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이이 휫, 휫, 휫, 휫, 휫, 휫, 휘이~.”
샤워 물소리 속으로 딸아이가 부는 휘파람이 들려온다. 도마질을 하다 말고 귀를 기울인다.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소린지…. 핑그르르 눈물이 돈다.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휘파람을 잘 불었다. 흥겨울 때는 물론이고, 기분이 안 좋을 때도 불었다. 금방 할 수 없는 곤란한 대답도 휘파람이 대신했다. 아이의 몸속에는 작은 휘파람새 한 마리가 사는 것 같았다. 즐거울 때의 소리는 높고 경쾌했고, 걱정이 있을 때는 낮고 길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사흘이 멀다고 치르는 시험에 가슴을 졸이다가도 아이 방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면 안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자주 헤헤거렸다. 휘파람은 내 마음까지 치료하는 영약靈藥이었다.
딸애가 부는 휘파람을 처음 들었을 때는 놀라면서도 내심 손뼉을 쳤다. 아이가 연습을 많이 해서 더 좋은 소리를 내기를 바랐다. 휘파람은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다. 197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키가 큰 여가수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휘파람을 부세요.’라고 노래하더니 대번에 히트곡이 되었다. 집안일을 도와주던 향순 언니가 듣고 “호요오오, 호오오잇.” 하고 소리를 내면 할아버지는 금방 목울대 아래에서 헛기침을 끌어올렸다. ‘딸아가 휘파람을 불모 안 되는 기다.’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던지 그 노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지곡이 되었고, 여가수는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여자아이에게는 왜 휘파람을 불지 못하게 했을까? 여자가 목소리를 내면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으름장이었을까. 여자에게는 남편과 자식을 건사하며 살아가는 일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달램이었을까. 꼬드김이었을까. 며칠 전에 티브이에서 그 여가수를 보았다. 그녀는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전문직 여성이 되어 있었다.
딸아이는 하고 싶던 공부를 포기하고 원치 않은 전공을 택해야 했다. 나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가정주부로만 살아왔기에 딸은 어디 한 자리에 존재를 심고 꽃 피우며 살기를 바랐다. 우여곡절 끝에 내 뜻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나도 아이도 혹독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차선으로 선택한 전공은 아이에게서 꿈과 함께 휘파람 소리를 앗아가 버렸다. 때맞춰 찾아온 나의 갱년기는 딸아이와 나를 소소리바람 앞에 세웠다. 아이는 언어를 바꾸었다. 아이가 쓰는 말을 해독할 수 없었다.
몇 년 전에 딸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첫날부터 우리는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는 달리, 딸아이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좋아해서 들어갔다 하면 퇴장 시간이 되어서야 나왔다. 나는 먼저 나와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황새목이 되곤 했다.
여행 막바지쯤이었다. 아침을 먹으며 여행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자마자 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제 갈 길로 가 버렸다. 따라가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나도 앵돌아섰다. 백화점 앞 의자에 앉아서 우두커니 행인들을 보고 있자니 괘씸하고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를 키우던 때가 떠올랐다.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던 나는 딸에게 교양을 익히게 한답시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며 바이올린을 배우게 했고, 틈나는 대로 음악회며 전람회장을 찾아다니게 했다. 그러니 다 내 탓이었다.
모차르트 생가에 간 날이었다. 문 여는 시간을 기다려 들어갔다가 다 보고 나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어서 ‘마술피리’ 공연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때 같으면 앵하니 나와버렸을 텐데 애줄없었다. 하늘에 별이 총총해서야 나왔다. 초콜릿 가게가 즐비한 작은 골목길을 걸어 나올 때였다. 딸아이 입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휘파람새 한 마리가 잘차흐 Salzach 강 마카르트 Makart 다리 위를 날아오르는 듯했다.
그날, 밤이 깊도록 긴 이야기를 했다. 수컷만이 휘파람을 불 수 있도록 허락된 세상에 대한 엄마 나름의 도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수컷들도 매력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피나는 연습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도 휘파람을 연습했지만, 목청이 다 성장한 다음에는 암만 연습해도 잘 불 수 없다는 걸 경험했노라고, 그래서 네겐 어려서부터 호된 훈련을 시켰던 거라고, 잘 걸어와 줘서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그 기억이 새겨졌던가 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 아이는 ‘마술피리’를 휘파람으로 곧잘 불었다.
한 달 후면 딸아이가 결혼한다. 신혼집을 구하다 온 아이는 궁금해하는 나를 세워 두고 샤워부터 하겠다며 목욕탕으로 뛰어 들어갔다.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느라 며칠째 다니면서도 힘든 기색이라고는 없다. 시집을 간다니 기쁘기 그지없지만 걱정도 된다. 제 손으로 제대로 된 밥 한 번 지어보지 못했다. 빨래며 청소며 요리며 다 어찌할지.
샤워가 끝났나 보다.
“휘이 휘휘 휘이 휘휘 휘휘휘~.”
“Don’t worry, Be happy~~. Don’t worry, Be happy~~”*
노랫말 사이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가 어느 때보다 청아하다. 성숙한 암새다. 아이는 벌써 새로운 둥지를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 바비 맥퍼린 Bobby McFerrin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