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물었다. 혹시 아프냐고.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정말 그렇지 않다고.
살다가 보면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일부러 짜놓은 각본이 아닌 이상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만나게 될 것 같지 않은 사람. 의외의 인물이 인생에 등장하게 되는 때. 그것이 꼭 운명을 닮은 사랑인 것처럼. 수많은 날을 이유를 찾는데 보냈고 수많은 밤을 혼란스레 보냈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 떠있는 작은 돛단배가 된 느낌이었다. 이유는커녕 더 엉키기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런 시간을 오래 보냈으나 어떤 날, 문득, 이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그만 괴롭히자 싶었다. 그래서 난 나의 시간들에게 이 감정을 맡겨두고 나의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 마치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꼭 로맨스영화를 보고 있는 관람객처럼. 방관하는 사람이 되어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난 감정이 갖고 있는 힘을 봤다. 답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과 관계의 정의가 반드시 내려져야 한다고 믿었던 내 자신을 마주 보게 됐을 때 뭔가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냥, 그런 인연도 있는 거였다. 딱히 정의 내릴 수 없고 이어질 수도 없지만 그 자리에 있으므로 아름다운 인연 말이다. 봄바람이라 하였다. 위로라 했고 설렘이라 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러니 욕심을 내지도 않고 그리움 그 자체인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어느 순간 내겐 낭만이 되어 돌아왔다.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시간에 관계를 맡긴 보답이 낭만이 되어 돌아와 준 기분은 , 사랑이 이뤄진 것보다 더 행복했다. 그가 가진 것을 빼앗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잃지도 않는, 적당히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이 어딘가에, 내가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슬프기보다는 벅차서, 그래서 울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