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지 않는 교육에 참여자로, 진행자로 함께 하며, '몸으로 배운' 것들을 하나씩 기록합니다.
말로 가르친 것은 금방 잊혀집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내내 느꼈습니다. 관객이 되어 쳐다 보았다고 자기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수영하는 것을 보았다고 수영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수영하려면 몸을 물에 담궈야 합니다. 수영하려면 물에 담긴 채, 팔을 돌리고 다리를 움직이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 몸으로 직접 배운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래 기억됩니다. 때로는 잊을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인형극 활동 2'입니다.
지난 글(https://brunch.co.kr/@arachi15/360)에서 소개한 인형극 활동은 두 번째 심화 버전입니다.
이번 인형극은 모든 참여자가 함께 합니다. 20명 내외의 참여자가 모두 함께 하게 됩니다.
방법도 조금 달라집니다.
딱 한 사람만 인형을 조종하는 '조종자'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인형입니다.
조종자는 이번에는 양손을 펼칩니다. 양쪽 손바닥으로 두 개의 인형을 조종하게 됩니다. 인형의 미션은 아까의 인형극과 동일합니다. 인형의 유일한 미션은 조종자와 자신의 이마가 10cm 거리를 유지하도록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번에 다른 점은 조종자의 손바닥과 연결된 두 개의 인형이 또 다른 인형의 조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조종자와 연결된 인형은 양팔을 펼칩니다. 두 명의 인형은 양팔을 펼친 후 10개의 손가락을 모두 펼칩니다. 이번에는 10개의 손가락 끝마다 하나의 인형애 연결됩니다.
이제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게 됩니다.
대장 조종자의 손바닥 움직임을 따라 두 명의 인형이 따라다닙니다. 두 명의 인형이 펼친 양팔과 손가락에 연결된 스무 명의 사람들이 두 개의 인형을 따라다닙니다. 스무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아주 거대한 인형극이 펼쳐집니다.
두 명이 짝을 이루어 수행한 인형극과 이 거대한 인형극은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듭니다.
이 활동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한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간파해냅니다. 한 사회가 형성해 온 시스템과 구조가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인형극의 심화 활동은 거대한 사회 구조 속의 개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의 생활 모습, 그저 부모의 모습을 따라 모방해 생활 양식을 갖게 된 것 같지만, 사실은 부모와 내가 동시에 속해 있는 거대한 사회적, 문화적 전통에서 온 것입니다. 나의 사회적 역할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루어가는 일로만 보이겠지만, 사실은 내가 속한 조직의 구조의 일부분으로, 더 크게는 거대한 사회 구조의 일부분으로서의 사회 체계 안에 있습니다. 나만의 독특한 생각인 것 같지만, 나의 생각과 여러 인식 또한 거대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사회의 질서, 체계, 구조의 영향 속에서, 사회가 이루어온 문화적 기반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선 상에서 나라는 개인을 본다는 것은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사회 구조와 체계 속에서 나라는 개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인식을 깨고 새로운 인식으로 향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사실, 활동의 내용 자체보다는 이 방식이 너무 새로웠습니다. 큰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작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로는 책으로는 설명을 아무리 해도 이해하기 또는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들을 행위로 눈 앞에 보여 주자 모두가 한 번에 많은 것을 이해하고 심지어는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는 것을 눈 앞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눈 앞에서 직접 보여주는 것이, '가시화'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행위'로서만 가시화될 수 있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시화'
어떤 현상이 실제로 눈앞에 드러남. 또는 드러나게 함.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게 느낀 적이 있는데, 송길영님의 책이었습니다. 데이터로 모든 것을 보여주니까 어떤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니까요.
회의를 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발언한 것을 발언의 현장에서 그대로 정리해 회의록으로 바로 보여주거나, 혹은 칠판에 요약해 적는 것만으로도 회의가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말한 것이 기록되는 순간 두 번, 세 번 같은 것을 말하던 이들이 한 번만 이아기해도 충분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한 번만 얘기하시더라고요. 자신의 의견이 이미 기록되었으니까요. 자신의 의견이 이미 수용되었으니까요.
저 자신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해 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그냥 내 행위만큼만이 나라는 사람을 드러냅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생각을 많이 하느냐가 아니고, 내가 행동하는 만큼만이 '진짜 나'입니다. (같은 행위를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논외입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은 사회적, 문화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행위하는 것과 모르고 행위하는 것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엇! 왜 나는 이럴 때 이런 행동을 하고 있지? 엇! 나는 왜 이런 인식을 갖고 있지?' 하는 것을 순간 순간 떠올리게 됩니다.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다가옵니다.
조종자일 때 보던 풍경과 인형일 때 보던 풍경이 달라지듯이, 전체 사회 구조와 체계 속의 인간, 조직 안의 인간은 또 다른 결로 보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보게 된 것이 있습니다.
거대한 인형극 활동을 하다 보면 단 둘이 인형극을 할 때와는 다른 장면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 중 가장 크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바닥을 따라가기를 포기하는 이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단 둘이 인형극 활동을 할 때는 역할에서 벗어나는 이탈자가 나오지 않는 편입니다. 단둘이 짝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종자로서 인형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10-2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스무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거대한 인형극 활동을 하다 보면, 주어진 역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움직이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 움직이기를 포기하는 순간 전체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멈춘 사람이 이탈하게 되면 전체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시작됩니다. 때로는 멈춘 사람이 그 자리에 멈춤으로써 전체의 흐름이 방해를 받게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이탈하거나 멈추는 데 영향을 줍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거대한 사회를 인식하는 순간 찾아오는 나 하나의 노력이 이 거대한 사회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일종의 무력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대한 사회의 질서를 인식하는 순간 찾아오는 내 존재의 사소함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대한 사회 속에서 개인은 미미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우주를 담고 있다는 말도 진실이고 거대한 사회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먼지처럼 미미하다는 것도 진실입니다. 그럼에도 한 사람들의 행위는 주위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 사람의 실천은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아와 새로운 내가 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나 하나 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뭔가를 한다는 것이 소중합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하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글에 들러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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