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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Dec 12. 2022

40이 넘었지만, 무언가가 되고 싶어!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엄마는 커서 어떤 고양이 키우고 싶어?"


유치원 즈음 장래희망에 대해 배운 아이들이 엄마에게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엄마는 커서 뭐가 될꺼야, 하는 질문.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질문일 것이다. 대답 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이미 컸어, 라는 문장이 포함된 어떤 대답. 사람의 생각은 머릿속에 놓여 있을 때와, 혀로 내뱉을때의 무게가 다르다. 엄마는 이미 컸다는 생각은 평범하고 가볍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공표되는 순간 엄마라는 어른과 장래희망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는 셈이다. 갑갑한 틀이 생긴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하고 싶은 일도, 갖고 싶은 것도 무척 많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너는 커서, 라는 말을 친구들과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은 어려서 하지 못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을 나이인가. 그중에 나의 아이가 요즘 빠져 있는 대상은 바로 고양이다. 아이는 친구 몇명과 함께 고양이 사랑 클럽을 만들고 집 근처 길냥이들에게 애정을 쏟는다. 따뜻한 집을 만들어 가져다 주고, 간식을 먹이고, 함께 놀아주고 예뻐해준다. 도서관에서 고양이 키워드의 책을 검색하여 대출하기를 벌써 스무 권은 족히 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수제노트 한 권에 고양이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깨알같은 글씨로 채우고 있는 중이다. 


어느날인가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커서 어떤 고양이 키우고 싶어, 라고. 유치원 때와는 다르게 금새 문장에서 어색한 부분을 찾아 수정한다. 아, 엄마는 벌써 컸지, 커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웃음지으며 고양이 이야기를 신나게 주고 받는다. 당연하겠지만 어릴 때는 커서 엄마가 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막상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보니, 엄마가 되는 일이 무척 소중하고 중요하다. 엄마는 벌써 커서 고양이처럼 애교있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단다. 엄마는 커서, 라는 질문에 현재 느끼는 행복한 감정이 대답처럼 밀려온다. 


더이상 '커서'라는 가정이 어울리지 않을 나이 40대가 되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겉모습이 자라는 나이가 지났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은 항상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문득 40이 지났지만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걸까?  연예인, 의사, 경찰처럼 '장래희망' 칸에 적어넣는 단어들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건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고, 그것을 직업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영역을 갖고 싶다. 크기가 작든 크든, 그 자체로 소중할 것이다. 직장 안에서 실현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자신을 성장시키고 돈을 버는데 온 힘을 다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나는 나의 직장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위한 돈도 벌 수 있다. 이만한 직장이 또 어디있겠는가. 버는 돈이 많지 않지만, 복지와 안정성을 고려하면 저울의 추는 만족 쪽으로 기울어진다. 


엄마는 커서, 라는 질문을 받으면 꾹꾹 누르고 있던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지금 만족하는거야? 대부분의 경우 그 질문을 다시 꾸깃꾸깃 접어서 넣어 둔다. 재빨리 도로 넣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마음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40이 넘었지만 무언가가 되고 싶어! 아, 나오고 말았다. 이후는 다독임을 위한 아슬아슬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구나, 뭐가 되고 싶니? 그것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뭐라고? 아니야, 꿈을 쫒는 건 안정적이지 않아. 너도 그럴 마음은 없잖아. 취미로 하자, 원래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하는거야. 


삐죽이는 마음을 겨우 달래어 넣는다. 완전히 지워버리지는 않는다. 단조로워질 일상에 활력이 되어줄 마음이니까. 한번씩 꺼내어 언젠가는, 하고 다시 꿈꿀 수 있게 해줄테니까. 어쩌면 정말로 꿈이 이뤄질 날이 올 수도 있을테니까. 엄마는 커서, 라는 질문이 더이상 어울리지 않을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가정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줄테니까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꿈' 공연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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