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앞에 서 있다. 지금 막 들에서 돌아와 지친 표정으로 식탁에 둘러앉은 그림 속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유년 시절 외가의 저녁이 떠오른다.
긴 여름 하루를 들에서 보낸 외가 식구들은 밤이 되어서야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들에서 종일 땅을 일궈 본 사람이라면 잡초를 뽑고 물을 대고 열매를 키워내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들판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등에 진 지게가 여북이나 무거웠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희미한 램프 등 아래에서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감자를 집어 드는 그림 속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투박한 손에서 요령이라고는 부릴 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어린 여름날 저녁,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끄트머리가 닳은 얇은 놋숟가락마저 무겁게 들어 올리던 외할머니의 손을 마주한다. 할머니의 헐벗은 손, 옹이 박힌 손바닥과 삭정이 같던 손가락에 간직되어 있던 삶을 바라본다. 진실한 아름다움을 색으로 나타낸다면 아마도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싯누런 손톱 밑에 있던 짙은 갈색 흙빛의 색깔일 거다. 흙 때 낀 할머니의 손톱에서는 언제나 금방 땅을 쟁기질한 냄새가 났다.
외할머니는 서른이 되기 전에 과수댁이 되었다. 딸 셋을 낳고 첫 사내아이가 태어난 지 다섯 달째 되던 해 여름 어느 초어스름, 박꽃이 꽃잎을 열 때쯤이었다고 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이 외가가 있던 용현 윗마을까지 내려왔다는 소문이 날아오자 외출에서 급히 돌아온 외할아버지는 잠시 피난을 갔다 오겠다며 선걸음에 집을 나섰단다. 그리 오랜 걸음일 줄 알았을까. 할머니는 사립문을 나서던 할아버지의 양복저고리 안주머니에 생쌀 몇 줌을 넣어 주었다.
수십 번의 여름이 오갔지만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어린 남매들을 키워내느라 억척스레 땅을 일구었다. 종종걸음치던 농사일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의 끝자락에 들면 더 바빠졌다. 새벽 일찍 들에 나가 하루를 보내고 땅거미가 내려서야 돌아왔다. 고삐를 잡고 앞서가는 할머니나 달구지를 끌고 지친 걸음으로 뒤따르는 소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들에서 돌아오면 할머니는 외양간으로 갔다. 소는 바닥 짚더미에 기진하듯 누웠다. 여물통에 쇠죽을 부어 주어도 멀거니 바라볼 뿐이었다. 등을 쓰다듬으면, 헛발질을 몇 번이나 한 다음에야 간신히 몸을 가누고 일어났다. 느릿느릿 입맛 없는 여물을 먹는 동안 할머니도 겸상하듯 서 있다가 구유가 다 비워지면 그제야 닭장으로 갔다. 모이통을 들고 들어서면 횃대에 있던 닭들이 날아 내려오느라 시끌벅적했다. 할머니는 아직 온기가 남은 달걀을 꺼내어 들고 나오기가 미안했던 모양이다. 닭장 문을 닫고 나오며 말하곤 했다. “오야 오야, 마이 무라이.” 종일 빈집을 지키며 고단하기는 ‘메리’도 매한가지였지만 순둥이는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꼬리만 흔들었다.
짐승에게 밥을 주고 나면 그제야 저녁밥을 지었다. 탁탁, 청솔가지 분지르는 소리에 매캐한 냄새가 번지면 밤하늘 속으로 하얀 연기가 고물고물 피어올랐다. 밥물 끓어 넘치는 내음 속에 길두 아재가 피운 쑥대 모깃불이 마당 가운데에 지펴지고, 댓 발치 거리에 멍석이 깔렸다. 개다리소반이 놓이고 호롱불이 켜지고 따그락따그락 수저 놓이는 소리가 들리면 메리는 또르르 꼬리를 말아 올리고서 잰걸음으로 뱅뱅 마당귀를 돌았다. 갓 지어낸 밥과 열무김치, 밀가루를 묻혀 밥 위에서 쪄낸 풋고추찜과 애호박나물, 가지 냉국이 놓인 밥상이었지만 밤벌레를 쫓는 팔놀림과 그 손짓에 놀라 달아나는 모깃소리뿐, 사람의 말소리라고는 들리지 않았다. 달각달각 숟가락질 소리만 밥상머리를 채우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밥상을 비추던 호롱불처럼 가물가물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우물가로 갔다. 그릇 부시는 소리가 그치고, 할머니의 목욕물 소리가 집안을 휘감으면 외양간 지붕이 하야니 수런거렸다. 박나물을 좋아했다던 할아버지를 기려 할머니가 봄에 쇠마구 옆 거름구덩이에 묻은 박씨가 피운 꽃이었다. 박나무는 여름이면 무성히 자라 지붕을 덮었지만, 낮에는 숨죽인 듯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꽃잎을 열었다. 집 떠나던 날 할아버지에게 쌀을 싸서 건넸다던 무명천인가, 꼬개꼬개 접은 연정인가. 가없는 그리움인 양, 박꽃은 달 없는 밤에도 비 내리는 밤에도 속절없이 피었다.
여름이면 할머니는 마구간 쪽으로 난 여닫이문을 활짝 열어젖히고서 벽에 등을 붙이고 잤다. 모로 누운 할머니 가슴팍에 안겨 나도 팔베개를 하고 누우면 열린 문 사이로 박꽃이 피는 외양간 지붕이 들어왔다. 맞은편 벽 사진틀 속에서는 신사복을 입은 젊은 외할아버지가 동그란 검정 안경테 너머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찌르르르 찌르르 할머니의 심사인 양 풀벌레 소리는 시나브로 깊어가고, 박꽃은 하염없이 피어나고, 우우웅 박꽃을 찾아 날아든 박각시** 소리에 집터가 술렁였다.
외할아버지의 혼령이라도 다녀갔던 걸까. 오랜 이야기를 나누는지 할머니는 긴 잠꼬대를 하며 밤새 몸을 뒤척였다. 저고리 앞섶은 절로 풀어지고, 외양간 지붕 위 박 넌출에서는 오종종히 박이 맺혀갔을 것이다. 외양간의 소와 닭장의 닭들은 깊은 잠에 빠졌는지 고요했고, 보통 때는 달빛 그림자조차도 얼씬 못하게 하던 극성스러운 메리 녀석도 그런 날 밤엔 웬일인지 죽담 아래에서 기척도 없었다.
*백석의 시(詩)에서 빌림
**박각싯과의 곤충. 해 질 녘에 나와 꽃을 찾아다니며 꽃꿀을 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