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아동기를 지나면서 가져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장래희망 란을 채울 일이 없어서인지, 어떤 것이 되고 싶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때도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은 있었지만,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과 사유들은 쉽게 흩어졌습니다.
늘 어떤 마음이건 쉽게 잊을 수 있었지만, 후회들은 오랫동안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과거를 반추하며 “이렇게 하면 좋았을 걸.” ,” 이러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들은 요즘도 자기 전 혹은 음주 후 집으로 분주히 귀가하면서 즐기는 일입니다. 적당한 취미가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어쩌면 이런 가정법으로 시작하는 공상과 후회들이 오랜 취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습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만, 후회의 습관에 평균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후회의 일에 집중을 해보니 ‘~~ 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라는 말은 ‘~~ 하지 않았을 내가 되고 싶었다.’로 등치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회의 일은 다양합니다. 그 깊이와 넓이에서 가능성의 우주와 같습니다. 후회를 시작하고자 한다면 어느 곳이건 가능하기 때문에, 확장성의 끝이 없습니다. 최근 재밌게 본 영화들 중 몇은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요새 유행으로는 이런 세계를 ‘멀티버스’라고 부릅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결정의 가능성들이 각각의 우주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후회의 아마추어 달인인 내게 매혹적인 설정입니다. 평소 공상으로 가장 자주 하는 설정이 실사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후회의 설정 중 성인이 되고 나서 자주 하는 것은 ‘어제 술을 좀 덜 마실 걸’ 이란 명제입니다. 이 말의 본 의미는 술을 덜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취기에 겨워 나타난 행동들에 찍혀야 했던 방점들이 생략되어 술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렇게 취해 추태를 부리지 않는 자신이 되었었다면’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추태의 범주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행위들이 들어있습니다. 이 바람은 거의 이뤄지기 직전에 무너지곤 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이유는 ‘오늘은 좀 더 마셔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미 취기에 잠식당한 낙관입니다. 낙관은 항상 쉽게 배반합니다.
숙취의 후회들보다 더 많이 나를 괴롭히는 일은 ‘학업을 이렇게까지 망치지 말 걸’입니다. 청소년기부터 속했던 모든 학술기관에서 심각한 부진을 겪었습니다. 이 후회도 낙관에서 시작합니다. 경험해 본 바로는 어떤 교육기관이건, 구성원들 중 학업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같은 동질감으로 쉽게 뭉칩니다. 제 낙관의 착오는 학업을 등한시하는 하한선이 남들과 유달리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 과목은 어려우니 다 같이 망쳐도 괜찮다던 친구들은 막상 자신들과 저의 실제 성과를 비교하게 됐을 때, 예상치 못한 재난을 마주한 사람처럼 어색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후에도 후회의 강력한 성질인 반복을 성실히 행하여, 각 과목들의 부진이 심각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이 후회도 결국 학업에서 원하는 성취를 얻었다면 이라는 상상의 기반이 됩니다.
나의 후회와 상상들, 이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 되고 싶었던 나는 결국 그 모든 상상의 반대에 서 있습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바람과 후회의 총합인 것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이렇지 않았다면”의 총합입니다.
이것이 반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압니다. 이것들은 후회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후회는 폭력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리는 일에 다르지 않습니다. 공격을 그만두어야 할 때, 방향을 안으로 돌려 감추는 것은 자신의 세상을 안팎으로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 후회들은 이뤄지지 못한 것들을 반추하며 지금 서있는 자리를 허무하게 했습니다. 허무하게 스러진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면, 늘 생존이 위태했습니다.
멀티버스 영화를 좋아합니다. 마블 시리즈나 양자경의 멀티버스 영화에서 다루는 희망의 가능성 우주는 늘 좋았습니다. 그런 세계는 어떤 것이 되고 싶었던 나와 모든 사람들의 상상의 총합 같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했을 우주를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는 너무도 허무합니다. 양자경의 멀티버스에서 에드먼드(조너선 케 콴)는 허무로 떨어지는 에블린(양자경) 앞에 서서 다정하고 낙관적인 태도로 싸우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낙오될 수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다정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멀티버스가 조금은 더 믿을 만한 낙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후회로 점철된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결정들에 앞서 세계가 지금보다 안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우주가 내가 바라는 나와 내 친구들, 우리 동료들이 구성하는 각자의 우주가 존재해도 되는 멀티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