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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01. 2024

등꽃 포스트잇






등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오월이면 서원동 성당 ‘쉼터’ 지붕 너머에서 연보랏빛 향을 피워내는 나무이지요. 하지만 성당을 옮기고 십여 년이 되도록 그곳에 등나무가 자라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날 아침에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평일 아침, 미사가 끝난 시간이었습니다. 교우들 몇이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선 채로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쉼터로 가더군요. 웃음소리가 나를 그녀들 곁으로 당겼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성당을 빠져나갔습니다. 어느 한 사람 내게 눈빛 한 번 주지 않더군요.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사 온 후로 아는 이 하나 없으니 외로웠던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세 고요해졌습니다. 휘영하니 그네들이 있던 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저쪽 건너편 어둡진 자리에 젊은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등나무처럼 배배 마른, 흘부들한 모습이었어요. 앞에는 유모차 한 대가 있고, 네댓 살 사내아이가 땅바닥에 엎드려 개미 쫓기 놀이를 하고 있더군요. 여인의 눈길이 성당 담 너머를 향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허공을 응시한 듯도 했어요. 가끔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리는 등꽃이 그녀를 깨웠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을 후~ 불어 날려 보내고는 유모차 속 아이와 큰아이를 번갈아 보더군요. 목이 마른지 조금씩 물을 마셨어요. 

  흘레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떨어진 등꽃 잎들이 한데 뭉쳐 마당가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녀는 볼펜을 꺼내어 들더니 턱을 괸 채 한참 생각에 잠긴 듯했어요. 큰아이는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았지요. 눈이 마주치자 쪼르르 달려가 엄마 가슴팍을 파고들더니 싱긋 웃음을 보이고는 유모차 속을 들여다보았다가 등나무 둥치를 잡고 뱅뱅 맴을 돌았어요. 여인의 눈길이 또 먼 데를 향했습니다. 애젖한 눈빛이 안갯속 같았지요.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았습니다. 그녀에게 건넬 생각이었어요.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더군요.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는 겁니다. 무거운 침묵 속으로 들어설 용기 말이지요. 망설이다가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한 채로 커피 두 잔을 혼자서 마셔버렸습니다. 하릴없어진 나는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자꾸 그녀가 생각났습니다. 기도실에서 나와 보니 젊은 여인과 아기들은 가버리고 없었어요. 탁자 위에서 종이쪽지 하나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더군요. 

  연보랏빛 포스트잇이 나무 틈에 끼어 있었습니다. 막 등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꽃잎 같았어요. 숫자가 가득 적혀 있었지요. 맨 위 ‘195’이라고 된 숫자에는 여러 번 밑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아래에 월세 60, 이자 20이라고 쓰였더군요. 10, 20, 5, 40, 8, 15, 20이라는 숫자들이 또박또박 이어졌어요. 맨 끝 ‘–3’이라고 쓴 숫자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습니다. 여러 겹의 동글뱅이가 올가미처럼 느껴졌습니다.

  숫자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월세와 이자라는 단어로 보아 ‘195’ 만원의 수입에 대한 지출 내역 같았습니다. 맨 앞의 숫자 ‘10’과 ‘20’은 무엇일까요? 공과금과 육아비일까요? 5만 원은 핸드폰 요금? 40만 원은 생활비? 8만 원은 보험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자면 병치레도 했을 텐데 의료비와 장난감, 부모님께 드릴 용돈과 한 끼 외식비는요?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한 가족의 삶이 달랑 9개의 지출 항목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15만 원과 20만 원은 미래를 위한 보험이거나 적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임금을 쪼개고 쪼갠 숫자들이 그 가정에 산소와 영양분을 실어 나르는 푸른 실핏줄로 읽혔어요.

  비밀 장부를 훔쳐본 느낌이었어요. 나무 틈새에서 팔락이는 포스트잇이 아기 엄마의 몸짓 같았습니다. 등나무 줄기처럼 얽힌 삶의 갈피에 오무락달싹 못하게 끼어버린 몸을 빼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 말예요. 포스트잇을 빼 들고 길가로 달려갔습니다. 꼭 만나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지요. 쌩쌩 달리는 버스뿐, 그녀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애줄없이, 들고 있던 포스트잇을 성경책 갈피에 끼웠습니다. 네잎클로버를 간직할 때처럼 간절했어요. 

  그날 후, 성당에 들어서면 등나무께로 눈길이 갑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 부부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살았을 겁니다. ‘쉼터’ 너머에서 등꽃이 내리기 전에는 등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요. 함께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등나무 둥치가 바싹 말랐더군요. 처음으로 수돗가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다가 밑동에 부어주었습니다. 

  나무가 꽃을 피우는 순간은 극도의 고통에 이를 때라지요. 포스트잇이 그녀의 시간이 밀어 올린 통증 같았어요. 꽃판 속으로 발설되지 못한 말들이 들려옵니다.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볼걸. 아이에게 나이라도 물어볼걸. 이름이라도‧‧‧‧‧‧.’  

  하르르 내리는 꽃잎처럼 하염없는 후회만 내리는 아침, 한 잎 등꽃으로 피어난 연보랏빛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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