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꼭 그를 만나러 가야 했다.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벨이 한참 울리도록 응답이 없었다.
“이 번호는 사용하지 않는 전화이오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초조하게 안부를 물었다. 중환자실 간호사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조심스레 꽃을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시간을 끌기에 오늘도 안 되겠구나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괜찮다는 대답이다. 절대로 안 된다더니 의아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니 이제는 먹거리를 준비해 갈 필요가 없다. 만복집 굴짬뽕만 찾더니 한 달 전에는 꽃을 갖다 달라고 했다. 오랜 병원 생활을 한 그가 병실에 꽃 반입이 금지된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마침 베란다에 핀 부추꽃 화분을 쇼핑백에 담아 들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처음 그를 만난 곳은 영등포역 뒤편 공터에서였다. 노숙인들을 위한 밥차가 오는 날을 빼고는 낮에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후미진 곳이었다. 그즈음 나는 매일 그곳을 거쳐 인근의 무료 병원으로 봉사를 다녔다. ‘요셉의원’이라는 곳이었다. 빈터에는 오래전에 집을 나온 듯한 가재도구들과 수명을 다한 자동차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노숙인들은 그 사이에서 처분만을 기다리는 폐기물처럼 방치되었다. 고철 더미에서 부서져 내린 녹이 땅과 땅 위의 것들을 붉게 물들였다. ‘길거리 사람들’의 마음에서도 산화된 시간의 상처가 붉은 녹의 빛깔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늘 벌겠다.
저물녘이면 살풍경이 더했다. 취기가 오른 노숙인들은 노을빛 속에서 자주 패악을 부렸다. 진흙밭에 빠져버린 타이어 바퀴처럼, 스스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인생이었다. 세상을 향한 주먹질이었을까. 해넘이 께면 그들은 수렁 속에서 본능처럼 사지를 버둥거렸다. 가끔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헛발질 소리에 더 깊어지는 공허였다. 파출소는 그들을 먼발치에서 ‘순찰 중’일 뿐이었다.
볕이 내리는 소리뿐, 칠월 한낮의 공터는 적막이었다. 노숙인들은 땅바닥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듯 움직임이 없었다.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가 뙤약볕에 말라붙은 곤충의 애벌레처럼. 아무도 돌보지 않은 부추꽃만이 시든 잎 사이로 몇 송이 꽃을 가난하게 피워 올리며 공터에 서글픈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사람 역시 살아 있는 이래야 단 한 사람, 그뿐이었지 싶다. 그는 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공터 도린곁에서 무언가를 읽었다. 그 모습이 시붉은 흙더미에서 저 혼자 푸른 목을 빼 올리며 피어나는 부추꽃 같았다.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요셉의원 현관에서였다. 문을 열었을 때 한눈에 알아보았다. 말초신경 비대증으로 지나치게 돌출된 눈과 입술, 하얗게 변한 왼쪽 눈은 한 번만 보아도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병원에서 경비원이 되어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무의탁 환자들에게 진료 순서를 정하는 일로 자주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가끔 내 방으로 우편물을 전해주러 왔다가 화병에 꽂힌 꽃을 몇 송이씩 빼 들고 가서는 현관에 꽂아두곤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공터에 피었더라며 소주병에 부추꽃을 담아 와서는 늦도록 고향 집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떠나왔다고 했다. 마당에 부추꽃이 하얗게 피어나던 날이었다. 형제가 많았지만, 타고난 장애 탓에 마음을 닫고 외톨이로 살았다. 객지에서는 사람이 더 그리웠지만 늘 외면당했다. 돈을 벌면 마음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돈 되는 일이라면 마다치 않고 뜬벌이를 했다. 과연, 돈을 벌고 나니 사람이 다가왔다. 여자도 생겼다. 이내 마음을 주었으나 다시 혼자가 되었고, 방황 끝에 병을 얻었다.
폭설이 내린 어느 해 겨울, 혜화동 지하철 역사에 쓰러져 있던 그에게 은인이 다가왔다. 요셉의원에서 봉사하는 의사였다. 병원을 소개받고 문 앞까지 갔지만,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발길을 돌렸다. 길거리에는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근처 시설에서 밥도 주었다. 자연스레 ‘길거리 사람’이 되어 살던 이듬해 어느 날, 그 의사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끌려오다시피 병원으로 왔다. 치료를 받으면서 감사했다.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경비 일을 받았고, 병이 악화하여 큰 병원으로 떠나던 날까지 문지기로 성실하게 살았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독실로 옮겨져 있었다. 복도 맨 끝 방, 침대에 웅크린 그가 보였다. 한 눈에도 임종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손을 잡아도 허공만 볼 뿐이었다. 처음 만나 악수를 청했을 때, 여자 손은 처음이라며 농을 걸던 일이 떠올랐다. 병원으로 오기 전, 간호사가 꽃을 가져올 수 있도록 허락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생각이 엉키기 시작했다. 소용없게 된 꽃을 들고 뒤늦게야 찾아오다니. 쇼핑백 속의 화분을 보며 나는 망설였다. 꽃을 건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삶과 죽음의 문턱을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꽃을 내밀다니,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중에도 나는 화분을 그에게로 가져가고 있었다. 진땀이 났다. 어느새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화분을 놓고 이렇게 말해버렸다.
“부추꽃이 참 예쁘게 피었지요? 꽃 가져다 달라고 떼쓰시더니‧‧‧‧‧‧.”
궁색한 변명이었다. 그런데 기적이었을 게다. 딱 한 번 그의 눈길이 꽃을 향했던 것은. 아주 짧은 시간, 감긴 눈꺼풀이 부추꽃 꽃잎처럼 파르르 떨렸다.
휙, 한줄기 저녁 바람이 지나간다. 뜨거운 여름날, 해가 진 공터에 불던 흙바람 냄새가 난다. 그도 지금쯤이면 영등포역 뒤쪽 공터에 피어나던 부추꽃을 볼 수 있으려나. 칠월이면 부추꽃이 하얗게 피었다던 고향 집 마당을 찾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