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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Mar 17. 2022

아들도 출가외인이다

기혼의 아들과 그 부모에게 오은영 선생님이 필요한 이유

흔히 결혼한 여성을 일컬어 '출가외인'이라고 한다. 결혼을 했으니 집을 나가 외부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말 뜻만 놓고 보면 정말 타당하다. 결혼은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면 남자는? 나는 남자도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부모로부터 상당한 독립을 확보한 상태로 20대를 졸업(?)했다. 연애를 오래 했어도 굳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고 둘이 결혼을 결정한 후에야 양가 부모에게 알렸다. 결혼 준비할 때도 역시 부모의 뜻 대신 우리가 원하는 대로 결혼식을 준비하고 집과 살림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결혼 초 이 독립성을 더욱 확고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가 홧김에 저지른 고자질 사건이었다.


- 어머니임, 지금 새벽 5시인데요오,,, 어머님 아들이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왔어요, 엉엉,,, 전화도 안 받아요, 엉엉,,,

- 뭐라고? 세상에, 아직 집에 안 들어왔다고? 내가 이놈의 자식을,,, 그래그래, 울지 마,,, 엄마가 혼내줄게.


나의 배우자는 밤늦게 퇴근하는 직종에서 일했다. 안 그래도 퇴근 시간이 언제나 늦었는데, 자다 깬 어느 밤, 옆을 보니 빈 자리. 깜짝 놀라 전화했는데 전화도 안 받으니 급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들고 있던 전화기로 꼭두새벽에 시어머니 전화 번호를 눌렀던 것이다. 화가 난 와중에도 엄마에게 전화하면 너무 대형사고가 될 것이라 차마 그렇게는 못/안 했다. ㅋ 전화하기 직전까지는 눈물 날 정도의 감정 상태는 아니었는데 어리광을 부리며 어머님께 고자질을 하고 나니 왠지 눈물이 났다. 어머님도 주무시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전화를 받아 엄청 당황하셨을 텐데 곧장 내 편을 들어주셔서 눈물이 났나? 특히 '이놈의 자식을,,,'에서 감동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넌 이제 죽었어!’

그는 그 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고 엄청 혼났다고 한다. 우리 집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만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며느리는 아니다. 어머님도 하고 싶은 말씀 다 하시는 어머님이다. 정말 쌤통이다. 아 꼬숩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그는 제안을 해 왔다. 서로 어떤 잘못을 하거나 다툼이 있더라도 부모님께 전화하지 말고 우리끼리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자는 제안이었다. 나도 홧김에 전화를 한 것이지 내내 고자질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쉽게 합의를 하였다. 그리고 진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갈 작정이었다면 시어머니가 아니라 나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후 우리는 우리의 경제적 사정이든, 우리의 관계든, 서로에 대한 불만이든 어떤 잘못이 있든 양가 부모님께 전화하거나 알린 적이  번도 없다. 나도 그렇고 그도 그렇다. 나는 사실 작은(?) 흉을 보는 정도를    아닌데 이건 애교다.


여자든 남자든 성인이 되면 경제적으로, 생활적으로, 정서적으로 모든 면에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해 서로 불행한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오죽하면 ‘올가미’ 같은 영화가 나왔을까. 자녀의 부모로부터의 독립, 정말 중요한 과제이다. 성인이 되어 독립된 가정을 꾸렸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상한 정상가족>에서는 부모의 문제를 지적한다. 저자 김희경은 ‘불행한 상황’에 처한 자녀들에게 ‘양극단’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과보호’와 ‘방임’이다.

“과보호와 방임 둘 다 아이를 독립적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고 소유물로 바라보는 같은 뿌리에서 비롯됐다. (중략)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적당한 거리와 존중을 유지하지 못해 과보호와 방임의 두 극단이 생겨난다.(59-60쪽)


<마음의 연대>에서 이승욱은 ‘부모’가 하나의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에서 관계가 불가능하고 연대가 일어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그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중략)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이루려는 것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는 부모의 가치를 충실히 이행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부모는 이미, 하나의 '문제'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중략) 중년을 훌쩍 넘겨서도 여전히 부모의 사랑과 인정에 갈급하고, 그로 인한 애증으로 괴로워한다. 부모가 행한 편애의 수혜자였다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쉰 살도 넘은 마마보이들이 한국 사회에는 지천으로 널렸다.” (72-73쪽)


내가 요즘 좋아하는 오은영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독립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20년 동안 키우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아이가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길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입니다.”


설마, 오은영 선생님이 말하는 독립이 연락을 끊고 지내라는 매정한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서로 좋은 유대를 갖지도 말고, 필요할 때 서로 돌보지도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지는 않겠지. ‘독립’을 이상하게 오해하지는 않기를.


우리나라의 시부모들은 아들의 독립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제발 아들에게 독립을 허하라.

그리고 대한민국 아드님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성인이 되었다면 독립하실 때가 지났습니다. 아들도 출가외인입니다.


(여자는? 여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출가외인이었기에 특별히 남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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