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고 함께 놀기
명절은 평등한 부부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난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 부부는 명절 문화를 바꿔 보고 싶었는데 예상 외로 처음 한 두 번의 명절은 손님처럼 보냈다. 남편과 함께 큰집으로 인사 다니고 어머님의 어머님을 뵈러 인사 가고,,, 바빠서 명절 노동은 많이 할 기회가 없었다. 부엌은 어머님과 형님이 꽉 잡고 있었다. 기껏해야 두 분이 음식 준비하실 때 잔심부름이나 하고 설거지를 좀 했던가? 어머님은 능숙하지 못한 나에게 여러 안내를 해 주셨지만 대부분을 직접 하셨다. 어리버리하여 작전 개시가 무의미한 사이, 시동생까지 결혼을 하여 어느 새 아들 셋, 며느리 셋이 모이는 명절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명절 문화를 바꿔 보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처음에 가장 관건으로 생각한 것은 음식 장만과 설거지 등의 명절 노동 분담에 대한 것이었다. 전 부치는 일이 가장 긴 시간을 차지했는데 그 일은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게 어렵다면 남편이 설거지를 맡아 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시가 식구들을 그리 움직이도록 하거나 문화를 단번에 바꿀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을 바꿀 수 없으니 나와 생각이 같은 남편이 핵심 키가 되기를 바랐다. 둘째 아드님(=나의 남편)이 본인의 몫을 다하길 바랐다.
“명절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 맘대로 제사를 안 지낼 수도 없어. 하지만 며느리만 중노동하는 명절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명절을 만들어가고 싶어. 어머님, 아버님이 만나고 싶지 않거나 명절이 싫어지지 않았으면 해. 두 분을 진심으로 대하는 며느리가 되려면 함께 노력해야 해. 나 혼자 할 순 없어. 우리는 한 팀이 되어야 해.”라는 메시지를 남편에게 전했다.
나는 의지에 불탔으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남편이 설거지 좀 할라 치면 어머님, 아버님이 한 목소리로 “며느리가 셋이나 있는데 왜 남자들이 부엌에 와서 설치냐” 하셨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설거지하는 아들의 등짝을 때리며 당장 부엌에서 나가라 하셨다. 우리의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하였다.
명절 일정을 마치고 올라가는 길, 그 장면에서 왜 어머님께 밀릴 수밖에 없었는가, 분석을 하는데 갑자기 화가 났다. 어머님보다 덩치는 두 배로 큰 남편이 왜 밀리지? 나오고 싶었던 거 아니야? 끝까지 했어야지! ㅎㅎㅎ 중간에서 나름 애쓰고 있던 애먼 남편이 타켓이 되기도 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이가 차례로 태어나고 아이가 어리면 또 집안일에서 쉽게 면제가 되었다. 아이가 엄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고 불고 하면 어른들은 그걸 더 힘들어 하신다. ㅎㅎㅎ “니가 효자(효녀)구나! 참 나! 애 봐라, 내가 하마.” 하면서 며느리들을 부엌에서 내쫓아 주셨다. ㅎㅎ
그러다가 명절에 모이는 가족 구성원에 변동이 일어났다. 막내 부부가 해외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큰 형님은 명절에 일할 수밖에 없는 직종이라 명절 당일에 제사상을 차리고 나면 바삐 출근을 하셨다. 결국 며느리 셋 중 나만 남게 된 모양새가 되었다.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어머님은 나에게만 기대고 계실 수 없었다.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결국 남편도, 남편의 형도 부엌에 들어오게 되었다. 남편은 자연스럽게 함께 일할 타이밍을 찾게 되었고, 남편의 형님은 형님이 출근하시고 나와 어머님만 일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시는 것 같았다. 우리의 작전을 조금씩 실행하긴 했으되 괄목할 만한 진전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엉뚱한 방향에서 해결이 되어 버렸다. 역시 현실이 바뀌면 명절 문화도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집에 여자가 없는데 어쩔 것인가, 남자들이 해야지. 명절 전날 음식은 형님네서 많은 준비를 해 오시고(집에서는 부부가 함께 준비하신다고 한다) 우리는 사실 역할이 아주 미미하다. 명절 오전에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큰집으로 빠져 나가면 여자 셋이 천천히 제사상을 준비하고 아침도 먹는다. 나는 이 시간이 한가롭고 좋다. 큰집에서 돌아와 제사 지낸 후 함께 과일과 떡 정도를 나누어 먹는다. 이제 이 집의 남자 형제들은 손님이 오시면 과일도 깎고 상도 함께 차린다. 설거지도 하고 그릇 물기도 함께 닦으며 뒤청소도 한다. 여자들이 일할 때 함께 움직인다. 그러니까 결국 모든 걸 분담하게 된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였다. 우리는 드디어 모든 명절 노동을 여남 가리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 하게 되었다. (단, 아버님 빼고)
상도 다같이 차리고 모두 다 같은 상에서 식사한다. 여자들만 부엌에 찌그러져서 식사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러 해의 명절을 보내면서 모두가 함께 일하는 명절에 불만이 없어졌다. 같이 상 차리고 같이 밥 먹는 명절이라 더 이상 싫지 않다. 어머님과도 형님과도 남자들이 없을 때 이 집안 남자들, 무엇이 문제인가, 진지하게 함께 흉본다. ㅎㅎ 명절 노동 마친 후엔 좋아하는 맥주와 안주도 함께 즐긴다. 집에 TV가 없는데 명절 전날 밤엔 TV도 실컷 본다. ㅎㅎㅎ
요즘 여자들이 마냥 일하기 싫어하고 약삭빠르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큰 오해다. 부당하게 혼자 노예처럼 짊어진 노동이 싫은 것이지, 다함께 하는 노동에는 기꺼이 참여할 마음이 있다. 일을 실컷 하고도 욕 먹으니까 하기 싫은 것이지, 노동 후 수고와 감사의 표현을 받으면 가족에게 기여한 보람이 없지 않다. 대화에도 끼지 못하고 식사 상에도 끼지 못하는 식모가 되는 게 싫은 거지, 인간 대우 받으며 함께 식사하고 함께 대화하는 건 여자들도 좋아한다.
며느리라는 이름의 여자들을 오해하는 마음이 든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며느리라는 여자를 내가 혹은 나의 원가족들이 혹시 노예처럼 부리는 것은 아닌지, 딸같은 며느리라며 내 아들과 또는 나와 같은 밥상에서 밥도 먹으면 안 되는 식모로 대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뼈빠지게 일하고 돌아가는 뒤통수에 수고 많았다, 고맙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했는지 말이다.
김혼비 작가는 여성들에게 명절이 힘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성들의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명절’은 단지 여성에게 부과되는 명절 가사 노동량 때문만이 아니다(물론 이것도 굉장히 크다).
명절을 보내는 형식이 대개 남자 집안 조상을 모시고 남자 집안 친척들끼리 모여 친목과 우애를 다지는 데에 며느리라는 명목으로 남의 집 여자들을 데려다 노동시키는 구조로 이루어지는 탓에, 명절마다 ‘남자보다 낮은 계급으로서의 여자’의 위치로 내려가야 하는(혹은 내려가도록 강요받는) 상황이 초현실적으로 피곤하고 모멸적으로 괴롭기 때문이다.
(김혼비, <우리 조상님이 밥 안 준다고 저주하는 ‘소시오패스’일 리 없잖아>, 김혼비의 혼비백서(5), 경향신문, 2019.09.21., 원문 보기 링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909202046005)
* 표제 사진. 카카오웹툰, <며느라기> 12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