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부엌은 낮에도 어둑신하여 사방천지가 분간이 안 되었다. 가마솥도 시렁도 부뚜막도 검은빛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할머니는 쌀을 안치고, 시래깃국을 끓이고, 풋고추를 쪄냈다.
바닥에는 작은 언덕 같은 것이 수십 개 돋아 있어서 긴 산맥이 이어진 것 같았다. 할머니는 밥상을 들고도 가파른 고갯길을 단숨에 넘듯 걸었는데, 어린 나는 치맛자락을 잡고 가면서도 자주 엎어졌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지 않고서는 두 발을 딛고 서 있기조차 힘들어, 발자국을 떼는 일이 두려운 겁쟁이로 자랐다.
길을 걷는 일은, 어둠 속에서 닦이지 않은 길을 넘어지며 한 발짝씩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외할머니의 부엌 바닥에서 배웠다. 그런 날 부엌 천장 귀퉁이에서는 그늘 왕거미 한 마리가 노란 배로 어둠을 밀며 그을음 속을 걸음마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