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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Oct 22. 2023

내 꿈은 항암투병기 상금 100만 원으로 여행 가기

내돈 내산 내 책 쓰기, 내돈내산 가족여행이 더 좋다

30대 엄마의 꿈은
신문사 항암 투병기 수상 

참 우습지? 

뭐 이런 꿈이 다 있나 싶지?


엄마, 아빠의 30대는 너무 힘들었어. 

결혼한 지 3년 만에 아빠의 갑작스러운 암 발병. 

위암 3기 10년 생존율 20퍼센트라는 의사의 무지막지한 말. 

뱃속에 있던 첫아기. 

젊은 엄마 아빠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겁고 힘들고 앞날이 보이지 않았어. 


서울 생활을 접고 아빠 직장도 그만두고, 엄마는 직장을 옮기고 모든 것이 0이 되는 느낌. 

그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우리를 도와주셨지. 기꺼이 시골로 당신들 곁에 와서 살라고. 

한 몇 년은 먹구름이 낀 듯 어둡고 막막하고 슬펐어.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고 마음이 가벼운 날이 없고 항상 집안일은 너무 많고. 언제 아빠가 또 재발할까 생각하면 두렵고. 만일에 엄마가 혼자되면 어떻게 살아가지? 한 치 앞을  두렵기만 했지. 


그때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어. 암은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을 내려주고 후속 검진만 하거든. 제발 5년이 빨리 지나갔으면, 제발 10년이 빨리 지나갔으면 그렇게 생각했지. 

외할머니가 그러시더라. 10년 빨리 지나가니 걱정 말라고. 

그땐 하루하루가 그렇게 길고 일 년이 그렇게 길었는데 어떻게 20년이 지났을까? 이제 20년이 다 된 이야기가 되었구나.

짬만 나면 암 환자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고, 민간요법이며 자연식을 따라 하며 신문사 항암 투병기를 읽게 되었지. 


나도 저런 글을 쓸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때가 오면 신문사에 항암 투병기를 응모해서 상금을 받아 가족 해외여행 가는 걸 꿈꿨단다. 


그런데 막상 10년이 한참 지나 신문사 항암 투병기를 검색해 보니 이제는 그런 걸 하지 않더구나. 아마도 인터넷 정보가 너무나 많은 시대가 되어 신문사에서 그런 걸 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싶어. 

이제는 신문사에 응모하는 게 아니라,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싶고, 엄마의 마음도 정리하고 싶었어. 아빠를 원망하고 내 삶에 지쳐있던 그 시간을 말이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은 없겠지. 너희들이 살면서 무슨 일을 겪게 되든지 힘을 내어 살아갔으면 해. 

할아버지가 폐결핵으로 돌아가실 뻔한 할머니의 깜깜했던  30대 때 이야기가 엄마에게 참으로 와닿던 이야기였거든. 나도 이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편안한 노후가 언젠가 오겠지 싶어서 말이야. 


이야기보단 글이 좋겠어. 

언제든 펴볼 수 있으니까. 

엄마가 없을 때도 엄마 아빠의 삶을 이해하며 너희들의 삶도 다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쓰기로 했어.


맏이가 수능을 보고 나면 우리 가족 다섯 명이 처음으로 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려고 해.

 이제 50세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걸 자축하면서. 

가족 모두에게 감사하며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항암 투병기 수상금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는 없지만, 책을 써서 이야기를 남기고, 엄마 아빠가 건강해서 번 돈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오늘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일 거 같다. 

인생 50이 이런 거구나. 

다 간 인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고, 

지난 시간을 새롭게 정리하고 성찰할 수 있는 성숙한 나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구나. 


50이 된 너희들을 볼 수 없을 수도 있어. 

엄마의 부모님도 엄마의 50을 보지 못하셨으니까. 

하지만 그 나이에 지나온 삶을 잘 버티고 살아왔음을 대견하게 여기며, 앞으로의 인생 후반기에는 너 자신에게 더욱 충실하고 너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거라. 


왜 많은 사람이 의미 없는 경험은 없으며 인연은 소중하다고 하는지 되새기며 말이야. 

소중한 너의 삶을 더 알차게 가꾸고 누리며 살거라. 

네가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말이야.


이번 여행에서는 가족사진을 찍으려 해. 다섯 명이 다 같이.

이 시간을 추억하고 재밌는 온 가족 소풍으로 두고두고 남았으면 해.

우리가 각자 살다가 만났을 때 즐거운 이야깃거리로 말이야. 

엄마 아빠는 너희들과 함께 즐거운 인생을 살았고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고 기억해 주렴. 

가끔씩은 엄마 밥을 생각하고 스스로 해 먹으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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