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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세대주 논쟁과 가족주의

'이상한 정상가족'을 생각한다

by 아라 Feb 28. 2025

때는 2020년 봄. 코로나로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던 시기였다. 

남편과 나는 재난지원금을 가구 단위로 지급하는 것이 나은가, 개인 단위로 지급하는 것이 나은가를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 가구당 지급한다는데, 너무 정상 가족 위주 아닌가?

- 그렇지? 

- 그렇지. 아무래도 세대주가 남성인 집이 훨씬 많은데 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다거나 별거 중이라거나 하면 모든 가족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한 사람에게만 독점될 가능성이 있지. 그 중 가장 가능성 높은 건 남성 세대주 독점이고. 

- 그렇게 보면 개인 지급이 맞는 것 같은데. 

- 암튼 가구당이라고 하니까 여보가 신청해. 세대주가 신청하래.      


대화 중 옆에서 밥 먹던 아이가 물었다.      


- 세대주가 뭐야?

- 가구를 대표하는 사람이야. 가구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아빠들이 세대주인 집이 더 많아. 

- 엥? 엄마가 우리집 대표 아니었어?

- @.@ 

- 엄마가 나이 제일 많잖아! 

- ㅎㅎㅎㅎㅎ

     

우리는 웃었다. 

어린 시절, 우리집은 엄마는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전업 주부셨고 아빠가 일터에 다니는 전형적인 가족 모델이었더래서 나는 아빠가 세대주인 것을 별 문제의식 없이 수용했던 것 같은데 아이는 다르다. ㅎㅎㅎ 아이라 편견이 없는 건가? 우리집이 연상 엄마와 연하 아빠에, 맞벌이라 그런가? 암튼 우리는 웃었다.    

  

10년 전쯤 일터의 동료분께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가족 중 독일 이민 가족이 있는데 사춘기 아들과의 갈등이 만만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한창 말다툼을 하던 중 화가 난 엄마가 “넌 내 아들도 아니야!” 소리를 질렀더니 아이가 “제가 왜 엄마 아들이에요? 독일의 아들이지!!!” 했다는 거다. 그 엄마가 이 얘길 전해 주면서 아이에게 상처 받은 이야기, 그리고 아이와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우리는 "한국 엄마와 독일 아들의 갈등이네." 했다. 한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와 독일에서 나고 자라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독일인인 아이의 갈등 같아 보였다.      

처음에는 웃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마다 가족에 대한 상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히려 그 아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이 나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아마 아버지가 내가 원하는 공부를 시켜주지 않았다는 것, 늘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 가르침만을 주려고 했다는 것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다행히도 어린 시절 충분한 경제적 뒷받침을 해 주셨지만 대학, 직업 등에 대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뚜렷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사랑과 헌신으로 보살폈지만 정서적 보상을 필요로 하였다.

      

아직도 부모와 두 아이를 정상가족으로 그리는 초등학교 <가족> 교과서 표지.아직도 부모와 두 아이를 정상가족으로 그리는 초등학교 <가족> 교과서 표지.


18년 동안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6년 동안 ‘세이브더칠드런’(주1) 에서 일했던 《이상한 정상가족》(주2)의 저자 김희경은 가족을 둘러싸고 아이들에게 자행되는 폭력과 차별을 연구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은 왜 개별성을 존중하지 못하는지, 우리 사회의 가족은 왜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보통은 사회가 근대화되면 가족이나 집단에 대한 의존도가 줄고 개인화도 같이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은 왜 이렇게 가족주의가 뿌리 깊은가 하는 점이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김덕영(주3)을 인용하여 가족을 한 마디로 “압축적 근대화의 해결사”였다고 분석한다. 

서구에서는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된 근현대화가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약 50년에 걸쳐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선 성장, 후 분배’ 논리로 거의 모든 사회 문제를 가족에게 떠넘겼다. 사람을 먹이고, 키우고, 보호하고, 가르치고, 치료해주고, 부축해주는 그 모든 일을 전부 가족에게 책임 지웠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에서 가족주의가 더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1970년대, 1980년대 내내 사회보장제도는 거의 없었고 공공의 사회적 보호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였다. 위기에 처한 개인을 받쳐줄 사회적 보호제도,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니 개인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사적 안전망’인 가족밖에 없었다. 특히 1997년 IMF 경제위기는 개인화가 발전하지 못하고 가족주의에 머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족주의가 이전보다는 조금씩 약화되고 있지만 지금도 한국의 많은 사회제도들은 개인이 아닌 가족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는 듯하다(주4). 기초생활수급제의 부양의무제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쳐도, 부양 의무자가 없거나, 부양 능력이 없을 때만 받을 수 있다. 부양 의무의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2024년에도 6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교류가 거의 없는 아들의 소득이 올랐다는 이유로 의료급여 지급 중단을 통보받았단다(주5).

      

사회정책이 가족 단위로 설계되면 가족을 형성하지 못했거나 가족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개인에게는 불이익이 주어진다. 소득, 교육, 돌봄 등이 가족에게 의존하게 되면 계층마다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달라져 양극화가 심화된다. 그리고 양극화된 가족 삶의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 되기 쉽다. 오죽하면 금수저, 흙수저 같은 ‘수저계급론’이 나오게 되었을까. 많은 부모들이 계층 하락의 불안감을 애써 감추고 아이가 어릴 때부터 경쟁에 총력을 기울이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부모의 헌신’과 ‘자녀의 보답’ 구조는 아이들에게 부채의식을 심어 주고(주6)부모-자녀 관계를 왜곡시킨다. 한국 가족주의는 특히 자녀의 성공을 위해 분투했던 가족의 중심에 ‘헌신적 어머니’가 있다(주7). 이 구조 속에서 아이가 행복할까, 의문이 든다. 

    

《이상한 정상가족》에서는 “삶은 개인적으로, 해결은 집단적으로”라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스웨덴의 사례를 살펴본다. 스웨덴에서는 개인적 삶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개인 삶의 질은 집단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을 지향한다. 부부도 개인별로 분리과세하고 공공보육 시스템이 튼튼하다. 20-64세 여성의 80% 이상이 일한다. 부모의 자산 조사 없는 학생 대출이 가능하여 청년들이 가족에서 쉽게 독립할 수 있다. 가족 안에서도 자율권과 평등의 규범이 강력하다. 한국인의 신뢰 범위가 가족에 집중되어 있다면 스웨덴은 정부, 시민단체까지 신뢰의 반경이 넓단다. 서로에게 질곡이 되는 가족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하면서도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가족은 가능한 걸까. 가족 뿐 아니라 조금은 넓어진 반경으로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사회는 가능할 걸까.




오늘따라 답 없는 글을 한참 쓰고 있다. 

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내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도 늘 생각하지만, 많이 망가진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어떻게 작은 기여를 해야 할지도 늘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졌으면 하기 때문에. 그래서 지구 반대편 아이를 후원하기도 하고 시민단체에 후원하기도 하고 기후 위기 집회에 나가기도 하고 이것도 해 봤다가 저것도 해 봤다가 그러는데. 아직도 답은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 주1: 세이브더칠드런.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및 참여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국제아동권리NGO단체. 

※ 주2, 주4, 주6, 주7: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2017, 동아시아. 

※ 주3: 김덕영, 《환원근대》, 2014, 길. 

※ 주5: 이재욱, "생활비 한 푼 안 보태는데‥" 부양의무제에 우는 기초생활수급생활자들, MBC 뉴스데스크, 2024.07.11.

  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616359_36515.html (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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