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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Nov 24. 2022

폭식의 이로움에 대한 주장

쓰윽, 여러 번 가로지른다. 솟구쳤다가 내려오는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이라고 하기에는 경미한 어떤 느낌이 뱃속에서 일렁인다. 탄수화물을 잔뜩 먹은 날 새벽즈음이면 찾아오는 느낌이다. 새벽을 지새우며 입 속으로, 위 속으로 탄수화물을 꾸역꾸역 넣는 때도 있으므로 새벽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겠다. 정확히 말하면 음식물이 소화되고 나서 공복 상태이다. 다른 영양소와 함께 먹지 않고 오직 탄수화물을 과다섭취한 후에 찾아오는 공복이 조금은 긴장되는 이유이다.


나는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푸는 습관이 있다. 식탐도 강한 편인데, 음식을 앞에 두고 먹지 않는 마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표준체중과 과체중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폭식이다. 그나마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폭식을 즐기는 습관을 버린 뒤로는 우상향하던 체중을 멈출 수 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폭식을 아예 놓지는 못하고 가끔 밤에, 새벽에 입 안이 비어있지 않도록 먹거리를 넣고 씹는다. 주로 돈벌이를 할 때 그러한데,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고객의 입맛을 맞추어야 하는 글을 쓸 때는 스트레스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때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과자, 떡, 빵, 씨리얼, 가끔은 맨밥같은 탄수화물 음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탄수화물을 먹는 주된 이유는 달기 때문이다. 달달한 맛, 그 맛이 스트레스를 잊게 만든다. 그래서 탄수화물이 마땅치 않으면 당이 잔뜩 들어간 과일을 먹는다. 아니면 사탕을.


깜깜한 시간에 방안에 불을 환하게 켜놓고 폭식을 하는 여자,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광경을 상상했다면 미안하다. 나는 접시에 과자를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먹는다. 그리고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과자 부스러기나 기름이 묻지 않도록 조심하며 두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한다. 글을 쓰면서 하는 폭식은 게걸스러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지만.


의뢰받은 일로 글 쓰는 작업이 낮시간까지 이어지면, 낮에도 열심히 탄수화물을 섭취한다. 흔히 사람들은 폭식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다. 자제력이 약한 모습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회의를 하며 커피와 다과를 먹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과 나의 밤 시간 폭식은 무엇이 다른가? 나는 영화를 보며 음식을 먹지 않는다. 영상에 빠져있는 동안 무의식중에 손으로 음식물을 입속에 넣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영상을 보며 입 안에 달콤함이 퍼지는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이다. 나의 폭식이 스트레스를 제거하기 위함이라면, 그의 팝콘은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리라. 영화관 팝콘이나 회의 다과가 폭식하는 음식물과 마찬가지 아니겠느냐고 주장하지 않겠다. 어떤 행동을 하면서 동시에 그와 관계없는 음식물을 입 속으로 넣는 사람들의 패턴이 폭식 이외에도 존재한다는 걸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나의 패턴이 폭식이 아니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폭식증이나 거식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나의 폭식은 폭식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위가 팽팽해지고 더이상 늘어날 수 없어서 생기는 묵직한 팽만감, 그리고 위 속 음식물이 모두 소화되었을 때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이전 모습으로 완벽히 돌아오지 않은 것 같은 느슨한 느낌. 이렇게 위가 지칠때까지 먹는 방식을 폭식이 아닌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나는 그 미약한 고통을 은근히 즐기기까지 한다.


한번은 이러한 폭식이 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쌀한 눈초리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 하다. 폭식이 이롭다니? 하고 질문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어느날인가 나는 탄수화물로 위를 채우면서, 차라리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내가 낫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타인에게 푸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쓰레기통으로 삼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를 아무리 강조해도, 온 몸을 둘러싸고 있는 날카로운 기운으로 '누구 한 명 걸려봐'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소위 갑질이라고 하는 그릇된 문화도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닐런지. 아무튼 나의 스트레스를 타인을 향해 내리꽂는 그런 사람들보다, 건강을 조금 헤칠지언정 내 안에서 해소하는 폭식이 차라리 정신적으로는 건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폭식의 이로움을 주장하는 궤변이다. 사실 폭식은 건강에 해롭고, 나아가 정신 건강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타인에게 향하는 독설이, 갑의 위치에서 내리꽂는 비수같은 말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내 안에서 생성된 스트레스를 내 안에서 풀어내지 못하고, 감정에 실어서 타인을 쓰레기통 삼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나의 폭식은 그들의 폭언보다는 세상에 이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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