눈빛으로 새끼 고양이를 뒤로 하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았던가!
손에 가진 것은 음식물 쓰레기 밖에 없던 나는 하는 수 없이 수거통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넣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뒤돌아보며 고양이들을 계속 살펴보았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에게 이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은 고양이들이 분명히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엄마를 빤히 쳐다본 것이라며 어서 가서 음식을 주고 오자고 보챘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마땅히 고양이에게 줄 적당한 음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냉장고를 여기저기 뒤지자 다행히 '맛살'이 하나 보였고 '이거라도 줘야겠다'생각하며 두부가 들어있던 플라스틱 용기에 물도 받아서 집을 나섰다. 물을 주자는 것은 막내아들의 생각이었다. 아이는 '분명히 목도 마를 거니까 물도 가져가야 해요.' 했다.
두 아이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면서 우리는 고양이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가버렸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며 고양이들이 있었던 곳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하지만 역시나 고양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있었던 장소의 주변도 살펴봤지만 고양이들은 없었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서 찾기도 힘들었을뿐더러 한 여름의 저녁이라 모기들이 달려들어 아이들을 물까 봐 더 오래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아이들은 맛살과 물을 고양이가 있었던 곳에 놓아두고 가자고 했지만 고양이들이 잘 찾아서 먹지 않을 경우 아파트 주민들과 청소하시는 분들께 민폐가 될 것이 우려되어 그러지 말자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두 고양이들이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고양이들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이유는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가 절실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기 때문인 것 같다. 그 고양이가 어디에 있든 배고프지 않게 음식을 잘 찾아먹으면서 새끼고양이와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