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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Sep 04. 2023

재수생 딸아

홀로 숲 속에 있는 듯

김글리 작가를 만났어.

지난주 시작한 ‘나를 돌보는 글쓰기’라는 수업에서.

운명 같은 느낌.

예전에 첫 남자 친구를 만났을 때도

아빠를 만났을 때도

느껴졌던 그 운명 같은 느낌.     


집에 와서 작가가 소개한 책을 찾아 장바구니에 담고 이런저런 노트 필기도 다시 보고.

엄마보다 대충 열 살 정도 어린 사람인데

스물몇 살 때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사람이었지.     

오늘 타로 수업이 끝나고 두 시간 정도 남길래 로비에 있는 북카페어서 책을 보는데 딱 눈에 들어오는 거야. 그 작가의 책이

‘인생 모험’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언제 행복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견딜 수 없으며

무엇이 내게 중요한 건지 아는 일     


무지하게 평범하고 다 아는 것 같은 이야기지만

새삼 이 나이에 다시 쏙쏙 박히는 건 작가의 깊은 깨달음의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일까?     

내가 아닌 것을 모조리 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모험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예전부터 도서관에서 찾아 읽곤 했던 구본형 작가의 제자이기도 했더라.

세상은 참 신기하게도 어딘지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구본형 작가의 편지가 추천사로 살짝 실려 있더구나


‘ 너의 삶은 수많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아, 인생을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우는 일.

그 일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인 것을....’  

   

이렇게 엄마의 ‘나를 돌보는 글쓰기’는 계속될 거 같다.

새로운 인연과 설렘으로 세상과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야.     


지난주에 탁구 경기에 나갔어.

엄마가 은근히 비호감이라고 느낀 아줌마와 경기를 하게 되었지.

지난번에도 졌는데 또 지고 말았어.

  여러 번 생각해 보니 시작하기도 전에 진 게임을 했던 거야.

우선 난 하기도 전부터 그 사람과 경기가 하기 싫었어.

이런저런 작은 대화들로 살짝 얄미운 캐릭터인 데다가 공도 얄밉게 치는 스타일.

피하고 싶은 기분이었지.

애써서 오늘은 이겨보자 했어.

근데도 왜 또 진 거지? 열받더라.

딱히 나보다 잘 친다고 인정할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보기엔 내가 여러 모로 나은데 말이야.

근데 그 사람은 누구랑이든 똑같이 자기는 이기기 위한 최선의 플레이를 똑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었어. 수많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근데 난 똥을 빨리 건너뛰고 싶은 마음으로 경기를 한 거야.

은근히 불쾌한 기분으로

나한테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피해를 준 것도 아닌 그 사람을

내 잣대로 마음대로 판단하면서 말이야.

한 마디로 나는 나에게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던 거야.


이번에는 이기자 마음먹을 것도 없었고

아줌마가 더 얄미운  대놓고 얄미운 게 아니라

은근히 사알짝 남모르게 얄미운 데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아빠와 직장동료라는 이유로  친한 척하며 나이를 앞세워 언니인척 하는 것도 솔직히는 꼴사나웠나 봐.

이런 복합적이고 찝찝한 느낌이란 건

지극히 외부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거였고

그런 상태로 경기를 했으니

내 것에 집중할 수가 있었겠나 싶다.

집중해도 안될 판에 집중조차 못했다는 거지.


경기를 하기도 전에 지는 마음을 먹지 말자 했는데

나는 또 지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야.

뼈아픈 반성을 했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직 난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 못할 때가 많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지.

공을 치는 사람이 누구이건

나는 탁구를 치고 있고

좋아하고 잘 치고 싶으니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만 했으면 될 것을 말이야.


못난 나 자신을 대면하고야 말았지.

하루이틀은 기분이 나빴어.

근데 오늘은 오히려 홀가분하기까지 해.

내가 나 자신은 민낯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저 나 자신으로만 살면 되고

남, 남의 눈, 내가 아닌 것을 버리면 되는 거라고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야.     


새겨본다.

내가 좋아했던 순간

남들이 아닌 내가 좋아했던 것에 집중하고

오로지 내가 좋아했던 그 순간을 끝까지 추적해서 구체화하고 단단하게 정리하고 만들어가며 살리라


인디언들에겐 비전퀘스트라는 게 있대.

성인이 될 무렵

깊은 숲에 혼자 들어가 열흘간 음식도 먹지 않고 인생 비전을 세우는 시간이란다     


어쩌면 너는 지금 혼자 있는 시간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너 자신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간

공부도 힘들겠지만

홀로 된 너 자신과 만나는 시간

너의 한계와 마주하는 것도 힘들 그 시간

어쩌면 인디언들의 비전퀘스트 같은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거야.


구본형 작가가 한 말.

엄마도 네게 해 주고 싶은 말.    

 

‘ 너의 삶은 수많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아, 인생을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우는 일.

그 일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인 것을....’     


너 자신을 믿고,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너 자신만의 길을 가거라.     

그게 엄마가 살고 싶은 인생, 하고 싶은 모험이기도 한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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