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일어났다. 곧장 욕실로 간다. 이런 일은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 아이와 나는 마치 매뉴얼이라도 있는냥 착착착 순서대로 움직인다. 나는 아이의 눈이 부시지 않도록 욕실의 불을 조금 어둡게 켜둔다. 아이는 욕실로 들어가 입 안의 피를 뱉어내고 휴지로 코를 닦는다. 내가 건네주는 탈지면을 받아서 돌돌 말아 코에 쑤욱 찔러 넣는다. 이제 욕실 바닥과 세면대에 묻은 피 자국만 닦아내면 끝이다.
아니, 끝인 줄 알았다. 아이의 코에서 피가 나오기 직전에 침대를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불 여기 저기에 묻어 있는 피자국을 보며 잠결에 착각을 했구나, 생각했다. 집 안팎으로 새까만 공기가 가득하다. 아이가 좀더 자야할 시간이다. 나는 재빨리 침대 위의 이불을 걷어낸다. 깨끗하고 평평한 이불 패드를 깔고 그 위에 아이를 눕힌다. 폭신한 겨울 이불로 온 몸을 덮어 준다. 새로 교체한 이불의 찬 기운때문인지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드러난다. 동그랗게 꼬옥 끌어안고 다시 자고 싶은 유혹이 강하다. 바닥에서 작은 산을 만들고 있는 이불 세 채가 나의 갈등을 단칼에 잘라버린다.
침대에 깔았던 이불 패드 하나, 아이가 덮었던 이불 둘, 내가 덮었던 이불 셋, 세 채의 이불에 조금씩 코피가 묻어 있었다. 경험상 빠르게 닦아 낼 수록 자국이 남지 않고 지우기도 수월하다는 걸 안다. 거실의 시계를 바라본다. 3시 55분.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지만, 빨래를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시간이다. 빨간 흔적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강하게 베어들어갈 것이다. 더구나 앞뒤로 새하얀 저 이불을 어떡할까. 아이들의 등교 후에 닦으려면 손목에 꽤나 힘이 들어가야 할 게 틀림없었다. 물에 담가두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우리집에는 이불이 들어갈 만한 대야가 없었다. 나는 궁리끝에 세면 대야에 물을 한 번만 받아서 세 채 이불의 흔적을 모두 지우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셈 치기로 했다.
비교적 가벼운 바닥 패드부터 시작하자. 빨간 흔적이 있는 부분을 오른손으로 잡는다. 나머지 부분을 돌돌 길게 말았다. 어깨 위에 툭 걸치면 준비 끝. 세면대 위에 놓인 대야에는 미지근한 물을 이미 받아두었다.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부분을 대야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불 대신 작은 솔을 잡은 오른손이 조심스럽게 살살 움직인다. 가로로 몇 번, 세로로 몇 번, 이불의 직조된 결을 따라 솔을 움직여야 한다. 빠르면서도 조용하게 솔질을 하기 위해 집중한다. 손등을 바라보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다.
나머지 이불 두 채는 겨울 이불답게 제법 부피가 크다. 다행히 녹색 빛깔 이불은 딱 한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적당히 두껍게 돌돌 말아서 어깨 위에 걸쳤다. 이불이 등허리쯤까지 내려와 두툼한 숄을 걸친 것처럼 따뜻하다. 세면 대야 위에 빨간 자국을 넣고 아까처럼 조심스럽게 솔을 가로 세로로 움직인다. 아이의 이불은 전에도 여러 번 겪은 일이라는 듯, 재빨리 흔적을 내보낸다. 수월하게 일이 끝났다.
이불 세 채중에서 가장 넓은 새하얀 이불은 여기 저기에 흔적이 묻어있다. 한 손으로 쥐어지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같은 방향의 안과 밖이라는 점이다. 둘둘 말기도 애매해서 대충 몇 번 접어서 어깨에 매었다. 어깨에 매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불은 발목까지 늘어졌다. 슈퍼맨의 망토처럼, 제다이의 망토처럼. 씨실과 날실의 세계에 찾아온 새빨간 침입자들을 제거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아이의 몸 안에서 귀했던 존재는 몸 밖으로 나와 물에 희석되어 사라져야할 운명에 처했다.
새하얀 이불을 망토처럼 둘러매고 서서 솔질을 한다. 세 번째 이불이라 손등을 노려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쓱싹거린다. 눈에서 레이저가 사라지고 머릿속에 상념이 떠오른다. 이렇게 이불로 온 몸을 감쌌던 추운 겨울날이 생각난다. 그때는 지금처럼 서 있지 않고 방 안에 앉아서 이불을 돌돌 말고 있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는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았다.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도시 외곽인 그곳에 도시가스가 공급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집집마다 개별적으로 공급관을 끌어와 설치하는데 돈이 꽤 들었다던 친정 엄마의 말이 기억난다. 아무튼 어릴 때는 겨울철마다 석유를 몇 드럼씩 저장해두고, 이층집 난방을 보일러로 해결했다. 석유값을 아끼기 위해 거실에는 난방을 하지 않았고, 한겨울 차가운 거실은 발가락이 시릴 정도였다. 방밖으로 나오려면 이불이 필수였다. 온 몸을 이불로 돌돌 말고 웅크리고 앉아서 손톱이 노랗게 될때까지 까먹던 귤이 어찌나 맛있던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집에 가면 그때 그 거실이 따뜻한 공기로 가득하다.
흔적을 말끔하게 지우고 손으로 꼭꼭 쥐어가며 물기를 짜낸다. 젖은 부분을 안쪽으로 해서 동그랗게 말았다. 날이 밝아오면 세탁기에 넣어야지. 그전까지 물기가 밖으로 베어나오지 않을 것이다. 욕실 앞에 층층이 쌓아둔 이불 위로 아이들이 올라가지 앉도록 주의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폭신하고 봉긋한 무언가의 위로 털썩 올라가는 건 아이들의 본능같다. 일어나자마자 주의를 주지 않으면 오늘 아침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분명 이불 위에 매달리기가 될 것이다.
새벽 3시 55분부터 시작된 애벌빨레는 4시가 조금 넘어서 끝이 났다. 자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등 뒤로 감싸는 이불의 따뜻함이 어릴 적 기억을 소환했다. 이불의 묵직함이 이내 해제 버튼을 눌렀지만, 발가락이 시렸던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짓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친정집도 우리집도 겨울에 거실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다. 크게 넉넉하지는 않지만, 가끔 힘들기도 하지만, 점점 안락해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안녕하시기를, 안녕하기를 바라본다. 희망을 떠올리는 일, 새벽 시간에 하기에 참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