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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by 아라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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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봐도 적이 어머님이신데? ㅎㅎㅎ

- 예전에는 여성학자로 많이 불렸는데 요즘은 그냥 '이적 엄마'에다가 작가 이렇게 불리고 있는 그냥 할머니, 박혜란입니다.


<유퀴즈> 박혜란 편 캡처<유퀴즈> 박혜란 편 캡처

“여성학과 자녀 교육법을 아우르는 13권의 책을 쓰시고 30여 년 동안 3,000번이 넘는 자녀 교육을 강연을 통해서 ‘어머니들의 멘토, 육아의 달인’으로 통하셨습니다.”     


“제가 사실은 그 전부터 너무 애들한테 공부, 공부 하니까 우리 조금 여유를 갖고 품을 좀 넓게 갖고 애들을 보고 너무 공부 하나에만 아이들을 집중시키지 말자, 이런 뜻을 모아서 강연을 많이 다녔어요. 그런데 사실 ‘좋은 얘기다’ 이러면서도 안 먹히는 거예요. 왜냐하면 한국 현실은 그게 아니다. 일단 공부가 최우선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아이들이 생기고 하니까 우리 제발 아이들을 좀 자유롭게 키웁시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래도 최종 소개는 '여성학자 겸 작가'라고 했다. 그저 오늘도 '어머니'를 앞세웠을 뿐이다. '이적 어머니'로 먼저 소개되었을 뿐이다.


박혜란 선생님은 사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라는 단체의 공동대표로,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이사장으로 교육 운동을 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운동을 할 때는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먹히지 않았다고 하신다.


세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엄마’가 된 뒤에야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먹히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아들을 성공하게 만든 ‘엄마’로 호명되면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 중 혹시 ‘뭘 그렇게까지 삐딱하게 생각하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다. 그러면 이 이야기도 해야겠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가족이 함께 종종 즐겨볼 때가 있었다. 이 날은 유시민, 유희열, 황교익이 강릉의 오죽헌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주1). 그들은 오죽헌 입구에서 안내판을 함께 읽다가 탄식한다.

    

- 이런 게 문제인 거지. ‘우리나라 어머니의 사표’, 신사임당. 여성상을 어머니로 한정시키는 거지.      

- 훌륭한 정치인일 수도 있고 훌륭한 예술가일 수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어머니’로만...      

<알쓸신잡> 강릉편 캡처<알쓸신잡> 강릉편 캡처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오죽헌 안내판을 읽는다.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한 줄 읽더니 또 유시민이 말한다.


- 이 안내문을 보면 신사임당을 제대로 알 수가 없어! 그 분의 생애를 짧은 안내판에 압축해야 하는데 봐봐. 율곡이 3분의 2야. (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로서 기능한 거야. 이게 좀 문제가 있지. 신사임당이라는 한 인간이, 한 여성이 어떤 목표와 소망을 가지고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삶을 살았고 그 삶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하는 게 이 안내문에 있어야 하는데.     


유희열: 전혀 그런 건 (보이지 않네요).

유시민: (답답해하며) (저 안내문) 고쳐주고 싶어.     


그래서 급기야 그들은 ‘난 지금 율곡을 뵐 기분이 아니야. 꼭 사임당을 뵙고 가야겠어.’ 하면서 율곡 기념관으로 가지 않고 '사임당의 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그곳 표지엔 이렇게 써 있었다.      

- 율곡 이이 선생께서 탄생하신 방입니다.      


출연진들은 또 탄식한다. “또 율곡이네.”

신사임당의 사진 위로 자막이 나온다. “여긴 내 방인데.”      


출연진들은 표지판 하나 하나, 설명 하나하나를 짚으며 신사임당을 얼마나 철저하게 율곡의 어머니로만 보는지를 증명한다. ‘한 인간으로서 신사임당을 보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답답해하면서 신사임당의 사당을 모셔둔 곳으로 이동하는데 두둥.

그곳에는 율곡의 호를 딴 ‘문성사’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 율곡이다.

- 율곡의 작품과 벼루가 보관된 사당입니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간다. 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로만 소개할 분이 아니라고. 그러면서 신사임당이 등장하는 고문서들을 근거로 하여 진짜 신사임당에 대한 소개를 이어간다.

‘학식과 재능이 뛰어나며 자부심이 강했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보면 축첩제도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아주 높은 분’이었다고. 포도 그림과 산수화는 '안견' 다음 간다고 평가될 만큼 훌륭하다고. 그렇게 자막으로 글과 그림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그리고 뒤에 덧붙였다.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였지.”      

<알쓸신잡> 강릉편 캡처<알쓸신잡> 강릉편 캡처


유시민, 황교익의 분석에 따르면, 율곡의 어머니라는 것은 신사임당이라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면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근데 그것을 딱 누구의 어머니로, 그것도 성공한 어떤 남자의 어머니로 축소해서 온 국민에게 계속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하가 덧붙인다.

"지금도 여성은 잘난 아들을 가져야만 대접받고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거죠. 스스로는 안 되고...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도 재생산되고 있는 거예요."      




아이를 낳은 후 ‘엄마’,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해 내 이름이 아닌 것 같았는데 지금은 어느 새 너무 익숙해졌다.


그런데 나와는 다른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나의 친구들이다. 내 아이가 스무 살이 다 되었으니 그들도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했다면 아이가 있음직한 연령일 수 있다. 그들은 자주 투덜거린다.

      

어디 가게나 식당에만 들어가면 호칭을 ‘어머니’라고 한단다. 하도 어머니 소리가 듣기 싫어서 친구들 중 일부는 ‘저 어머니 아닌데요?’라고 냉큼 말하기도 한단다. ㅎㅎㅎ 그러면서 관찰한 바를 들려준다.


가게나 식당에 남성이 들어가면 무조건 ‘아버님’ 하지는 않는단다. 때로 '아버님'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장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결혼을 했음직한 여성은 무조건 호칭이 ‘어머니’로 통일되어 있다는 거다.

      

이에 대해 정희진은, 어머니는 ‘특권화된 주체・노동・존재・경험・역할이며 동시에 탈특권화된(특권을 박탈당한) 장소’(주2)라고 설명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모든 여성에게 ‘본질적으로 어머니’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 “결혼과 출산 여부와 상관없이 당연히 어머니로 호명되고 어머니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모든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할 뿐 아니라 돌보기를 즐기고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된다.”(주3)고 말한다.      


여성을 ‘어머니’로만 가둬두는 고정관념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여성들이 다 ‘어머니’가 아니다.

어머니인 여성들도 ‘어머니’ 말고 이름이 있다.

그러니 모든 여성들을 ‘어머니’로만 호명하고 어머니의 역할에만 가둬두면 안 된다.


어머니인 여성들도 어머니 역할 말고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다.

어머니인 여성들, ‘좋은 어머니’라는 칭찬은 너무 많이 받았다. 이제는 다른 면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어머니가 날 때부터 어머니로 태어난 건 아니다.

어머니도 고유성을 가진 한 인간인 "동시에 어머니"일 뿐이다.  


P.S: 나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일정 기간 어머니 역할을 중심으로 살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며 내가 지금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여성이 '어머니'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 주1: 〈알쓸신잡〉 2017년 6월 16일 방영분.

※ 주2, 주3, :정희진, 2005,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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