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는 늘, 부실공사된 건물처럼 삐그덕거림이 존재한다. 내 경험으로 빗대어 보자면 상황은 이렇다. 한 사람의 무조건적인 퍼주기가 남발되는 경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는 상대방의 태도에 기인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변할 가망성이라곤 없는 나와 그의 성격에 기인한 모든 마찰이 그 가능성이 된다.
마음을 좀 먹는 관계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트라우마를 겪는 쪽은 대부분 "네가 쟤보다 낫잖아" 라거나 "네가 좀 참아, 쟤 성격 알잖아" 이거나 "네가 이해해"라는 말을 인사처럼 듣게 되는 쪽이 될 것이다. 처음 한 두 번은 이런 말을 들어도 기꺼이 그러마 하면서 웃음으로 상한 마음을 다독일 수 있게 되지만 그것이 어느새 습관처럼 당연해져서 주위 사람들조차 "어쩔 수 없잖아" 또는 "가만히 둬라, 네가 속상하겠지만 좀 참아"라는 말을 도돌이표처럼 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이 세상에 참으려고 태어났나?부터 시작해서 스스로 이해받을 자격이 없는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 내 경험상 , 이런 상처가 켜켜이 쌓여서 결국 폭탄처럼 터져버리고 나서야 겨우 쏟아낼 수 있었다. "너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은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짓거리는 못 하겠다" 미련도 없이 진저리 나는 마음 하나로 관계를 정리하면서 내 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았다. 그들은 관계에서 나의 노력을 깊이 감사할 줄 알며 애씀을 높이 평가할 줄 알았고 내 마음의 나눔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사랑임을 알아주었다.
내게 필요했던 건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용기였고 체념할 줄 아는 단호함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멍멍이 같은 고생이 아까워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차마 못했던 일이었다. 내 방식과 그것만이 정답이라 믿으며 사랑이라 고집부린 자신을 무참히 파괴하고 나서야 상처가 낫는 느낌이 됐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란, 구렁텅이에 빠진 나를 모른척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괜찮으면 나는 다 괜찮아라는 말은 모두 거짓된 평화를 위해 나를 상처 내는 짓밖엔 안된다. 들여다보면 진실된 진심은 불편한 경우가 많다. 거짓된 평화를 지키려고 불편한 진실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건 참 못할 짓이 되는 것이다.
파괴 후 찾아오는 게 치유의 설렘이란 걸 더 빨리 깨달았다면 난 기꺼이 이 체념을 기쁘게 맞이 했으리라. 파괴하여 쟁취한 체념이란 단어에 난 이제야 겨우, 한시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