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돌을 봤어
잘 다듬어진 커다란 돌
어딘가 부서진,
어딘가 완전하지 못한
대리석이 있었어
의자처럼 생겼길래 앉았지
뭐였을까, 뭐였을까
시간이 지나서 그늘이 드리웠어
올려다보니 나무가 한 그루 있더라
아, 집이었나 보다
그늘이 사라진 자리에 볕이 내렸어
따뜻하다, 노곤노곤하다 그러다가
엉덩이에 묻은 나무 조각을 봤어
벤치였나 보다.
의자였네. 그래도 의자였어
스쳐가고 앉아가고 스며들었나
날씨와 사람과 숨이 깃든 모든 것이
그래서 바뀌었고 잃었고 변했더라도
뭐였을까, 뭐였을까
돌멩이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더라도
덩그러니 있어
여기에, 누구나 지나가는 곳에
완전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의문을 가지고
앉아 볼 자리로 있어
[자리_ 이야기]
원래의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건 어려운 것 같다. 사람도 물건처럼 때가 탄다. 겪은 일, 겪은 사람 나를 지나간 모든 것에 때가 타고 다듬어지기 마련이다. 처음의 나를 기억하는 건 자신보다는 순간을 보냈던 사람일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기억하는 것처럼, 초등학교 친구가 나를 기억하는 것처럼, 연인이 나를 기억하는 것처럼. 그들은 시간이 지나 때가 탄 나를 보며 똑같은 말을 뱉곤 한다.
많이 변한 것 같아.
잘 다듬어진 돌멩이처럼 보기 좋은 모습이려나.
하루, 하루 갖고 있던 것을 덜어내고 걸러내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스쳐간 모든 인연의 모습이 조금씩 묻은 채로. 그들의 틀에 잘 다듬어진 채로.
그럼에도 오랜 친구는 나를 찾아낸다.
그럼에도 엄마는 나를 깨워 낸다.
그럼에도.
다듬어진 돌멩이 안에 여전히 투박하게 까슬거리는 나를.
그리고 말해 준다. 넌 여전히 그래.
그러면 안심을 한다. 아직 내가 있구나.
나는 조금도 조심하지 않고 둔한 모습을 감추지도 않고 어리숙한 나를 들켜 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