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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Mar 19. 2024

'손수' 만들고 싶다

갱년기에 찾는 나

손수 집을 짓다. 
손수 농사를 짓다. 
손수 만들다.

                          


 ‘손수’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 손으로 직접’이란 뜻이다.      


 며칠 전 어느 오래된 가게에서 간수로 손수 만든 따끈한 두부를 사다 먹었다. 검정 비닐에 물이 줄줄 흐를까 걱정되게 담아주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유난히 손수 만든 걸 사는 것도, 내가 손수 무언가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손으로 만든 것에는 뭔지 모를 힘이 있다. 아마도 영혼, 그 사람의 육체와 정신의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나는 그걸 민감하고 소중하게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오늘도 가방 속에 공책과 펜을 챙긴다.  손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외출할 때, 크건 작건 공책과 시그노 0.28mm 펜을 꼭 챙겨 넣는다. 일제라서 왠지 찝찝해 국산으로 이것저것 갈아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난 이 펜의 질감이 좋다. 좀 비싼 펜이라 직장에서 사무용품을 주문할 때 많이 주문해 놓기도 하고, 리필용 볼펜 심만 사두고 갈아 끼우며 쓴다. 유난히 손으로 쓰기를 좋아하는 나. 가끔은 내가 아니라 펜이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알아서 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요즘 사람들. 나도 시대에 따라야 할 것 같아 태블릿을 사서 늘 가지고 다녀볼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도 나는 공책과 펜에서 마음을 뗄 수가 없다. 언제부터였나? 내가 종이에 펜으로 쓰기를 좋아한 게.     

 6학년 때 처음으로 엄마가 학원을 하나 보내주신다고 했다. 언니가 조르고 졸라 피아노 학원을 처음 다니게 되면서 나한테도 한번 물으셨다. 하나 떠오르는 게 ‘서예’였다. 지나가다가 어디서 본 것 같은 간판이 떠올랐다. 흰 종이에 멋들어지게 쓰여있는 검은 붓글씨. 내겐 그렇게 멋져 보였다. 학원에 처음 들어가 보니, 아빠 나이쯤으로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계셨다.

 “너 한글 배울래? 한자 배울래?”

물으시는데, 고민 없이 

 “한자요” 

하고 대답했다. 

  딱 일 년을 배우고 액자에 끼우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고 중학생이 되기 전에 이사 가며 그만두었다. 그저 막연히 지금도 언젠가 다시 한번 하고 싶은 취미로 서예를 생각한다. 아마도 그 뿌리를 찾아보자면, 서당 훈장님이셨다던 할아버지와 그 서당에서 한자를 배워 멋지게 한자를 흘려 쓰시던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뿌듯해하며 내게 종이에 멋지게 한자를 흘려서 써 보여 주시던 아버지의 필체가 어린 내 눈에는 추사 김정희처럼 멋진 명필가처럼 보였었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내내 춥다가 봄 느낌의 해가 났다.

남편은 겨울 동안 엉망인 밭을 갈았고, 나는 작년에 옮겨 심은 블루베리 나무들을 한 군데로 낑낑거리며 손수 옮겼다. 봄이 되었으니 내일부터 물을 주려고 한다. 요즘 쿠팡보다 뜨고 있다는 쇼핑몰 ‘테무’에서 남편이 산 물 물뿌리개가 참 편리해 보였다. 호스 끝에 꽂으면 자동으로 물을 흩뿌려주니 나무들을 모아 놓고 물을 틀어주면 되지 싶었다. 그걸로 아침마다 흠뻑 물을 줄 생각이다. 아버지가 키우실 때는 눈길을 주지 않아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던 블루베리 나무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무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안타까워 가지치기도 해보고 화분 갈이도 해보다가 등에 담이 들어 한 달을 고생했었다. 다시 봄이 오니 어떻게든 몇 그루라도 손수 가꿔보고 싶다.     


 남편이 큰 병을 계기로 부모님 옆집으로 이사 온 지 20년, 이제 부모님도 안 계신 집에서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네 개발 소식이 소문으로 돈 지 몇 년째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 집에 사는 한은 손길이 하나하나 더해지며 이 집만이 우리 집이 되어감을 느낀다. 언젠가, 이사 가야 한다면 부모님이 노년에 가꾸던 한 시간쯤 덜어진 시골 주말농장 폐가를 ‘나만의 집’으로 고칠 생각이다. 직접 내 손으로 고치고 싶다. 다 허물고 새집으로 짓는 게 일이 쉽겠지만, 나는 부모님이 가꾸시던 농장인 그곳의 느낌을 살리고 거기에 내 취향을 더하고 싶다. 뿌리인 부모님을 기억하고 싶고, 아이들에게 나도 튼튼한 뿌리가 되어주고 싶다.      

 부모님이 손수 짓고 사시던 공간에서 난 왠지 모를 온기와 편안함을 느낀다.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훈장 할아버지에서 나만의 명필가 아버지, 그리고 손 쓰기를 좋아하는 나, 건축가를 꿈꾸는 아이까지. 우리 가족의 손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이 담겨 있고 소리 없이 전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온기가 전해질 것이다. 내 몸과 정신을 손에 고이고이 담아 손수 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종이에 펜으로 글도 실컷 쓰며, 삶을 단 하나의 나만의 예술품으로 ‘손수’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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