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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은 Feb 03. 2023

아픔을 아는 사람과 사람

길을 찾는 낯선 사람들

S보드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발을 앞, 뒤로 움직이면 S자 모양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보드였다.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호기심에 도전해 본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타보지도 못하고 넘어져서 꼬리뼈를 돌부리에 찍었었다. 아마 중심 잡는 연습을 하다가 넘어졌던 것 같다. 나는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소리도 못 낼 만큼 아팠다. 그때의 고통으로는 이대로 영영 걷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며 절망을 했었다. 그 뒤로 손잡이 없는 탈 것에 호기심을 깔끔하게 접게 되었다.


손가락이 건조하면 손톱 주변에 피부가 일어난다. 까슬거리는게 신경 쓰여서 용감하게 뜯었던 적이 있었다. 돌이킬 수 없이 뜯어진 자리에 붉은 피가 맺혔다가 흘렀다. 손톱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을 아리고 욱신거리는 고통으로 고생을 했었다. 그 뒤로 손톱깎이가 없으면 그냥 꾹꾹 눌러서 붙여 놓는다. 손톱깎이를 찾을 때까지.


한 번 다쳐보면 조심하게 된다. 어디를 다쳐도 그때 느꼈던 고통을 블루투스 당하는 기분으로. 종이에 베이면 종이 근처에만 가도 소름이 돋고 보드를 보면 보드 근처에만 가도 꼬리뼈가 아리다. 고통을 기억하니까, 아플 걸 아니까. 조심하고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도 다를 게 없었다. 한 번 다쳐 봤던 마음은 근처에 가지 않고도 조심하며 몸을 사린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시 또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안전하기 위해. 매해 업데이트 되는 내비게이션처럼 내게도 복잡하고 세밀한 지표가 새로고침 되는 중이다.  


당신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지, 내가 어떤 상처를 갖고 있는지 모르니까, 낯선 우리는 서슴없이 다가가서 이건 뭐야? 하고 묻곤 한다. 상처인지 모르고 묻는 너와,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 우리는 서로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준비된 다음 주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낯설지만 우리는 남으로 분리되지 않고 우리로 묶여서 서로의 애정을 우려내는 중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가 괜찮은 사람이란 것을. 그래서 이 관계가 귀하다는 것을. 같은 결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깊이를 더하는 사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친해지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방지턱을 조심해서 넘고 안전표지판을 몇 번이나 지나, 서로에게 닿기 위해 길을 찾는 일.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일. 익숙한 길이 될 때까지 긴장하는 사이. 상처받은 마음에 믿음을 쌓아주는 일. 아무리 우리가 돼도 연고처럼 상처를 낫게 하지는 못하는 일. 덧나지 않게 조심하는 사이.


[보호구역입니다. 속도를 줄여주세요.]


속도를 지키는 거다. 진입금지 구역에서 호기심에 직진하지 않는 마음. 보호구역에서 천천히 좌, 우를 살피며 들어오는 다정. 속도를 맞춰 가다 보면 길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고, 찾기 쉬웠다고 안심시키는 말투. 우리가 되기 위해 당신의 마음속의 내비게이션을 켜 나를 안내해 준다면 나는 기꺼이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똑같은 상처도 없을 테니까. 그런 상처를 가졌구나 이해받고 이해하고. 내가 가진 반창고를 건네고 당신이 준 반창고를 붙이는 그런 사이. 어려워서 천천히 깊어지는 우리 사이.


늦어도, 느려도 계속 멈추지 않고 와 줘. 나도 길을 찾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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