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들어 세번째다. 아이쿠, 또 걸렸다. 코로나에 걸려 버렸다. 이틀 전쯤부터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목 안쪽이 더욱 아파왔다. 낮에는 약간 성가신 정도였지만, 밤에는 신경이 거슬릴 정도로 불편했다. 다음날 아침에 코로나 자가키트로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낮동안 나아지는가 싶더니 깜깜해지자 성가신 녀석이 다시 찾아왔다. 다음날인 오늘 아침에 다시 자가키트로 검사를 했다. 결과는 역시 음성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둘째 아이도 코와 목이 아프다고 했다. 나와 함께 검사한 아이의 자가키트는 두 줄, 양성이었다.
우리는 롱패딩코트와 장갑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집근처 병원을 향해 걸었다. 아파트와 바로 연결된 작은 산을 지나 걸어갔다. 뽀~득~거리는 눈을 밟으며 걸으니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도로와 인도의 눈은 모두 사라졌지만, 산 속은 여전히 하얀 세상이다. 짙은 갈색과 흰색의 조화로움. 겨울에나 볼 수 있는 광경을 뚫고 나와 아이는 걸었다. 뽀득!
PCR검사도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아이였지만, 오늘은 눈물을 보였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여러차례 PCR과 신속항원검사를 받아보았지만, 오늘 검사에 나 역시 소스라쳤다. 매섭게 코 안쪽을 후벼파는 날카로운 느낌이 코 안쪽 가벼운 통증이 있던 부위를 공격했다. 그래서였을까. 집에서의 자가키트는 음성이었지만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병원 검사는 양성이었다. 나와 아이는 이렇게 세 번째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다행히 둘다 증상이 매우 약했다. 우리는 집 안에서 활기찬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겨울해가 만드는 낮의 햇살은 보약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보약만큼 귀한 햇살을 쬔다. 몸에 더 많은 햇살이 닿도록 소파 가장자리로 한껏 몸을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이 온 몸을 마사지하니 노곤노곤해진다. 식빵을 만들어 꾸벅하고 조는 고양이가 된다면, 지금 이순간 그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이는 창가 햇살이 닿는 자리에 놓인 앉은뱅이 책상 위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는지 포물선을 찾아보자고 한다. 며칠 전 밤에 포물선의 뜻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결론은 자고 일어나서 다시 찾아보자,였다. 아이가 포물선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따뜻한 햇살 속에서 꿈인듯 현실인듯 모호한 경계를 오가고 있었다. 햇살은 구름에 가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불쑥! 아이의 엉덩이가 품 안으로 들어왔다. 졸기 시작하려다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재빨리 아이의 몸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사라진 햇살 대신한 아이의 체온이 무척 포근했다. "엄마, 여기서 포물선 찾아보자." 그제서야 아이의 손에 들린 물건으로 시선을 옮겼다. 네모낳고 두꺼운 종이 뭉치, 초등국어사전이었다. 아이는 ㅍ을 찾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ㅗ와 ㅁ을 순서대로 찾았다.
포물선 [포:물썬] 공중으로 비스듬히 던진 돌의 자취와 같은 점점 굽어지는 선. (예) 돌멩이를 던지니, 멀리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동아연세 초등국어사전)
아이가 알고 싶었던 것은 포물선의 한자어 의미였다. 그래서 우리는 던질 포, 사물 물, 선 선이라고 서로 이야기하며 포물선 찾기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 포물선은 계속 움직이는 중이었다. 내 인생은 포물선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혹자는 인생을 피고 지는 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꽃처럼 피었다 지는 것처럼. 마치 포물선의 시작점과 최고점, 그리고 다시 떨어지는 마지막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40대를 지나는 나의 인생은 포물선 어느 지점에 머물고 있을까. 신체적으로는 기능이 점점 떨어지는 나이이니 포물선의 정점을 지나 내려가고 있는 중이리라. 두뇌 역시 그러할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갈등이 생겼다. 생각의 흐름을 계속 진행하는 게 허탈함을 가져다 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올라 용기가 생겼다. 나이가 들면 두뇌도 노화가 된다. 하지만 살아온 경험들이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의 두뇌 기능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어느 분야에서는 오히려 더 뛰어날 수도 있다. 적어도 두뇌 기능은 포물선처럼 낙하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은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을까? 생각이 깊어지니 자연스레 베란다 창 밖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건물들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둘러싼 산등성이 모습이 가득하다. 산이 많은 한국이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집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장소를 경험하지 못했다. 고른 높이로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빙 둘러싸고 있는 먼 산들. 마치 어린왕자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연달아 놓여진 모습이다. 자세히 보니 굴곡이 조금씩 다르다. 완만하고 좀더 뾰족하고, 하나에서 두 개까지의 봉우리, 보아뱀이 삼킨 코끼리의 생김새가 저마다 다른 모양이다. 코끼리의 안전까지는 생각하지 말자, 하고 생각 종료버튼을 눌렀다.
"엄마, 여기에는 모든 단어가 다 나와있어?"
종료버튼과 함께 희미해지는 보아뱀 위로 아이의 목소리가 덧입혀졌다. 어? 사전에? 이건 초등국어사진이니까 초등학생에게 필요한 단어들이 나와있는 거야, 하고 대답해주었다. 보아뱀과 코끼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 수업시간에 포물선 배우니까, 여기에 있는 거구나!"
아이는 초등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똥'이라는 단어를 찾기 시작했다. 똥이라는 단어도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똥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흥미로운 주제인가. 유아책과 초등 저학년 책들 중에 그것을 주제로 하는 책들도 참 많다.
얼마전 아파트 단지 안에 커다랗게 들어온 무지개가 있었다. 40여년을 살아오면서 그토록 커다랗고 가깝게 드리운 무지개를 본 적이 없었다. 얼른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이들에게 내려와 무지개를 보자고 했다. 둘째 아이가 내려와 함께 감탄을 하며 무지개를 보았다. 그러다가 똥이 마렵다며 쪼르르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얼마간 무지개를 감상할 시간을 기다려준 화장실 버튼에 고마워할 일이다.
아주 커다랗고 가까운 무지개는 빨강부터 보라까지 층층이 가지런하게 쌓여 있었다. 한줄 한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고 가까웠다. 너무 커서 양쪽 끝이 아파트 건물 뒷편으로 가려졌다. 사진을 찍으니 마치 합성된 사진처럼 느껴졌다. 아파트 건물에 비해 무지개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쬐며 소파에 앉아 사전을 뒤적이는 아이를 바라본다. 똥이라는 단어를 찾아낸 아이를 보며 무지개가 떠올랐다. 아, 무지개도 포물선과 비슷하게 생겼구나! 이토록 아름다운 포물선이라면 인생의 어느 지점이라도 행복할 것 같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다양한 색이 골고루 놓여 있으니, 어느 지점에서라도 다채롭게 빛날 수 있으리라.
포물선의 정점까지의 거리가 아직 남아있기를 바란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은 위로 상승하는 어느 지점에 놓여있기를 바란다. 인생의 정점을 향해 계속 올라가다가 노년의 어느날, 죽음을 맞이하며 갑자기 끊겨버리는 포물선을 그려본다. 하강선이 없으니 땅에 닿지 않고 계속 오른다. 그러다 사라진다. 인생의 포물선이 이렇게 진행되기를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무지개같은 짙고 아름다운 여러 색으로 빛나는 포물선이라면, 그 어느 지점이라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강선이라도 땅에 닿는 순간에라도 여러 매력으로 빛나고 있을테니까.
인생의 포물선을 위로 향하게 하려는 노력만큼, 다양한 색으로 덧입히려는 노력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코로나 자가 격리 기간동안 아이와 함께 어떤 모양과 색으로 시간을 채워나갈지가 중요할 것이다. 이렇게 하루 하루를 차분하게 채워나가보자. 인생의 포물선 어느 지점에서도 용기있고 당당할 수 있도록. 부디 나와 주변 사람들의 인생이 그러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