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의자 1

by 정아라
가르치지 않는 교육에 참여자로, 진행자로 함께 하며, '몸으로 배운' 것들을 하나씩 기록합니다.

말로 가르친 것은 금방 잊혀집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내내 느꼈습니다. 관객이 되어 쳐다 보았다고 자기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수영하는 것을 보았다고 수영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수영하려면 몸을 물에 담궈야 합니다. 수영하려면 물에 담긴 채, 팔을 돌리고 다리를 움직이고,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 몸으로 직접 배운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래 기억됩니다. 때로는 잊을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의자로 권력 표현하기'라는 활동이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모두 동그랗게 둘러 앉습니다. 참여자로 만들어진 동그란 원 가운데에는 의자가 10개 놓여 있습니다.


진행자는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앉아 있는 참여자들을 상상 속 전시회장으로 안내합니다. 전시회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참여자들은 모두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한 작가들입니다.


참여자는 모두 상상 속의 전시회로 이동하였습니다. 우리 앞에는 10개의 의자가 있습니다.

"작품의 주제는 '의자로 권력 표현하기' 입니다. 앞에 놓여 있는 의자 10개로 어떻게 권력을 표현하시겠습니까?"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의자'를 이용해 만들어냅니다. 먼저 머리 속으로 만들어 봅니다. 모두의 상상 속 전시 작품이 완성되면 참여자들은 차례로 앞으로 나와 자신의 작품을 즉석에서 만들고 작품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합니다.




이 활동을 할 때면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몇 년 전 '여성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는데 그 첫 수업 시간의 장면입니다. '즐거운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책상의 배열은 앞을 보는 배열이 아니었습니다. 교수님이 앞에 계시기는 했습니다.


첫 장면. 책상이 동그랗게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수업은 모두 동그랗게 앉은 채 진행되었습니다. 원을 만들어내는 의자 중 하나에 교수님도 앉아 계셨고 우리 학생들도 모두 앉았습니다. 내내 이렇게 앉아 수업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동등하게 말하는 수업이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즐거운 충격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성함과 함께 별명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을 별명으로 부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즐거운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별명을 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내 서로를 별명으로 부를 거라고 하셨습니다. 첫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교수님을 '교수님'이 아니라 '별명'으로 부르라니요. 보통 사람들은 교수가 아니어도 교수라고 불리면 좋아할 텐데요. 교수라는 호칭을 거부하거나 다른 호칭으로 바꾸기를 제안하는 사람은 그 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사실 보지 못했습니다. ㅎㅎㅎ


그렇게 우리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별명으로 내내 불리웠던 우리의 교수님의 첫 수업 주제가 바로 '권력'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떠올리고 써 보세요."


저는 곧바로 물음표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입학한 학과는 '여성학과'입니다. 여성의 탄압의 역사, 가부장적 제도와 문화로 권력을 빼앗긴 역사가 먼저 떠오르는 학과입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첫 번째 요구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빼앗긴 권력이 아니라 자신이 누리는 권력을 적으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충격이었습니다.


처음 받아보는 낯선 질문 앞에서 눈을 꿈뻑이는 우리들에게 다행히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시네요.

"가령 이런 것입니다. 저는 직업이 교수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권력입니다. 학생들에 대해 제가 갖고 있는 권력입니다."


그제서야 하나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엄마", 저는 엄마였습니다. 이것은 아이 입장에서는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가진 권력을 하나씩 떠올리며 적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 대해서는 부모라는 권력을,

나이 어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이의 권력, 어른이라는 권력을,

비혼자들에 대해서는 기혼자라는 권력을,

가족을 갖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소위 '정상 가족'이라는 권력을,

학력이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대졸이라는 학력의 권력을,

지방에 사는 이들에 대해서는 '서울'이라는 권력을,

벌이가 없거나 더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직장인' 또는 '돈 버는 사람'이라는 권력을,

아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이 있는 사람'이라는 권력을,

직장의 일부 직원에 대해서는 '직위'라는 권력을,

워크숍 참여자들에 대해서는 '진행자'라는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누리는 권력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평화 교육 때 들었던 '진행자'도 권력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을 내려놓을수록 참여자들의 자리가 커진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가진 너무나도 많은 권력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든, 어떤 의도가 있든 없든, 어떻게 사용하든,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가 가진 권력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것이 권력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여성학 공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또 어떤 권력이 있을까요?

매일 매일 떠올리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내내 찾는 중입니다.

제가 가진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 봅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저의 말도 저의 권력은 아닐까요?

큽 그렇다고 합니다.


"말의 힘은 그 말이 담고 있는 논리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나온다. 자신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면, 그것은 당신의 논리가 정교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선 자리가 높기 때문일 수 있다."

— 신지영, 《언어의 줄다리기》 중에서


저의 지위는 권력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역할'을 하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권력을 가진 자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필요가 없지만, 약자는 생존을 위해 강자의 마음을 끊임없이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 엄기호, 《고통 구경꾼》 중에서


"특권이란 자신이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내가 누리는 안락함이 누군가의 희생이나 배제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묻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권력의 핵심이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중에서


TV에 나오는 권력다툼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쯔쯧 거리지만 정작 저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를 돌아보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매일 매일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아라의 연재글]

월: 엄마는 퇴근 중 https://brunch.co.kr/brunchbook/onherwayhome

수 또는 목: 가르치지 않는 교육 https://brunch.co.kr/brunchbook/uneduc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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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나의 일, 나의 삶 https://brunch.co.kr/brunchbook/workis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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