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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지 Mar 07. 2022

미뤄둔 근무일지

나는 석션이 좋다


1

아빠, 안녕. 한참을 울어낸 딸은 담담한 듯 이야기 하나 그를 담아낸 음성은 미세히 떨린다. 

가슴이 저릿하다. 시선을 모니터로 돌려 정리를 마친 차트만 괜스레 들여다본다.

차라리 이럴 땐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음압실에 틀어박혀 있고 싶다. 

사랑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영혼들을 외면한 채 그저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납작해지다 못해 짜그러진 심전도가 무심하다.

부모와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마저 앗아가는 코로나는 무자비하다.

그렇게 무색한 하루는 씁쓸하게 마무리되어간다. 



2

억제대를 풀어 달라고 외치는 쉰 목소리가 안쓰러운 오후였다. 

할머니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전형적인 치매, 섬망 증세를 표출했으나 

한 귀로 흘려듣자니 모니터 너머로 비치는 처절한 얼굴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녀는 배가 아픈데 어떻게 하냐고 자꾸만 묻는다.

그러면 나 역시 화장실이 없다고, 기저귀에 대변을 보시면 치워드리겠다고 자꾸만 대답한다.

할머니는 이어 어떻게 기저귀에 변을 보냐고 항변한다. 

나는 다시금 어쩔 수 없다, 위험하다는 궤변에 가까운 문장으로 방어한다.


5분이 지났다. 할머니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나 역시 같은 문장을 되풀이한다. 

그렇게 실랑이를 반복 하다보면 소리가 줄어드는 시점이 있는데, 그때 슬금슬금 환자의 곁을 돌면 쾌쾌한 변 냄새가 스멀스멀 풍긴다.결국 참지 못하고 변을 본 것이다. 나는 말없이 커튼을 치고 대변을 치운다. 변의 색과 양, 점도와 특성 등을 확인해 기록한다.


병들었다는 이유로, 혹은 늙었다는 이유로, 또는 정신이 명료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저 인간으로서 존엄하고자 하는 기본적 욕구마저 철저히 묵살되는 중환자실은 신체와 정신 모두의 무덤이다.

그렇게 나는 숱한 몸과 영혼들의 무덤에 파묻혀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안내방송을 계속한다.


"환자분, 대변보시면 치워드릴게요. 어쩔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3

 나의 경우 석션(suction, 가래 흡인)을 좋아한다. (suction에 관한 에피소드를 자주 썼던지라 내 blog를 오래 구독해 준 자들은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가래가 들끓는 기도와 상부 호흡기를 기계의 도움을 받아 청소해 주고 나면 괜스레 내 폐마저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어서인가. 감성적인 연유를 뒤로하고도 산소포화도의 상승과 호흡계통 기능이 상승되는 실제적 결과물이 있기에 더욱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가래 흡인의 과정은 쉽지 않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맞는 position을 취해 줘야 하고, 필요시 가래 배출이 용이한 처치(분무요법, 흉벽 타격요법 등)들을 선행해 주어야 한다. 적당한 준비 후에 장갑을 끼고, 흡인기에 카테터를 연결해 압을 높인다. 생리식염수를 통과시켜 적절히 기능하는지 확인하고, airway나 E/T-tube를 이용해 가래를 뽑기 시작한다. 이때 대개 환자들은 전신을 비틀어가며 반응하기 때문에 간호사들은 남아있는 몸통이나 사지로 환자를 고정, 눌러가며 suction 해야 한다. 움직임이 심하거나, tracheal이 잘 열리지 않거나, 혹은 각기 다른 모양새로 기도까지 닿기가 쉽지 않은 경우는 한참의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한다. 


 어찌저찌 기도에 당도했다고 안도해선 안 된다. 카테터가 삽시간에 기도에서 벗어날 수도 있거니와, 가래의 양상과 산소포화도, 전신 상태를 보면서 흡인 압, 정도, 횟수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suction의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일련의 메커니즘에 동하는 것 같다. 이 복잡다단한 과정이 한 번에 물 흐르듯 이뤄지는 순간, 그 충족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또한 쉬는 시간 줄여가며 짬짬이 suction 해준 환자가 눈에 띄게 호전되면 또 그만큼 뿌듯한 게 없다. 


 반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격으로 기도와 콧구멍이 사정없이 쑤셔진 환자들의 눈과 코는 물 범벅이 된다. 기계가 강한 압으로 흡인하는 동안 점막세포가 뜯겨 출혈이 있기도 하고, 필사적으로 airway를 밀어내려 애쓰다 보니 약해진 잇몸에서도 쉽사리 피가 흐른다. 무엇보다 suction이 가해지는 동안 환자는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과 두려움을 경험한다. 당연히 살고자 하는 본능에 의해 그들은 몸부림을 친다. 멘탈이 명료하지 않거나 치매가 심한 환자들은 나를 벅벅 때리고, 악을 지르고, 울다가도, 연민의 애정을 담아 입과 눈물을 닦아주고 고생했다고 도닥이며 마무리해 주면 하나같이, 어김없이 고맙다고 말한다. 혹은 금세 진정된 모습을 보인다. 방금 나를 죽일 듯이 두들기던 인간은 온데간데없다. '환자, 혹은 보균자'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닿는 순간이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다시금 본질적인 의문이 피어오른다. 인간은 왜 아파야 할까. 세상엔 왜 이리도 아픈 사람이 많을까. 환자 각자는 이 힘겨운 과정을 언제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간호사로 6년째 근무 중이지만 앞으로 몇 십 년을 일해도 이 질문들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거대함에 나는, 그저 무력히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걸까. 


 천만 다행으로, 물론 아니다. 나에게는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미약하지만 성장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가래 냄새와 양상으로 어떤 균, 질환인지 추정할 수 있는, 환자에게 무리가 가지 않고 적절하게 가래를 뽑아낼 수 있는 point들을 알고 있는, 진심 한 조각으로 힘든 과정을 겪는 환자들을 달래고 위로할 수 있는. 그래서 나는 석션이 좋나 보다. 환자들이 짊어진 투병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주고, 수월히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간호사로 숙련되는 과정을 가장 자주, 그리고 선연히 느끼게 하는 처치이기 때문에. 병과 죽음이라는 불수의에 맞설 수 있는 하나의 무기이자 기술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늘도 나는, 환자들의 입을 억지로 벌려가며 열심히 가래를 뽑는다.  



4

암튼.. 공부도, 운동도, 쉬는 것도.. 모조리 제대로 굴러가는 날이 단 하루도 없는 요즘.

워딩에 조심스러운 시국이지만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 매일 환자가 죽는다.

태풍을 껴안은 바다처럼 환자들이 음압실로 밀려 들어온다. Bed는 턱 없이 부족하다.

그들을 돌볼 간호사들은 짜질 수 있는 대로 즙이 짜져 rotation 근무 중이지만 역시 턱도 없다.

그래서 때때로 앞이 캄캄하다. 그저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기를 기원 중이다. 


휴.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좋은 책 읽고 필사하며 소일하고 싶다.

3주치 밀린 일기 쓰는 여유가 정말이지 소중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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