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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Apr 01. 2022

명절, 시시한 밥에 대한 생각

밥에 목숨 건다

- 남은 거는 너랑 나랑 먹어치우자.
- 네, 어머니.
<며느라기> Episode 7 중에서


며느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설거지 하고 오니 다른 가족들은 과일까지 야무지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덩그러니 과일 몇 조각만 남아 있었다. 그 시점에 했던 시어머니의 대사. "남은 거는 너랑 나랑 먹어치우자."


나에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먼저 시가에서의 명절 아침 업무 프로세스(?)를 보자면 대략 이렇게 된다. 명절 아침 일찍 남자들과 아이들이 차례로 씻고 큰집으로 가기 위해 모두 빠져나간다. 그러면 해외에 있는 막내네 제외하고 어머님, 형님, 나 셋이 남아 아침을 먹고 나물을 만든 후 미리 준비해 놓은 제수를 놓아 제사상을 차린다.


어머님이 제사상 차리기 전에 아침을 먹자 하시니 형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님, 동서랑 둘이 드세요. 저는 요거트 하나 먹을게요."


"아라야, 너랑 나는 찬밥이랑 김치랑 간단히 먹자."


헉. 위기다!

나는 사실 밥심으로 사는 밥순이다. 밥도 못 먹을 지경으로 아픈 날을 제외하고는 절대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그렇게 아픈 날은 3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밥 시간이 되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를 외치며 일단 밥을 먹고 본다. 중요한 일정일수록 일단 밥을 든든히 먹어야 힘이 나서 일한다.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밥 시간에 밥을 못 먹었을 때가 내가 제일 무서울 때라고 했다. 무조건 밥부터 먹여야 한다고. 인생 최대 목적이 먹는 거에 가까운 인간형인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어머니! 저는 집에서도 아침 꼭 먹어요. 그리고 우리도 따뜻한 밥 먹어요!
어머님은 젤 수고 많이 하시는데 따뜻한 밥 드셔야 돼요!


이렇게 말하며 후다닥 냉장고에서 반찬을 모조리 꺼내 상을 차렸다. 국도 데우고 어제 먹고 남은 갈비도 데웠다. 어머님 밥도 야무지게 퍼 드렸다. 둘이 거하게 아침상을 차려 먹은 후 제사상을 준비한다. 돌아가신 분들 위한 제사상 차리느라 산 사람이 밥도 못 먹으면 안 된다. 우리 조상님도 우리가 밥도 못 먹고 상 차리고 있으면 걱정하실 분들이다. 그리고 어머님이 제사상도 중요하지만 어머님의 한 끼 식사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다행히 1차 미션, 명절 아침에 아침 먹기 미션 컴플리티드. 그 날 이후 어머님은 명절 전날과 당일 아침 먹을 음식까지 넉넉히 갈비나 생선조림 등을 준비해 두신다.


2차 미션이 남았다.

삼형제의 부부와 조카들까지 다 있을 땐 거실에 교자상 2개를 펴도 상이 모자랐다. 그리고 부엌데기(?)라지만 난 어린 아가를 데리고 주방에 위치한 식탁에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어 공간적으로 더 좋았다. 근데 그 시점이 문제다. 남자나 어른들 식사할 때 동시에 식사를 하지 못하고 한 템포 늦게 밥을 먹기 시작하면 밥도 다 먹기 전에 과일이나 디저트 시중(?)을 들어야 할 일이 잦았다. 사린이처럼 밥도 제 때 다 못 먹고 과일은 남은 찌끄러기 과일을 먹어야 한단 말이다. 이건 안 되겠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인데, 며느리랑 개랑 동급이면 며느리도 개도 너무 슬프지 않나.

막내네가 해외로 가서 빠진 자리가 생기니 교자상 2개로 식구들이 다 함께 밥을 먹기에 적절한 공간이 되었다. 나는 '이제 여기서 다같이 먹을 수 있겠어요' 하면서 또 야무지게 여자들의 밥과 국까지 다 교자상에 놓았다. 그리고 어머님은 이제 앉으시라고 큰 소리로 부엌에 계신 어머님을 불렀다.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으셨다. 결국 우리는 모두 다 한 상에서 동시에 식사를 하게 되었다. 2차 미션 컴플리티드.


혹시 1년에 두 번 뿐인 명절인데 그까짓 거 못 참느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 자리에 가서 당해 보면(?) 금방 안다. 사소한 것 때문에 시시한 것 때문에 인간으로서 모멸감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것이 이상한 시부모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더 어려운 문제다.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시다. 그런데 가부장제는 공기처럼 스며 들어 있어 누리는 사람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하는 사람에게 어떤 인물을 통해 발현되는 가부장적인 제도와 문화는 한 인간에게 불합리함, 계급성을 처절하게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봉제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들이 전태일과 함께 노조를 만든 것도, 오래 전 노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인간이라는 관점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이런 것이 진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역사적, 사회적 상황이라는 것도 그 속에 인간을 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 상황에서 그 순간, 그렇게 행동하는 인간과 인간 집단이 있기 때문에 역사도 사회도 변화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 순간도 참기 힘든 것이다. 사소한 것 때문에 시시한 것 때문에 힘들다.

며느라기의 같은 에피소드는 이렇게 끝난다.


고민이 설거지라니, 시시하다.
구영아, 그런데 그 시시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들이... 자꾸자꾸 떠오르는 걸.
어떡하지?

<며느라기>, Episode 7 중에서

나는 가족 내에 명문화되어 있지도 않은 제도와 공기처럼 흐르고 있는 문화를 바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며느리 문제로, 시어머니 문제로, 심지어 여자들 간의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접근한다. 문제를 개별화함으로써 제도와 문화를 가려 놓았다. 이 문제는 여자들의 관계 문제가 절대 아니다. 남자들을 뒤로 숨게 하고 여자들끼리 싸우게 하는 것 자체도 뿌리깊은 문화이며 가부장제가 자기를 보호하는 세련된 방식이다. 이걸 알아차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글을 이렇게 쓰긴 했지만 이걸 무슨 몇 개년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짜서 한 게 아니다. 그냥 그 순간을 못 참고 한 어떤 말과 행동들이 쌓여서 지금의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놀랍다.

이제 나는 시가에 가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어졌다. 결혼 초부터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며느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명절의 문화가 조금씩 바뀌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며 하녀 같은 위치에서 벗어나 가족 안에서 나름 나의 목소리와 나의 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편을 키워주신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 결국 진짜 사랑하는 관계와 가족을 얻기 위해 나는 오늘도 가부장적 제도와 문화를 버리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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