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나의 고향
우리 오래 증오하자.
전주를 오래 싫어했다.
난 전주에서 태어나서 대학 진학 전까지 전주에서 살았다. 이사를 자주 다니긴 했지만, 전주 밖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고 그전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내가 사는 이 생활권 밖에서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난 이 고향이 싫었다. 내가 살면서 본 모든 파렴치한 사람, 착취자들, 비겁한 이들, 차별자들, 쉽게 말을 바꾸고 배신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 침묵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결국 이곳이 나의 창백한 푸른 점이었다. 유인 우주선이 푸른 점의 중력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인생도 이곳의 권역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대학 진학 후 여러 번 부진과 실패를 통해 전주로 돌아왔으니, 산맥 안쪽의 아르네 신세로 땅에 매일 신탁을 받은 것처럼 됐다.
이 도시를 싫어한 이유중에 하나는 이곳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서비스 종료되고, 버려져서 방치된 게임 맵처럼 변함없는 오래된 동네의 길과 모습은 내게 마치 크기만 큰 노인정처럼 보였다. 언젠가부터 이런 오래된 모습이 역사와 지속가능성, 정감 있는 옛 모습 같은 마케팅 슬로건으로 힘입어서 자존감을 채우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싫었다. 낡은 물건 고쳐서 잘 써보라는 식의 말 같았다.
사실 전주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본 30년은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경제 성장기였고, 변치 않는 동네란 것은 없었다. 시간만 지나도 어른들은 늙고, 아이들은 성장한다. 그런데도 이곳을 계속 싫어하는 마음이 지치지도 않고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내 고향이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한 곳은 전주가 아니라, 내 고향이다. 내가 사는 곳, 살았던 곳, 나의 가족들, 내가 속한 장소, 사람들. 파렴치하고, 비겁하고, 뻔뻔하고, 이기적인 나의 모습을 한 사람들을 싫어했다. 내 마음속에 하해와 같은 증오가 넘쳐서 그들의 발치를 조금 적셨다. 타인이 아닌 나를 혐오하는 책임은 나에게만 있어서 멈출 필요도, 적당히 할 선도 없었다.
내가 싫어했던 전주는 그냥 동네다. 특별할 것도 없고, 그래서 특별하게 악하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동네다. 악의 평범성도 여기선 너무 평범해서 조용히 묻혀가는 무던함이다. 싫어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무심히 길을 지난다. 내가 그들에게 일일이 혐오의 명찰을 붙일 필요도 없는 사람들.
여러 일들이 있었어서, 결국 이곳에서 오래 살 것 같다. 화해하지 않는 마음과 한 방을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짧게 지나진 못할 것 같다. 마음도 사람도 아직 이 방과 동네를 떠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