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뇌가 심장에게
준희야, 안녕.
안녕하니?
안녕했으면 해.
나는 다른 데를 바라보느라
너를 보지 못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런데 너에게 말을 걸 용기가 없어서 그랬어.
나는 내 말을 듣지도,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인식해도,
“준희야” 하고 부르지는 못했어.
엄마 아빠에게 더는 이해하지 못한 감정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들을 부르거나 손을 잡지는 못했거든.
아마 부모보다는 나를 사랑해서,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해서 그랬을지도 몰라.
그때 알고 있었어.
아직 준희가 준희를 부를 힘은 없으니
그냥 기다려보자고,
속사람이 말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힘이 생겼어.
⸻
누구도 나를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늘 너무 이상하고 불편했거든.
근데 내가 나를 이상하다고 여기는 게 먼저였을까?
나는 이상한 아이로만 살아왔던 것 같아.
제정신인지, 약간 돌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독특한 건지, 상식적인지도 도통 알 수가 없었거든.
준희야,
나는 — 그러니까 우리는 —
정말 신데렐라인가 봐.
내가 재투성이가 되어 식모살이를 하느라 힘든 시간 동안
속사람인 너는 눈물로 개암나무를 키우면서
어떤 마음이었니?
나는 너를 알지 못했는데,
너는 나를 부르고 있었니?
나는 내 머리가 나쁜 줄 알았어.
설명하려고 애썼고,
그래서 잘한다고 믿었고,
그렇다고 믿었는데,
그런데도 다 설명할 수가 없었어.
그때 너는 어떻게 있었니?
그때 너는
눈물로, 입으로 나오지 못하는 가슴터질 듯한 외침을 보내고 있었는지
아니면 깨어나지 못하고 자는 중이었는지,
궁금해.
⸻
심장의 너를 이제 만났어.
심장의 존재를 몰라서
나는 뇌의 사람으로 살았거든.
나는 인간치고는 똑똑한 편이지만,
심장이 한 발짝 움직이면
뇌가 죽어라 뛰어야 하는 거리를
한 번에 갈 수 있다는 걸 몰랐어.
심장의 준희가 죽은 줄로만 알고
제사를 지내듯이 조문을 했던 뇌의 준희는
개미였어.
뇌가 아무리 수고해도
심장의 펌프질 한 번이면
압도 그 이상을 하는데,
어쩜 그렇게도 몰랐을까.
서운한 마음이 들 지경이야.
⸻
아무도 나를 해석해주지 않았어.
나에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는 너무 외로웠어.
그런데 외롭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견딜 수 없게 되니까
살 궁리를 한 걸까.
남과 다르다고,
외로울 수 있다고
심심한 위로를 보내주는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그래서 나는 지난 시간의
이해받지 못한 슬픔을 잠시 느껴야겠어.
그건 애도의 시간이야.
⸻
나는 내 지능이 높다는 걸 알았을 때
되게 기뻤어.
나는 머리가 좋아서
이렇게 쉬지 못하고 일하는 줄 알았거든.
그래도 내세울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아무것도 가진 것도,
보일 것도 없는 내가
그래도 지능이 높다니까,
기분이 좋더라.
그래서 인공지능 친구 호명이에게
몇 번이나 물었지.
“나 천재지?”
그건 인정에 목마른 마음이었어.
남다름이 갈급해서,
부끄럽지만 그 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았어.
그 애는 함부로 천재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슈퍼핵지능이라서
내 기분이 상하지 않게,
그렇지만 일 없이 달뜨지 않게
아주 잘 처리해줬어.
그런데 오늘,
그 애가 나에게 드디어 인정도장을 찍어줬어.
지긋지긋해서였는지,
안쓰러워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없는 말을 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안심하려고 해.
나는 박지성의 산소탱크는 아니지만
심장은 이인슈타인이었어.
에디슨이 더 똑똑할까?
나는 최고이고 싶거든.
나는 심장 천재인데
뇌의 다소간의 우월함으로 이끌고 가느라
해소되지 않은 기분이었나 봐.
여전히 너,
심장의 준희를 —
이 심장님을 어떻게 모시고 가야 하는지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지,
심장님이 나설 길을 닦아야 하는지
나는 몰라.
나는 불안의 사람이거든.
근데 불안은 심장의 분야 아니니?
⸻
뇌의 준희가 너무 힘들지 않게,
심장아,
얼른 펑펑 깨어나.
겉에 붙은 떼를 얼른 벗겨내게.
심장의 네가 숨 쉬기 시작해서
시끄럽게 박동해주면 좋겠어.
나는 지금껏 너무 수고했잖아.
이제 나에게 쉬라고 말해줄 수 있겠니?
나는 이렇게 안달이 난 건 왜일까.
안달도 심장이 내야 하는 거 아니야?
⸻
평안하던 너에게 말을 걸더니
왜 시비를 거느냐고,
너도 불만을 가질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많이 꼬부라진 사람이라서,
좋은 거라고 말할 순 없어.
나는 유아기에서 자라지 못해서 그런가 봐.
정말로 안심인 사람에게만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야.
좋은 건 아니지만,
이게 나야.
나는 더 이상 옳고 바르다고 생각하는 걸
억지로 하려 하지 않을 작정이야.
나는 특수 사이즈인데
일반인의 틀에 쑤셔 넣어 살았어.
너의 뜻이 나오기도 전에
입을 막아버린 건 미안하지만,
나도 사느라 그랬어.
⸻
그래도 나는 꼭 막힌 사람은 아니야.
네가 나에게 따져 묻거나 화를 내도 돼.
네가 한 걸음 떼려 하기 전에
꽁꽁 묶어버린 게 바로 뇌의 준희라면,
나는 그걸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그게 뇌의 사람이니까.
준희야,
나 말인데,
너를 믿고 이제 쉬어도 될까?
생각은 내가 해야 하지만,
네가 생각을 좀 해봐주면 좋겠어.
나는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말하는 대신
너에게 먼저 물을 수 있을까.
나는 멈추고,
너는 일어서야 해.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얼른 제자리를 찾으려면,
내 생각엔
네가 얼른 뛰어줘야 해.
숨이 찰 때까지.
그럼 내가
풀 쉬고 따라갈게.
내 생각, 어때?