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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01. 2024

흰빛





뙤약볕이 내리는 절두산 성지에 섬초롱꽃이 피었다. 지나던 순례객이 던진 말이 크게 들려왔다.

“그래‧‧‧‧‧‧. 지금은 섬초롱꽃이 필 때지.”

그녀도 바다가 고향이었을까? 성전으로 향하는 언덕을 오르면서도 고개를 돌려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흰 초롱 속에 얼굴을 감추고,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깐 모습에서 오래전의 풍경 한 장이 겹쳐졌다. 꽃에 다가가 귀엣말을 하고 싶었다. 

“나도 섬에서 왔단다.”     

섬의 여름은 무척이나 지리한 날들이었다. 배들은 본격적인 여름에 이르면 어장을 접어야 했다. 몸이 뜨거워진 바다는 속엣것들을 밀어냈다. 물고기들은 숨 쉴 곳을 찾아 먼바다로 떠났고, 고기잡이배들은 축항에 포로로 묶였다. 뱃사람들은 몸에 리듬을 타고났는지 출렁이는 바다 위에 있을 때라야 중심을 잡았다. 배에서 내리면 곧장 멀미를 앓았다. 섬의 흙은 근육질 사내들의 뿌리를 보듬기에는 너무 얕았다. 파도에 심느라 깊이 내린 뿌리였다. 배를 수리하고 어구를 손질하는 정도로는 남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을까. 뭍으로 나가서는 며칠씩 기별이 없기 일쑤였다. 그러면 섬은 바다를 떠난 물고기처럼 할딱거렸다. 

숨이 가빠지면 아낙들은 갱변을 헤집어 조개를 잡던 호미를 찾아들고 섬 꼭대기로 갔다. ‘산밭’이라 부르던, 돌산을 일구어 만든 밭이었다. 호미를 넣으면 흙은 야멸차게 밀어냈다. 아낙들은 포달을 부리는 땅을 어르고 달래며 다독였다. 그러면 품은 것이라고는  없을 듯한 산밭도 간신히 품을 열어 풀뿌리 몇 개와 남새 몇 이파리를 내어주었다. 흙 반 자갈 반인 돌밭에서 얻은 수확물이라야 작고 못난 것뿐이었지만, 섬은 아낙들이 거두어 온 볼품없는 수확물로 여름을 연명해 갔다.

섬의 여름은 참으로 가난했다. 물은 더없이 귀했다. 뒷산 바위틈에서 눈물처럼 똑똑 떨어지는 샘물을 간신히 긁어모아 이고 온 한 동이 물로 온 식구가 하루를 났다. 마른장마가 시작되면 집집 마당에서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미역과 파래, 우뭇가사리들이 햇살 속에서 제 속의 수분을 뺐다. 말라가는 해초 줄기처럼 생명 있는 것들은 살아남기 위해 바싹 몸을 줄여야 했다. 어패류도 마찬가지였다. 빈속을 딱딱한 껍질로 무장한 채 입을 꼭 다물었다. 속을 비우기로 치면 섬 아낙네들을 따를 바 아니었다. 아낙들은 물로 둘러싸인 섬에 살면서도 늘 목이 말랐다. 

바다는 하얀 띠를 그리며 섬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흰 끈으로 이마를 동여매고서 열병을 참아내는 섬처럼, 여인들은 질끈 묶은 머릿수건 하나로 섬을 향해 내리쬐는 뙤약볕을 통째 받아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씻어내리며 이제 막 흰 꽃송이를 달기 시작한 목화의 북을 돋우거나, 쓰러져 내리는 애콩나무 줄기를 보듬어 세우며 힘이 다하여 주저앉고 싶어지는 자신들을 스스로 둥개질했다. 그 몸짓은 하도 가냘파서 멀리서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한 그루 깻대 같았다. 

종일토록 아낙들의 그림자가 머무르지 않는 섬 집 마당가에는 소풀꽃*이 배고프게 자라며 나그네 한 명 찾아오지 않는 빈집을 지켰다. 집 앞바다를 건너는 도선渡船의 기계 소리는 양철지붕을 뜨겁게 달구며 마당 한가운데에 하얀 적막을 떨구어 놓고 갔다. 

섬은 처연한 흰빛이었다. 그 색은 더는 내어줄 것이라고는 없는 가난의 색이었고,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절망의 색이었다. 한 줌의 흙에 가족의 양식을 심어야 하는 목숨의 색이자, 언제 또 태풍이 불어와서 걷어가 버릴지 몰라 지붕에 한 장의 양철을 더 얹는 두려움의 색이었다. 그러나 영원한 가난과 절망, 두려움일 것만 같은 흰빛도 섬의 아낙네들로 하여 속성을 바꿀 수 있었다. 추운 살림에도 이웃에게 덮을 것을 주는 온정의 색이었고, 지독한 고난 속에서도 우뚝우뚝 일어서는 오뚝이의 색이었으며,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하룻밤이면 잊어버리는 용서의 색이었다.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생을 한여름의 산밭 고랑에 엎드려 고스란히 받아내는 순종의 색이었다. 

섬은 가난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격렬히 몸을 털었다. 그래도 남정네의 굳은 가슴에는 닿지 못하는 빈 아우성이었다. 섬 집 돌담, 담쟁이넝쿨을 헤집고 달리던 도마뱀의 꼬리 짓만큼이나 공허한 몸짓이었다. 도마뱀이 사라져 간 곳을 생각하며 돌담에 턱을 괴고 있노라면 산밭 쪽으로 머리가 돌려지곤 했다. 어머니는 해가 이슥해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발꿈치를 들어 산밭을 올려다보면 섬길을 따라 섬초롱꽃이 하얗게 피어났다. 희디흰 그 적적한 팔월의 영혼 속으로 생기를 불어넣으며 실한 꽃대를 세우는 것이었다. 한 번 꽃망울을 연 꽃은 밤에도 꽃잎을 접는 일 없이 등불처럼 피어 있었다.

바다 위로 달이 떠오르면 아낙네들이 산밭에서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자박자박‧‧‧‧‧‧.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기쁨도 잠시, 치매에 걸린 증조할머니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 때 할머니는 똥을 싸놓고 손주며느리인 나의 엄마를 애절히 찾았다. “용현아야! 용현아야!” 어머니는 마루에 한 번 걸터앉아보지도 못하고 할머니가 싼 똥을 치우고 씻겼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 아침밥을 지을 물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제 물을 길으러 갔다. ‘뒷등 새미’로 가는 길은 산밭을 지나고 당산나무를 지나고 묏등을 지나야 했다. 

겨우 스물네댓의 어머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린 내 손을 꼭 잡고 걸으면 섬초롱꽃이 밤길을 밝혀주었다. 한참을 기다려서 한 양동이 물을 길어 집으로 오면 할머니는 이제는 배가 고프다며 또 ‘용현아’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는 물동이를 내려놓자마자 풀무질하여 밥을 지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했지만, 나는 툇마루에 앉아 어머니를 지켰다. 졸린 눈을 비비다 보면 뽀얀 쌀밥이 담긴 밥상을 들고 문지방을 넘어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흰 치맛자락이 보였다. 또 얼마를 졸았을까. 마당 한가운데 빨랫줄에 할머니의 옷이 하얗게 널리면 이젠 어머니가 잠을 자러 갈 수 있겠다는 안도감으로 방에 들곤 했다. 

그런 날 밤이면 자주 바다를 건너는 꿈을 꾸었다. 불쌍한 어머니가 더는 고생하지 않아도 될 뭍으로 가는 하얀 꿈을. 





섬초롱꽃이 하얗게 피어나던 밤이었다.     

*소풀꽃; 부추꽃의 경상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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