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윤이 나는 문지방을 딛고
할머니의 자개장이 꼬마의 손가락을 부른다.
오묘한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하지만, 꼭 만져보고 싶게 되는 것이다.
하얀 자개 위에 뿌옇게 칠해진 매니큐어 탑코트.
쌩얼이 궁금하다. 칠하기 전의 넌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불장도 장식장도 어린이의 까만 눈동자 같이 반짝인다.
그리고 누우런 방바닥은 언제나 반질반질 윤이 난다.
그 방에 들어가려면 문지방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2단계 요철이 너무나 매혹적이다.
깨끔발로 점프 통과를 하기도 하고, 툭툭 튀어나온 문턱에 괜스레 발바닥을 문질러 댄다.
문틀 양쪽에 한 발씩 대고 밖으로 밀어내며 위로 올라갈 때면
원숭이 흉내를 내고 싶어지지만
나는 풍부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마음으로만 우우 키키 그들의 노래를 불러본다.
정신없이 문지방 정글짐 놀이는 “가시나야!” 하는 호통으로 끝이 나버린다.
대한민국 선조들에게 문지방 위에 서는 것은 큰 금기사항이라서,
잠시라도 긴장을 풀고 그 위에 선 모양새가 되면
당장에 송곳 잔소리 스파이크가 귀와 심장을 철썩 때린다.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밤에 손톱 발톱을 깎고 난 뒤 쥐가 그것을 주워 먹고 도령 행세를 하게 된 전래동화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를 한참을 생각했다.
밤에 날카로운 물건을 쓰는 건 위험해서가 아닌가.
밝은 낮에 조심조심 피를 보지 말라는 거라고 정리하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편안한 나는,
‘문지방에 서지 말라’는 것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문을 열고 나서는 일.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도 몰라도 잠시 숨과 생각이 멈춘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 앞에서는 설렘을 온전히 즐길 시간을 가져야 하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아득한 도전 앞에서는
힘차게 발을 구르기 위해 숨을 골라야 하니까.
보이는 문이든 보이지 않는 문이든,
문 앞에서는 ‘어디로 가는지’, ‘가기로 한 마음’,
‘원하는 것을 꼭 한 번 점검해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선을 넘는 자’가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도
문턱 금기의 비밀과 닿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의 마음을 모르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체로 살아왔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갑자기 지고 있던 보퉁이가 백 배는 무거워져서 무릎이 꺾였다.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내가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나온 그 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집 없는 민달팽이로 살아온 내게도 돌아갈 집이 있는가.
그러다 잊혀진 저 구석에 마당 깊은 집을 보았다.
그리하여 그곳, 내가 자란 그 할머니의 반짝반짝 윤이 나는 그 방문을 다시 찾았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알기 위해
이제 다시 그 방으로 돌아와서 숨을 고른다.
아랫목 이불 아래에 넣어둔 밥공기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식구를 기다리는 방.
뉴스 진행자가 마지막 인사를 할 때
할머니는 깜빡 잠이 든 그 방.
늘 그 순간을 버티고 살아내느라
나를 키운 돕는 손길들을 잊었다는 것이 아팠다.
나는 염치없게도 잊은 것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그 숨과 온기를 잊어서 내가 더 아팠다는 것에 느끼는 안타까움이 더 먼저다.
버려진 들에 던져진 아이라고 믿어버려서
심장의 전원을 내려버렸는데,
나를 오롯이 감싸던 주름진 그 손,
문지방에서 까부는 어린 소녀를 나무라던 그 목소리가
내게 있었다는 것을 되찾자 —
불 꺼진 방이 환히 불이 밝혔다.
나는 던져졌지만, 크고 따뜻한 손이 나를 받아 길렀다.
내게 이식된 최초의 기억은 단장의 터미널이 아니라, 할머니다.
출발지를 알아서 이제는 목적지를 정할 수 있다.
받은 표가 없어서 걸어만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내게는 세상이 준 황금 티켓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